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국장

지난 3일, 민선5기 충북지역 단체장에 대한 공약이행 평가 결과 기자회견이 있었다. 충북경실련의 주요사업 중 하나를 마무리한 것이다.

공약평가사업 실무자로서 지난 수개월간은 솔직히,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700개에 달하는 충북도내 12개 단체장의 공약을 정리하고, 공약평가단 교수님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지자체 실무자의 의견을 듣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땡볕 속에 도내 전역을 돌아보는 현장실사를 마친 뒤엔 앓아눕기까지 했다. 아~ 난 왜 이렇게 힘든 일만 해야 하나? 몇 년 전부터 해왔던 SSM 반대운동도 버거운 일이었는데, 이제 나이(!)를 생각해야 할 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기운 빠지는 일은 공약평가 사업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다. “그거 뭐하려고 해요~ 다들 잘하고 있다고 하지 않나요?” 애초부터 시장이나 군수를 공약 보고 뽑은 게 아니니, 별 관심이 없다는 사람들도 많다. 노력 대비, 빛도 안 나는 이 일을 지난 민선2기부터 십여년 간, 경실련이 우직하게 진행해온 이유가 무엇일까?

표를 구할 때만 자세를 낮추는 단체장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선심성 공약을 내걸지만 결과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과 한 약속(공약)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모든 지자체 홈페이지에 단체장의 공약이 게시되어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같은 단체가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주민과 공약사업 진행 상황을 소통하고 있는지 체크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 일정 공지가 뜨면 지자체는 홈페이지를 뜯어고쳐서라도 만들어 내고야 만다. 문제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약이 사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에 있다.

충북경실련의 공약이행 평가는 각 지자체장이 취임 이후 발표한 ‘공약실천 계획서’를 기준으로 진행한다. 모든 사업이 계획서대로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당초 예산 규모보다 대폭 줄어들었거나 공약명이 바뀌었다면 부실 공약이다. 불확실성이 큰 민자사업을 진행하겠다며, 동일한 사업명의 보도자료를 수년 째 반복해서 내고 있다면, 100% 헛공약이다.

민선5기에 들어서면서 공약사업에 대한 우려할 만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단 한번 행정조치로 완료되는 공약의 개수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장이 당연히 추진해야 할 사업을 공약으로 끼워넣거나, 계속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단골 공약으로 등장한다. 지자체별로 엇비슷한 공약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공약이 만들어질 기회가 차단된다.

얼마 전, 한 신문사의 독자권익위원회에서 위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단체장들이 취임한 지 2년 됐는데, 과연 처음 약속한 공약을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취재가 필요하다.” 모든 주민들이 공약에 무관심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편견이 아닐까? 우리 동네에 쌈지공원이 생겼다, 내가 자주 가는 시장에 주차장이 생겼다, 데크로 된 산책길이 생겼다, 산을 갈아엎더니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이 사업 모두 우리가 낸 세금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공약의 관전 포인트는 지자체장이 어떤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시장(군수)이 치적 쌓기용 공약에 올인하고 있지 않은지 감시하는 일이다. 모든 시민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공약보다, 선거 때 영향력을 발휘하는 집단을 위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2년간 몇 개의 공약이 이행됐는지 여부는 사실, 단체장에게나 의미있는 일이다. 경실련이 각 지자체의 부진 사업, 예산과 사업기간이 달라진 공약, 임기내 실현이 불가능한 空약에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남은 2년이 훨씬 더 중요하다. 단체장의 자화자찬 공약 이행률에 속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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