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근 변호사

얼마 전부터 ‘공동체 숨’에서 진행하는 세계인권선언 강독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선언문을 끊어서 읽고,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현실은 어떠한지에 대해 토론을 한다. 같이 공부하니,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고, 인권의 무게도 새삼 깨닫게 된다.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됨을 인정하며,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를 초래하였으며-중략-사람들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에 호소하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인권이 법에 의한 지배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함이 필수적이다.”

세계인권선언의 전문 맨 앞부분이다. 선언은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의 생명과 양심, 표현 같은 것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경험한 세계의 이성들은 기본적 인권을 인정하는 것만이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임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신분계급, 성, 재산, 인종 등에 따른 차별이 아직 일반적이던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인류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과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세계인권선언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인권선언은 그것이 인류의 삶 곳곳에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 “모든 개인과 사회의 각 기관은 세계인권선언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한 채, 교육과 학습을 통해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런 취지에 따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 헌법들은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동안 기본적 인권에 대한 교육과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제헌헌법이나 개정헌법들도 기본적 인권에 대한 규정을 두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이 갖는 참된 의미를 배우지 못했고, 그저 시험을 위해 암기하였을 뿐이다. 역대 독재정권들은 헌법상 기본권은 장식장에 넣어둔 채 고문과 협박을 일삼고, 재판을 가장하여 살인까지 저질렀다.

과거 국가보안법위반죄, 간첩죄 등으로 사형되었던 사건들이 지금에 와서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것을 최고의 의무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헌법 10조), 독재정권은 그 의무를 망각한 채 정권유지를 위해 오히려 인권탄압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그들은 언론통제 등으로 ‘인권탄압’을 ‘자유민주주의 수호’로 둔갑시켜 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현충일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어떤 자들도 우리 국민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말 자체는 틀린 것이 없다. 핵심은 과연 누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자들이냐’에 있다.

이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뚜렷한 근거도 없이 특정세력을 ‘종북세력’, ‘간첩’으로 색깔을 입히면서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일정한 사안에 대한 답변을 강요하면서 답변을 하지 않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바로 빨간색을 칠하는 것이다.

그들은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에 대해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를 믿느냐”고 물어, 바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재판관 임명을 반대하면서 헌법재판소 공백사태를 1년 가까이 끌어오고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은 다 믿어야 하는가? 개인의 양심을 그들이 원하는 내용으로 통제하려는 이런 야만스러운 행태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대체 가능한 것인가?

국민들은 그들을 대변할 정치인을 선택할 때 후보의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살아온 이력에 비추어 그 말이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실천은 아무나 못한다. 옥석은 시민들의 지혜로 가려내야 한다. 검찰의 허술하고 무능한 민간인 사찰 수사결과를 들으면서, 세계인권선언이 우리의 삶에 그대로 녹아드는 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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