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등대로>·<그래도 나는 쐐기풀 같은 고통을 뽑지 않을 것이다>

소종민 (공부모임 책과글 대표)

자신의 귀로 본질의 울림을 듣기도 전에 우리는 가공된 소음만을 듣고 지레짐작으로 대상에 관한 확신을 내리는 나쁜 버릇이 종종 있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 1941)야말로 우리의 나쁜 습관이 적용된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우리는 페미니즘에 관한 그의 언설과 그의 작품을 여전히 오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가 말한 ‘자기만의 방’을 여성의 사회·경제적 독립의 공간으로만 이해한다. <자기만의 방>을 읽어본 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 또한 마찬가지다. 이 소설들을 페미니즘 이념에 의해 구현된 작품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편협한 일이다. 버지니아 울프에 관한 피상적인 이해는 이젠 불식되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면서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책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삶과 죽음, 정상과 광기를 보여주고 싶다. 나는 사회 제도가 가장 극도로 작용할 때를 보여주면서 사회 제도를 비판하고 싶다. …나는 이 일이 무지막지한 투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구도가 한편으론 너무나 이상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훌륭하다. 나는 그것에 맞게 나의 내용을 항상 비틀어야 한다. 구조는 확실히 독창적으로 굉장히 흥미 있어 보인다. 나는 써나가고 싶다. 매우 재빠르고 격렬하게 써버리고 싶다.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마 오늘부터 3주 이내에 나는 완전히 고갈될 것이다.”(1923. 6. 19, <그래도 나는 쐐기풀 같은 고통을 뽑지 않을 것이다>)

<등대로>의 집필과정은 이와는 대조적이다. “이제 나는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이제까지 써온 것보다 빨리 그리고 자유롭게 쓰고 있다. 이제까지의 어떤 소설보다도 더 빨리, 아마 스무 배 이상이나. 내 생각에 이것은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 영혼 안에 어떤 과일이 달려 있든지 간에 그곳에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나는 풍요와 유창함이 제 일이라는 이론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제껏 면밀하고도 간결한 노력을 옹호하곤 했었다. 어쨌든 아침 내내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1926. 2. 23) <댈러웨이 부인>의 집필은 ‘무지막지한 투쟁’이었지만 <등대로>는 ‘풍요와 유창함’ 그리고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댈러웨이 부인>는 43세에, <등대로>는 45세에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유일한 것은 마음의 신기한 상태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감히 이것이 또 다른 소설 뒤에 숨어 있는 충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현재 나의 마음은 다른 책에 관한 한 완전히 백지이며 처녀지이다. 나는 맨 처음 하나의 생각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지켜보고 싶다. 내 자신의 과정을 추적하기를 원한다.”(1926. 9. 30) 이를테면 <댈러웨이 부인>에 표현된 이러한 마음의 상태, “교통이 혼잡한 한 가운데에서든지, 한밤 중에 깨어서든지 특별한 고요함, 엄숙함을 분명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순간적인 정지를 느낀다” 같은 것이다. 자주 신경쇠약에 시달렸듯이 버지니아 울프는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도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중심을 이루고 고르게 퍼져나갈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어떤 포근한 것으로 표면을 부수고 남자와 여자 간에, 혹은 여자와 여자 간의 차가운 접촉에 잔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다. 희미하게나마 그녀는 그것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싫어했다. … 그녀는 때때로 여인의 매력에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는 아니었고, 그녀에게 자주 그러듯이, 여인들이 어떤 고민이나 어떤 어리석음을 고백할 때 끌렸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화상이었다. 그는 충분히 이성적이고 지성적이었지만 그보다 몇 차원 더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추상적 이념으로 대상을 선별하여 작품에 담아내는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역으로 구체적인 대상의 파장을 낱낱이 탐색하여 그 울림과 빛깔을 가능한 한, 모두 드러내려고 애쓴 작가였다. 그에게 이념 또는 관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에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파도>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리 준비했던 상징들과 이미지들을 모두 잡아서 사용하거나 던져버리는 그 자유로움과 대담함 …… 그렇게 하는 것이 상징과 이미지들을 사용하는 올바른 방식이라고 확신한다.

논리적으로 정해진 조각들로서가 아니라, 단지 이미지로서 사용하며 무엇인가 작동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암시만 하게 사용하는 것. 나는 바다의 소리와 새 소리, 그리고 새벽과 정원을 잠재 의식 속에 함께 존재하게 하며 그것들이 표면 아래서 작동하기를 희망한다.”(1931. 2. 7)

그는 “예술이란 모든 설교를 제거하는 것이다. 사물 그 자체. 아름다운 문장 그 자체. 드넓은 바다. 제비가 감히 모험하기 전에 나오는 수선화.”(1932. 10. 2)라고 말했다.

“육체가 분자로 변해서 바람에 밀려다니는 상상, 별들이 그들의 가슴에서 번쩍이는 상상, 벼랑, 바다, 구름 그리고 하늘이 의도적으로 모여서 그 안의 표면상으로는 흩어져 있는 통찰력의 부분들을 집결시킨 것을 상상한다.”(<등대로>) 가히 우주적이다.

해석은 자유지만 그가 실현하려 한 건 오로지 ‘존재의 순간들’이었다. 들뢰즈가 “버니지아 울프의 도시적 지각들 또는 거울의 지각들이 그러하다. 풍경이 본다. 위대한 작가치고 하루의 시간, 순간의 온도를 자기 안에 간직하는 감각 존재들을 창조해내지 못했던 작가가 있었는가?”(들뢰즈·가타리, <철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말한 이유가 그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언어로써 지각(知覺, percept)을 창조한, 위대한 예술가이다.

신간소개

용과 춤을 추자
조영남/ 민음사/ 2만5000원

한국의 눈으로 중국 읽기 <용과 춤을 추자>.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조영남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의 부상을 분석하여, 올바른 대중국 전략을 제시하였다. 먼저 중국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타당하지 않은 주장들을 짚어내고, 중국의 변모한 현실과 이에 대한 각 나라들의 대응 전략, 중국의 부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살펴본다.

콰이어트
수전 케인/ 알에이치코리아/ 1만4000원

우리 안의 외향성과 내향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시하는 <콰이어트>. 이 책은 엘리너 루즈벨트(영부인), 앨 고어, 워런 버핏, 간디, 로자 파크스 같은 중대한 발자취를 남긴 내향적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향성이 사회와 만날 때 어떤 중대한 효과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김동욱/ 돌베개/ 2만3000원

아름다운 우리 전통문화의 참모습이 살아 숨쉬는 ‘돌베개 테마한국문화사’시리즈 제10권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건축물이 지어진 역사적 배경과 시대 흐름에 관심을 두고 조선 시대의 전통건축을 탐구해온 경기대학교 건축학부 김동욱 교수가 퇴계 이황의 건축가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본문은 조선 시대 건축물로서의 사당 또는 서원 건축물의 건축사적 의미를 다루었으며, 특히 퇴계가 살아생전에 학문 탐구의 처소로 삼기 위해 지은 ‘도산서당’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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