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 시사평론가

통합진보당 사태 후, 아는 지인의 반가운 전화를 받으니 다짜고짜 날 더러 ‘경기동부’냐고 묻는다. 술 한 잔 거나하게 하신 지인의 목소리에서 서글픔이 묻어난다.

내가 당권파 논조로 계속 보도를 쏟아내는 인터넷 <민중의소리>에서 ‘울퉁불퉁 쇼’라는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게 의심(?)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안 그래도 <민중의소리> 보도행태에 반대하던 터라 CJ를 그만 둘 거라고 이야기 했다. 그 후 보름이 채 되지 않아서 고별방송 했다. 한 달에 12~15만 명이 듣는,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은 방송이지만 많이 아쉬웠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정치의 주체를 구분하면서 극우-온건우익-온건좌익-극좌라는 네 가지 축을 설정했다. 보비오의 이론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가로축을 병렬적으로 늘어선 정치성향 뿐만 아니라 분명히 세로축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로 그 세로축은 기존의 절차적 민주주의, 최소한의 상식에 대한 이해, 조직구성의 민주적 원리 등 보통의 사람이 인지하고 있는 사안에 대한 무지와 개념 없음, 이해력 없음 등 ‘수준’에 대한 이야기다. 즉, 이번 사태는 소위 진보라는 외피를 두른 세력의 한 축의 수준이 대단히 낮은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수준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수준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진보가 수준이 낮다는 것은 사실 형용모순이다. 진보는 수준이 낮지 않기에 진보다. 역사가 진전한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과학적 세계관으로 체득하고 있기에 진보다. 진보는 수준이 낮을 수 없다. 수준이 낮은 것은 대한민국 어버이연합과 같은 부류에나 적합한 이야기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세계적으로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으로 ‘진보도 수준이 낮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해괴망측 한 사건이다. 그래서 ‘진보함량미달사건’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당원이 당 대표의 머리를 밟아버리는 이 어이없는 사태에 대해서 일반 국민은 아예 눈을 돌려버렸다. 이 틈을 타 검찰은 얼씨구나 하고 통진당 서버를 ‘털어’ 버렸고,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은 ‘종북(從北)’의 칼춤을 춘다. 국회는 또 국회대로 ‘주출(主出·주사파 출신)군단 50명’ 운운하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약 200만 명으로 추정이 되는 통합진보당 지지자 10.3%는 이들에 의해 ‘종북빨갱이주출’이 되었다.

5월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가 벌어진 후 진보적인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때린 이유는 딱히 없다. ‘정파’가 달라서였다는 것 말고는.” 이라고 말이다. 이 상황을 지금의 검찰과 조·중·동 언론, 국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빗대어 이야기 한다면 다음과 같다. “(통진당을) 공격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정체’가 달라서였다는 것 말고는.” 이쯤 되면 절차고 뭐고 필요 없다. 대한민국 막 가자는 거다.

말짱 꽝이다. 꽝이면 다시 판을 갈아엎어야 하는데 점수 딴 거 인정해 달라고 하는 이석기? 김재연이나, 이를 틈을 타서 상대방 ‘판돈’까지 싹쓸이 빼앗아 가는 수구파나 모두 말짱 꽝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참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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