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편집국장

김병일, 이제 그의 이름은 비운의 정치인으로 기억돼야할 것 같다. 그는 3월25일 홍콩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익명의 야후 블로그에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당시 청주상당 후보)을 둘러싼 4대 의혹이 게재된 것과 관련해 문건 유포자로 지목돼 소환통보를 받고 귀국일정을 조율하던 중에 전해진 비보다. 자살이 아니라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라는 유족의 주장도 들려온다.

그는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공천장을 손에 쥐었다가 내놓아야 했다. 당시 1차공천이 발표된 뒤 ‘친박학살(親朴虐殺)’이라는 반발이 거세게 일어남에 따라 MB의 심정을 이해할만한(?) 그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만큼 김병일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MB의 남자’였다.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그에게 다소 거북스러울 수도 있는 이 호칭은 2005년 행정수도 추진을 둘러싸고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군대라도 동원해 행정수도를 막겠다”며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대변인이었던 김 전 처장이 야당과 대리전을 벌이면서 얻은 별명이다.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발탁되면서 정치로 방향을 틀었고,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서원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았다.

김 전 처장은 이번 4·11 총선에서 지난 18대 때 빼앗겼던 공천장을 되찾아오려고 했다. 고심 끝에 지역구도 청주 흥덕갑에서 청원으로 바꿨다. 그러나 이번에는 ‘친이학살(親李虐殺)’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 집권초기였던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향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공천장을 친박에게 일부 양보하는 이벤트라도 있었지만 4·11은 상황이 달랐다. 여권 대선후보 가운데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모든 권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현상이 일어났다.

충북에서 공천학살된 친이로는 숨진 김 전 처장 외에도 손인석(청주 흥덕갑), 송태영(청주 흥덕을), 오성균(청원), 심규철(보은·옥천·영동) 예비후보 등이 더 있다. 친박이 아니면 월박(越朴)이라도 했어야 했다.

동병상련이라고 이들은 공천탈락의 울분을 함께 나눴을 것이다. 현재로선 김 전 처장이 저승까지 혐의를 떠안고 가게 된 <Crime to guilty>의 내용물도 사실상 혼자만의 작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내용의 대부분은 손인석 새누리당 중앙청년위원장이 주도했던 충북청년경제포럼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현재로서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김 전 처장이 입수한 내용물을 <Crime to guilty>에 게재하는 과정에서도 누군가와 협의하거나 협조를 받았을 수 있다. 심지어 드러나지 않은 ‘윗선’이 있을 수도 있다. 김 전 처장이 죽음으로 ‘완벽한 침묵’에 도달해야 할 그 무슨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그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는 없다.

그림형제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떠오른다. 하멜른에 쥐떼가 몰려들었다. 오죽하면 고양이들까지 쥐에게 물려죽었을까? 피리 부는 사나이는 피리를 불며 쥐떼를 물속으로 끌어들였다. 그 다음 피리소리에 홀려 사라진 것은 마을의 어린이들이다. 계파정치의 음산한 피리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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