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진 구성 놓고 청탁 회유 조건 용광로 분출
캠프 종사자 간택에 관심 집중, 기자출신들 중용될 듯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하나같이 큰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 의정활동을 보좌할 비서진 구성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면 당선자든 낙선자든 항상 뒷마무리가 신경쓰인다. 정치권에선 통상 이를 ‘설겆이’로 부른다. 당장 당선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비서진 문제다. 현행법상 한명의 국회의원에게 딸리는 비서진은 모두 6명이다. 4급 보좌관 2명과 5급 비서관 1명, 그리고 6급 7급 9급 각각 한명씩이다. 통상 4급은 정책보좌를 담당하고 5·6급은 수행비서, 7·9급은 운전기사 및 서무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은 채용후 등록과 동시에 공식 국가공무원으로 인정받으며 급여도 국가로부터 받는다. 때문에 일단 당선자에 의해 비서진으로 간택되면 국회의원 임기인 4년동안 확실한 자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당선자들이 알아서 사람을 골라쓰면 그만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당장 한표가 아쉬운 총선 전에는 캠프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반가웠지만 지금은 되레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현재 당선자마다 밀려드는 청탁에 시달리고 있고 경우에 따라선 선거때의 공로와 기여를 앞세운 회유와 압력까지 가해지기도 한다.

지역구 8개를 모두 석권한 도내 열린우리당 당선자들은 아직 비서진 구성을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 워낙 청탁이많다보니 아예 이 문제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함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캠프 종사자들 사이에선 이미 누구누구가 선택될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당선자의 입장에선 어쨌든 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선처를 외면할 수 없다. 통상 4급 정책보좌관은 국회 담당, 지역구 담당으로 나눠 채용하는게 관례였다. 한명은 중앙 정계에 밝거나 전문식견을 갖춘 인사를 뽑아 말 그대로 정책보좌를 전담시키고, 다른 한명은 지역구에 연고를 둔 인사로 택해 정책보좌와 함께 지역구 관리를 책임지게 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홍재형의원의 경우다. 여의도 국회의원사무실엔 정당활동 경험의 정태길씨(전 서울신용보증기금 노조위원장)를, 지구당 사무실엔 지방지 기자출신인 이영진씨를 상근시켜 16대 국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정책보좌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선자들의 비서진 구성에 쏠리는 최대 관심은 바로 이 4급 보좌관에 누가 발탁되느냐 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도내 당선자들의 캠프에 하나같이 기자출신들이 영입돼 중책을 맡음으로써 이들의 향후 거취가 색다른 흥미를 안긴다. 현재로선 이들 대부분이 4급이나 5급으로 채용될 공산이 크다.

보좌진의 의원 사병화는 전문지식 부족 탓
5급 이하 비서진들은 대개 캠프종사자들의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상황에 따라선 캠프 책임자들 사이에 지분 다툼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선거전 막판에 경쟁 관계에 있던 예비후보들까지 캠프로 끌여들여 당선의 결정적 배경으로 활용한 청주 흥덕 갑과 청원 등 사정이 복잡한 선거구 당선자의 비서진 구성이 특히 녹록치 않을 조짐이다. 한 캠프 종사자는 “당초 자원봉사로 캠프에 들어 왔기 때문에 선거가 끝난 후 모든 욕심을 버렸지만 그래도 나를 택하지 않을까하는 기대심리는 솔직히 있다. 요즘같은 취업난에 그런 보장된 자리가 왜 욕심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비서진 문제로 당선자가 고민하는 것을 보면 쉽게 내 속내를 내보일 수도 없다. 처음부터 ‘자리’를 조건으로 캠프에 들어 온 사람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윤경식의원을 보좌한 김법기씨는 국회의원 비서진 구성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다음과같은 조언을 남겼다. “보좌, 비서진들의 역량과 활동이 곧 해당 의원들의 의정을 좌우한다. 그만큼 이들의 전문식견이 중요하다. 특히 정책보좌관들은 고유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역구 관리까지 맡아야 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전방위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순수 정책보좌는 대개 4·5급이 책임지고 나머지 직급은 실무 내지 보조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중 일부에겐 아예 지역구관리를 전담시키기도 한다. 간혹 다른 의원들의 경우 이들 비서진들의 의원 사병화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는데, 보좌 비서진들의 전문식견이 부족한 것이 큰 원인이다. 인물 선택시 선거때의 논공행상에 치우치다보면 당장 이런 맹점에 부딪친다. 때문에 국회 내부에선 효율적 정책보좌를 위한 인력 및 정보의 ‘풀제’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아직 구체화되지 못했다. 어쨌든 17대 국회에선 이런 보좌관 및 비서관 역할도 많이 바뀔 것이다.”

의원보좌 체계에도 변화있을 듯
실제로 이런 변화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원내 진출의 숙원을 푼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답게 먼저 깃발을 올린 것이다. 민노당은 노동자 평균 임금을 기준할 경우 기존의 의원 보좌진 6명 정도의 임금이면 10명 정도로도 늘릴 수 있다며 의원 보좌체계에 변화를 선도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민노당은 현행 보좌진들의 연봉을 대략 4000만원대로 추정하고 정책보좌 인력을 이처럼 넓히기로 하는 한편, 정책정당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정책위원회 산하에 의정지원단과 공동정책보좌관단, 그리고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정책연구소를 운영할 것을 분명히 했다. 이럴 경우 기존 보수정당들의 의원보좌 시스템에도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과거에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각종 일탈행위는 더 이상 설 땅을 잃게 된다. 의원 개개인에 딸리는 보좌 비서진들의 급여가 국가로부터 지급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종종 구설수에 오른게 사실이다. 명의만 올려 놓고 이에 해당되는 급여를 의원 활동비로 사용한다든가, 아예 의원 가족이나 측근들을 비서진으로 채용, 역시 이들의 몫인 국가급여를 지구당 관리비로 활용하는 것 등이다.

17대 당선자들의 보좌·비서진 구성 고민은 중앙당의 사정과도 맞물려 있다. 현재 열린우리당의 유급 사무처 직원은 대략 200명 정도로, 당장 개정 정당법에 따라 이를 100명 정도로 줄여야 한다. 중앙당에선 남는 인원을 국회의원 보좌진 채용으로 소화한다는 방침인데, 이렇게 되면 9명중 6명이나(비례 포함) 초선인 충북의 국회의원들은 중앙당으로부터 가해질 이같은 압력에 운신의 폭이 좁혀질 수 밖에 없다. 한 중앙당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사무처 직원을 줄여야 하지만 이럴 경우 실업해소를 총선공약으로 내세운 우리당의 이미지가 곤란하게 된다. 의원 보좌진 전출 등으로 해소했으면 하지만 의원 개개인의 사정도 여의치 않아 해법이 쉽지 않다. 지구당이 폐쇄되기 때문에 비록 연락사무소를 운영한다고 해도 수요인력은 과거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결국 뜻을 같이하던 정치적 동반자들의 대량 실업사태가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정책보좌관은 역시 “기자출신들이 최고”
충북에서 무더기로 당선된 열린우리당 캠프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언론사 기자출신들이 선거전의 핵심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홍재형캠프엔 기자출신 정책보좌관의 좌장격인 이영진씨가 각종 선거기획을 맡아 주군의 2선을 가능케 했고, 다른 후보들도 언론사 기자출신들을 전략적으로 영입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청주 흥덕 갑의 오제세당선자가 윤찬열씨(전 충청일보)를, 충주 이시종 당선자가 박상호씨(전 동양일보)를, 제천단양 서재관당선자가 이대선씨(전 충청일보)를, 청원 변재일당선자가 조민형(전 충청일보) 유승훈씨(전 충북일보)를, 증평괴산진천음성 김종률당선자가 남기윤씨(전 충청매일)를 각각 언론특보 및 홍보·기획담당으로 영입해 격렬한 선거전에서 소위 ‘재미’를 톡톡히 본 것. 이 밖에 고정태씨(전 충청매일)와 엄경철씨(전 충청일보)도 각각 열린우리당충북도당 정책실장과 한나라당 윤의권 캠프의 책임자로 맹활약했다. 이들의 전업(?)은 도내 지방지의 열악한 급여수준과도 결코 무관치 않다.

그러나 이들은 일선 기자시절 두루 익힌 사회경험으로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고, 앞으로 대부분이 서기관급인 4급 정책보좌관으로 채용될 전망이다. 특히 이들 기자출신들은 이번 총선이 미디어 선거로 치러지면서 후보의 대 언론사 관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당선자들의 1등공신이 됐다. 대부분 40대 초·중반의 중년이라는 점에서도 역할의 중량감이 인정되는 것이다. 한 당선자는 “특정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뛰어 났다. 이른바 감(感)이 빨라 각종 방송토론회에서도 순발력있게 대처할 수 있었다. 언론사를 포함한 각계의 폭넓은 인맥관계가 선거전에 큰 도움이 됐다. 선거에 나선 인사들이 왜 이들에게 집착하는지 제대로 알게 됐다”고 기자출신들을 호평했다.

한 보좌관은 “자랑은 아니지만 기자출신들은 아무래도 장점이 많다. 현직에서 여러 계층 및 기관, 사람들을 접했기 때문에 이런 인맥이 선거전에 절대적 도움이 된다. 당선자가 국회의원이 되고나서도 마찬가지다. 기획·홍보·정책분야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보이고 있다”고 긍정론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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