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대수·변재일·정우택 “이석기·김재연 꼭 제명해야”
노영민 “그런 말하는 사람들, 민주주의 소양이 문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내부경선 부정 시비에서 비롯된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사퇴논란이 ‘종북 주사파 사냥’으로 불붙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5월28일 라디오 국정연설에서 “북한 주장도 문제지만 국내 종북 세력이 더 큰 문제”라고 불씨를 지핀데 이어 지난 2일에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종북논란에 휩싸인 통합진보당의 이석기·김재연 의원은 사퇴하는 게 옳다”며 기름을 부은 것이다.

박 전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퇴를 하지 않으면 국회의원 자격심사를 통해 제명하자고 얘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여야 양당의 원내 지도부가 그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데, 사퇴가 안 되면 그렇게 가야된다고 본다”고 대답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차원에서 제명을 검토할 수도 있으나 두 의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박 대표는 4일 열린 당(黨)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헌재 판례에 의하면 비례대표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선임돼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현재 통합진보당은 비례경선 과정에 부정이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처리과정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 의원이 자진사퇴를 해줬으면 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민주 변재일 ‘제명 찬성’ 역설

논란의 당사자인 이석기 의원은 5일 국회에 첫 출근하는 자리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이 자신에 대해 의원직 자격심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입법부의 입법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또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인혁당 사건으로 민주인사가 사법살인을 당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유신의 부활을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헌법 64조 1~4항에 따르면 국회는 의원자격을 심사하며 징계할 수 있다. 그 중 3항은 ‘의원을 제명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4항에 따르면 ‘처분에 대하여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제명결정이 이렇게 절대적인만큼 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된다. 따라서 의원들은 당론에 지배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투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충북이 지역구인 8명의 의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4, 5일 이틀에 걸쳐 전화로 의견을 물었으며, 박덕흠(새누리당, 보은·옥천·영동) 의원은 끝내 연결이 되지 않았다. 또 윤진식(새누리당, 충주) 의원은 보좌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정우택(새누리당, 청주상당) 의원은 이석기·김재연 제명을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장본인이다. 정 의원은 당선자이자 당 최고위원 신분으로 이 문제를 공식 거론했다. 5월16일 열린 첫 최고위원 회의에서 “새누리당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종북 주사파가 국회에 입성해 차기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당 차원에서 이들의 국회입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또 “선거법 위반이 아니면 법원에서도 막을 수 없지만 당 차원에서 공식입장을 천명해 국회에 들어갈 수 없는 방안과 대책을 강구해야한다”고 요구했다.

검사장 출신의 경대수(새누리당, 증평·진천·괴산·음성) 의원도 정 의원과 더불어 이념의 잣대로 이번 사태를 재단하고 있다. 경 의원은 “비례대표로 정해지는 과정에 부정이 있다는 것을 통합진보당 스스로 인정한 만큼 적절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념은 별개의 문제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사상을 밝혀야한다. 침묵은 주체사상을 인정하는 꼴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의원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국회에서 자격심사를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변재일(청원) 의원도 제명에 힘을 실었다. 변 의원은 “통합진보당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국회법에 따른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것이 나를 포함한 민주통합당 다수 의원의 생각일 것으로 본다.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니라 법적으로 처분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정치적으로는 부적절하다. 제명작업에 들어가면 대부분 동참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윤진식 (새누리당, 충주) 의원은 보좌관을 통해 “당론에 따를 것이다”라고만 밝혀왔다. 이는 박근혜 전 위원장의 ‘제명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 송광호만 ‘제명 불가’

새누리당 의원 중에는 송광호(제천·단양) 의원만 ‘제명불가’를 주장했다. 송 의원은 “종북 논란은 국민들이 판단해야지 다른 정당에서 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과 절차를 존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송 의원은 그러나 “그래서 선거에서 국민들이 제대로 판단해야한다. 선거에서 연대한 민주통합당도 책임져야한다”고 덧붙였다.

오제세(민주통합당, 청주 흥덕갑) 의원은 견해표명을 유보했다. 오 의원은 “제명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비례대표경선에 부정이 있다’는 것에 대해 법적인 절차에 따라 위반 여부를 따져야한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몰아세울 문제는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이에 반해 노영민(민주통합당, 청주 흥덕을) 의원은 “색깔론을 들이대 제명을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얘기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적 소양부터 검증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의원은 “이번 사태는 비례대표 경선에 불법이 있었다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핵심은 사라지고 종북, 국가관 같은 추상적인 내용이 지배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 양심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사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사법부가 판단할 일이고 그게 법치다. 부정선거와 관련해서는 조사결과 드러난 내용이 상당하다면 그냥 덮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종북사냥, 매카시 광풍의 ‘데자뷰’

19대 국회가 개원한 5월30일 조선일보는 <종북 보좌관 50명 국회로…간첩단 연루·경기동부 실세까지>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종북인사들이 대거 보좌관으로 채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며 “최대 50여명의 ‘종북 보좌관’이 국회로 들어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은 ‘데자뷰 현상’을 직감했다.

1946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조셉 매카시는 1950년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력위조, 금품수수, 음주추태 등으로 궁지에 몰렸던 매카시는 미국판 색깔론으로 탈출구를 찾으려했다. 신문사들은 매카시의 입에 따라 펜을 놀렸으며 판매부수의 폭발적인 증가로 특수를 누렸다.

상원은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나 매카시는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매카시는 폭로를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도 자신들이 공산주의자들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매카시에 동조했다. 수만 명의 무고한 미국인이 조사를 당하고 심문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철창신세를 졌다. 그러나 기소된 인사들 중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카시 광풍’이 오늘의 한국과 다른 것은 미국은 의원 한 명이 주도하고 언론이 편승해 여론을 확산시킨 반면, 우리는 보수 언론이 의제를 설정하고 여당과 정부, 대통령까지 이를 쫓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언론은 안보를 상품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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