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즈의 <어려운 시절>

소종민 (공부모임 책과글·인권연대 숨 회원)

“A고등학교 B교사는 최근 학생 지도에 있어서 문제에 봉착했다. 그것은 B교사가 맡고 있는 학급의 학생인 C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날 B교사가 자신의 학급을 지나갈 때 C와 또 다른 학생인 D가 서로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B교사는 이들에게 왜 싸우는지를 물었으나 C는 대답 대신 눈을 부릅뜨고 B교사를 향하여 왜 상관하느냐고 소리치며 노골적으로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 B교사는 이를 계기로 C를 특별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B교사는 한 학부모로부터 C에 대한 불평전화를 받았다. 그 부모에 따르면, C는 방과후 학생들을 부추겨서 술과 담배를 가르치고 포르노 영화를 보여주는 등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크게 놀란 B교사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C를 불렀다.

그러나 C는 아주 비협조적이었고 그 이후 무단결석까지 하였다. 연락이 닿은 C의 부모들 또한 B교사를 피했기 때문에 B교사는 C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C가 어떤 종류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면 학교는 그를 퇴학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C의 장래를 결정하기 위한 징계 위원회가 소집되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가 다른 학생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그를 학교에 머무르게 할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보았다. 하지만 B교사가 생각하기에 C가 퇴학될 경우 그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갈 곳 없는 C은 불량배들과 어울려 자칫하면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며 그런 삶으로부터 헤어나기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우리가 B교사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선택하여 퇴학처분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공리주의자인 셈이다. 위 문제는 ‘교사가 공리주의 교육관을 따를 수 있는가’를 물은 어느 사범대학의 면접문제이다. 과연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란 무엇인가?

찰스 디킨즈(1812~1870)의 소설 <어려운 시절(Hard Times)>(1854년)은 교사 그래드그라인드와 맥초우컴차일드를 통해 공리주의 교육관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곡마단의 소녀 씨시는 그래드그라인드의 딸 루이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선생님은 ‘국가의 부’에 대해 설명했어요. 선생님이 ‘자, 이 학급이 하나의 국가라고 가정하자. 이 국가에는 5천만 파운드의 돈이 있다면 이 국가가 부자나라 아니냐?

20번 여학생, 이 국가가 부자나라이고 너는 부자나라에 사는 게 아니냐?’하고 물었죠.” “뭐라고 대답했니?” “루이자 아가씨,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누가 돈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일부나마 제 돈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면, 부자나라인지의 여부나 제가 부자나라에 사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질문과 아무 관계도 없는 거죠. 숫자로 계산된 생각이 아니니까요.”

국가의 부 총량으로 부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는 교사의 의도에 대하여 씨시는 그 국가의 부가 어떻게 소유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부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답변을 하여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힌다. ‘숫자로 계산된 생각’을 하지 못하는 학생은 그렇게 전락하는 것이다.

디킨즈는 씨시와 루이자의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행복이라는 가치마저도 숫자로 판단하려는 공리주의의 주장을 헛된 것으로 비판한다. 디킨즈와 동시대 인물인, 공리주의의 창시자 제러미 벤담(1748~1832)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효율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행복이라는 가치 자체를 숫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한 바 있다. 참고로, 디킨즈는 평생 공리주의를 미워했다.

루이자와 씨시는 다시 이야기한다. “선생님은 저에게 다시 묻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나서 ‘이 교실은 커다란 도시라고 가정하자. 시민이 100만명인데 연간 25명만이 길에서 굶어 죽는다. 그렇다면 그 비율에 대한 너의 의견은 무엇이니?’하고 물었어요. 저는―더 나은 답변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굶어죽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100만명이든 100만명의 100만배이든 마찬가지로 견디기 힘든 일일 거라고 말했어요. 그 답변 역시 틀린 거죠.” “물론 틀렸지.”

 “그러나 선생님은 한번 더 묻겠다고 하셨어요. … 해난사고에 대한 통계자료가 있는데 일정 기간 동안 10만명의 선원이 장거리 항해를 떠났는데 그중 5백명만이 익사했거나 불에 타 죽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몇 퍼센트가 죽은 거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어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씨시?” “죽은 사람의 친척과 친구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거예요.”

공리주의자들은 다수의 행복에 비해 소수의 희생 비율이 현저히 적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에 반해 <어려운 시절>의 씨시는 굶어죽는 사람과 불에 타 죽는 사람과 그 가족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디킨즈는 이러한 가상의 예를 들어, 수량적 판단이나 통계자료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공리주의자들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폭로한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다. 교육이 ‘입학율’이라는 덫에, 생산이 ‘이윤’이라는 덫에, 정치가 ‘국익(國益)’이라는 덫에 갇혀 있다.

우리의 결정과 행위 또한 ‘숫자’에 의존하여, 아니, 철저히 ‘숫자’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희생자들은 ‘부수적 피해’로 처리되고 있다. 19세기의 디킨즈가 쓴 <어려운 시절>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멱살을 잡으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공리주의는 이미 대세이기 때문이다.

신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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