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한 충청대학교 홍보과장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젊은 나이’로 10대 후반에서 20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시절을 말한다. 청춘을 하루의 시계로 바꿔보면 새벽을 깨고 찬란한 태양이 뜨는 아침에 해당한다. 대학생들을 위한 자기개발 서적으로 불티나게 팔렸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주목 받은 부분이 ‘인생시계’라는 개념이었다.

저자는 인생을 평균 수명 80으로 가정했을 때 20살이면 아침 6시 정도로 봤다. 청춘은 그야말로 희망과 기대가 충만한 인생의 봄이다.

인생의 많은 변화가 가능한 ‘청춘’이 왜 아픔으로 표현될까? 또 청춘은 왜 아파야 할까? 가치관을 확립해가고 사회적 역할에 대해 눈을 떠가는 시기인 청춘의 아픔은 개인적 문제일수도, 사회적 문제일수도 있다. 청춘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장래에 대한 불확신이다. 현실적인 표현을 빌자면 ‘취업’이다.

졸업을 앞둔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고3 수험생 시절보다도 더 열심히 도서관과 학원을 오가며 녹초가 되도록 공부에 매달린다. 학과공부 외에 자격증을 따고, 스펙도 남에게 뒤처지지 않을 만큼 쌓아도 원하는 직업을 갖기란 쉽지 않다. 경쟁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청춘에게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다.

대학에 근무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캠퍼스를 거닐며 가끔 나의 대학시절과 지금의 대학생들을 비교해 보곤 한다. 20년의 세월 동안 사회가 변한만큼 대학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대학사회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마 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그 당시도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고 지금 대학생들처럼 당시의 대학생들도 취업은 아픔 정도가 아니라 공포감이었다. 예전과 바뀐 것이 있다면 취업에 대한 고민이 당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개인을 넘어 대학사회의 문제로 변했다는 것이다.

취업률이 ‘좋은 대학’의 잣대로 평가 되면서 대학별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대학사회의 취업은 이제 학생 개인의 문제에서 대학생존의 문제로 바뀌었다. 대학이 학생의 미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이러한 모습이 아직은 다소 대학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외부의 자극에 의한 면이 크지만 반복되다보면 자연스레 대학의 역할로 자리 잡을 것이라 생각된다.

취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대학의 교육체계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대학교육이 산업현장의 욕구를 외면, 학생과 기업 모두로부터 불만을 샀지만 이제는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맞춤형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청춘의 아픔을 나누기 위한 공감대는 점차 형성돼가고 있다. 이러한 공감대속에서 청춘들도 직업에 대한 생각을 정립해가야 한다. 학점 평균을 높이고 영어점수 몇 점을 목표로 세우는 것에 모든 청춘이 고민할 게 아니라 자신이 잘하는 일, 자신이 꿈꾸던 일,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연봉 많이 받는다고 좋은 미래라고 할 수는 없다.

청춘은 인생의 시계로 이제 겨우 아침이다. 좀 더 멀리 보아야 한다. 혹자는 아픔을 성숙해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통념에 맞서 계급화 되어있는 직업의 서열을 과감히 무너트릴 수 있는 용기, 청춘은 가능하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기란 쉽지 않지만 내가 가는 길이 미래의 길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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