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인에 참패 지역인사들 침통한 분위기
당선자-주류사회와 괴리 지역현안 ‘어찌되나’

2선 정우택 의원(자민련)이 정치 초년생인 김종률 후보(열린우리당)에게 고배를 마시자 진천 주민들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다른 곳은 몰라도 정 의원은 되지 않겠냐?”며 당선을 떼논 당상으로 본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표결과 증평 진천 괴산 음성 선거구에서 정 의원은 3만6526표(40.8%)를 얻는데 그쳐 4만25593표(47.6%)를 득표한 김 후보에게 6067표차로 무릎을 꿇었다.

투표결과 예상대로 소지역주의가 뚜렷했다. 정 의원은 텃밭인 진천에서 53.6%, 김 후보는 고향인 음성에서 54.6%를 각각 득표했다. 승패를 가른 곳은 괴산. 괴산 유권자들은 정치신인인 김 후보에게 50.6%의 몰표를 안겼다. 그동안 이곳 맹주 역할을 자임해온 김종호 의원이 연거푸 정 의원에게 공천권을 빼앗긴 것에 대한 반감 등이 작용하면서 ‘反정우택’ 기류가 형성된 것이 패배의 불씨가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투표성향을 떠나 이번 선거는 철저하게 탄핵바람이 승부를 갈랐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선거 한 달 전에 낙하산 공천을 받은 김종률 후보가 이렇다할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조직력과 지명도를 자랑하는 관록의 정 의원을 무너뜨린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선거기간 내내 진천에서는 ‘김종률이 대체 누구냐’는 소리가 흘러 다녔다. 더군다나 김 후보는 조직가동을 위한 기본적인 자금지원 외에는 실탄을 지급하지 않아 선거운동원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이래서야 어떻게 운동을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온 건 당연한 일. 결국 김 후보의 승리는 누가 뭐래도 탄핵 후폭풍에 따른 민심이반인 셈이다.

“열린우리당 싹쓸이 비극이다”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TV 합동토론회에서도 ‘역시 정우택이 낫다’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이었다. 물론 반대의 시각도 있다. 정 의원이 “며칠 전 내려온 사람이 지역에 대해 뭘 아냐”는 식으로 김 후보를 경시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하는 바람에 되레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주민 박모씨(46)는 “지금 생각하면 TV 토론회가 문제였다”며 “당시에는 세 후보 중에서 여러 방면에 비교우위를 보였으나, 상대를 너무 무시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선거가 끝난 뒤 1주일이 지났으나 이처럼 진천에서는 아직 가는 곳마다 사랑방 정치가 한창이다.

40,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며 “정말 이럴 수 있냐”며 비분강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말끝마다 불만이 배어있고 실망이 묻어난다. “부끄럽다”고 운을 떼는 이모씨(48)는 “충북에서 단 한 곳이라도 자민련이나 한나라당이 차지했어야 제대로 된 선거였다”며 “정책이나 인물이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하는데 탄핵심판이 유일한 잣대가 됐다는 것은 한마디로 비극”이라고 못박는다.
물론 젊은 층의 시각은 그 반대다. “8년 동안 금배지 달게 해줬으면 됐지 않느냐”는 그들은 “정 의원이 인터넷 세대는 거들떠보지 않고 나이든 사람들만 찾아다니고 그것을 대세라고 착각했다”고 냉철하게 진단한다.

의원-주류사회와 엇박자 우려
이번 선거결과에서 주목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그동안 현역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 군의회의 관계가 비교적 원만했으나 이제 기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중립의무를 지켰다고 하지만 당선자 측의 시각은 차갑다. 김종률 당선자 진영의 한 인사는 “이번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운동을 한 사람들이 지역유지들 아닌가?”라며 “고위 공직자부터 군 의원, 농협조합장, 사회단체장 명함을 가진 사람들 중에 김 후보를 도운 사람이 과연 몇 명이냐 되냐”고 반문한다.

앞으로 지역 현안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대목이다. 이렇듯 예상외의 결과가 나옴에 따라 단체장과 지방의회와의 관계 설정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현안사업 대부분이 국회의원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이뤄진 점에 비춰볼 때 벌써부터 불협화음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또한 차기 지방선거에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 공무원의 고백이다. “솔직히 걱정이다. 지역 현안사업의 경우 현역의원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선거로 인해 생긴 앙금을 어떻게 치유할지 막막하다.”
17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생(相生)의 정캄.이곳 진천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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