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석 조 (변호사)

우리는 그보다 그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의 웃음 위로 겹쳐지는 박대통령의 초상화. 경제적 부를 이룩했다는 업적을 내세우며 50, 60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대목에서는 아찔함마저 느껴진다. 거센 박풍(朴風) 앞에 선거는 또다른 양상으로 치달아갔다. 그의 등장으로 상황은 반전되었고 그의 날렵한 움직임으로 꺼져가던 불씨에 기름을 부은 듯 인기몰이에도 성공했다. 어느 인기인도 악수때문에 손이 아파 악수 대신 하이파이브를 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언론의 대서특필을 등에 업은 채 그는 인기상종가를 달리며 보수세력의 대결집을 이루어냈다.

사실 그의 등장은 절묘한 선택이었다. 우리에게는 지금껏 사회적 약자로써의 여성이 있었을 뿐이고 보수정당 역시 여성을 리더로 삼을 만큼 여성에게 녹록한 집단은 아니었다. 그런데 곪을대로 곪아 추악함을 그대로 드러낸 부패비리 문제에 이어 탄핵문제까지 도저히 어떻게 손써볼 방도가 없자 여성에 대해 가장 폐쇄적이었던 보수 정당의 선택이 여성이었다는 점은 참으로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여성대변인을 내세웠지만 그녀의 막강파워 인파이터성 기질이 오히려 화근이 되고 별 재미(?)를 보지 못하자 이번에는 여성리더를 마지막 승부수로 띄웠다. 물론 대반전이었다.

참신성을 가미한 채 천막당사 신세를 지는 것을 시작으로, 선거전에서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키워드로 삼아 계속해서 누군가의 감성을 자극했다. 처음엔 그저 이벤트성 쇼라고 여겨졌던 것이 서서히 선거전 전반에 걸쳐 감성정치로 유권자들 사이로 파고들더니 수면밑에 있던 지역주의 정서와 맞물려 17대 국회의원 선거전의 양상마저 바꾸어버렸다.

그러나 그 속엔 진지한 정치적 반성과 발전적인 정책대안의 제시는 없고, 오직 있다면 회초리를 든 모성의 호소였다. 물론 감성이 힘이 될 때가 있고, 이성이라고해서 항상 감성보다 우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성이 필요할 때 감성으로 들쑤셔 버리고 감성이 힘이 되어주리라 믿고 있는 때에 논리나 이성을 앞세우면 맥이 빠져버린다. 감성정치의 함정이 바로 그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해보아야 할 것들이 많고 또 그것이 우리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은 무력화되고 말았다.

지역주의 정서가 되살아나고 전에 없이 눈물, 삭발, 삼보일배(三步一拜) 등 온갖 제스쳐에 가려 인물과 정책대결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언론에서는 어떤 지역엘 가든 그 지역의 민의를 대표할 후보는 없고 오직 박풍(朴風), 추풍(秋風), 노풍(老風)만이 있어 이번 선거가 지역의 정치적 대표를 뽑는 국회의원선거가 아니고 대선을 치르는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전에 없이 여성들의 정치참여와 그 약진이 두드러졌다. 비례대표 1번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과 소위 여성 리더들이 보여주는 발군의 투혼은 이유야 어찌되었건 평가받아 마땅하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들의 참여와 진출에 비추어 정치참여는 참으로 미미했고, 법적 제도적 뒷받침 역시 인색했다. 그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여성들에 대한 정치봉쇄는 역으로 정치후진을 벗어나기 힘들게 했던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리더의 등장과 나란히 마이크를 잡고 있는 3당의 여성 대변인들의 활동을 보면서 과연 이들의 등장이 기대만큼 정치를 발전적으로 추동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이번 선거전에서 ‘감성정캄라는 돌풍의 핵이 바로 여성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능력을 갖춘 자로서 국민을 위해 일을 잘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서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기대하는 것이지, 정책적 판단을 마비시켜버리는 감성정치의 대리인에 만족할 것이라면 정말로 노탱큐이다. 물론 몇몇의 화려한 쇼쇼쇼에 가려 실제로 능력있는 여성정치인들의 정치적 활동까지도 감성으로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감성정캄의 태생적 한계를 갖지 않도록 더욱 분전하기를 기대해본다. 그래서 썩어빠진 정치판에 새로운 수혈로써 한국정치의 혈맥을 더욱 활기차고 더욱 발전적으로 이끌어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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