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중 건축가, 한남대 건축가 교수

맹추위에 진저리를 쳤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봄은 인정머리 없는 먼 친척처럼 잠시 왔다 가버리고 벌써 반갑지 않은 불청객처럼 여름 무더위가 방안 깊숙이 쳐들어온 것 같다.

무릇 계절은 한기와 온기 사이의 평형과 길항이 반복되며 나타나는 절기의 순환인 셈인데, 하늘과 땅의 풍광은 저마다 독특하게 변모하고, 우리 몸 또한 그 고유한 에너지 속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하루 중에도 아침 햇살은 한기가 느껴지고 오후로 갈수록 점차 온기가 더해지듯이, 계절마다 햇살의 기운과 그 정감도 제각각 다른 법이니, 공간 미학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조건 중에 하나가 바로 한기와 온기다.

한기와 온기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지혜야말로 몸과 마음을 잘 경영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좋은 집이나 아름다운 장소를 얻기 위해서도 반드시 고려해야할 대목이다.

광주 무등산을 넘어 담양에 이르면 조선 중종 때 처사 양산보(1503-1557)가 심혈을 기울여 이루어 놓은 소쇄원이 바로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여름이면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를 지나 입구에 다다르면, 서늘한 그늘 속 저 멀리 토담장의 따뜻한 빛이 눈에 밟힌다.

비록 여름이지만 그늘 속에 오래 머물다보면 자칫 음기가 너무 지나치다 싶어 섬뜩한 느낌이 들 즈음 저 멀리 황토 빛 담장을 보는 순간 우리네 마음도 이내 푸근해지는 것이다. 겨울에도 차디찬 바람이 일어 스산한 나뭇가지 사이로 슬며시 몸체를 드러낸 담장은 화사한 황토 빛과 온기를 뿜어내며 주변의 한기를 밀어내 얼어붙기 쉬운 마음을 한결 따습게 녹여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계곡물이 꽁꽁 얼었을 때도 마당에 햇볕이 자글자글 끓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애양단(愛陽壇)은 온기와 한기를 잘 다스린 집주인 양산보의 뛰어난 건축적 성과라 할만하다. 어디 그뿐인가? 소쇄원 중심에 위치한 광풍각에서 느끼는 정감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여름에는 광풍각의 서늘한 대청에서 애양단 쪽 따뜻한 햇살을 멀리 두고 바라다 볼 수 있으니, 깊은 그늘에서도 넉넉한 완상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겨울철에도 애양단으로부터 발산되는 햇살을 마주하면 자연스레 광풍각에서 그곳으로 마음과 발길이 향하게 되니, 집주변 곳곳을 산보하며 자칫 움츠려들기 쉬운 몸과 마음을 활짝 펼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면 ㄱ자로 둘러쳐진 애양단은 주변과 경계를 짓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직사광선을 품어 온기를 반사해내는 장치로서의 기능이 더 큰 셈이다. 햇빛이 잘 들도록 뒤뜰을 돋우어서 장독대를 놓아둔다든지, 붉은 색 꽃나무를 심어 북쪽의 한기를 보완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만일 태양 고도에 따라 계산된 적당한 높이의 토담장이 없었다면, 햇살의 기운과 빛깔은 흔적 없이 땅으로 흡수되어버렸을 터. 이처럼 잘 디자인된 담장덕분에 한기와 온기의 절묘한 상생의 조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그 장소의 고귀함에 탄성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소쇄원 같은 멋진 공간에서 호사를 누리고 싶은 욕망을 어찌 부질없는 사치라고 매도할 수 있겠는가.

며칠째 열기에 시달리고 있는 요즈음, 내 마음은 벌써 소쇄원에 가있으니 이 역마살 팔자를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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