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의 고즈넉한 비경…4대강 개발로 훼손 위기

임지은/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생태강사

꿈을 꾼 것 같다. 예천의 봄 빛. 산과 들이 자연의 빛깔로 찬란하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은 포근함과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고즈넉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고요하고 아늑하다’ 또는 ‘말없이 다소곳하거나 잠잠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사람들은 주로 유명하거나 재미있는 곳, 뭔가 짜릿하거나 신나는 곳을 좋아하고 즐겨 찾는다. 우리가 간 경북 예천은 그런 곳과는 다르다.

바로 고즈넉하다는 말과 가장 어울릴 만한 곳이다. 어릴 때 나는 낙동강 하구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그곳도 이곳처럼 모래톱이 많았다. 손으로 만지고, 뒹굴고, 발로 밟으며, 놀았던 그 모래의 빛깔과 감촉이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다. 사진처럼 내 가슴에 찍혀 있다.

답사를 갔을 때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너무 그리워해서 꿈에서 다시 보는 것처럼 설레었다. 같이 간 선생님들과 나는 감격했다. 철쭉꽃이 반겨주고, 들꽃과 눈부신 연둣빛 새순들, 소나무 향내 가득한 숲길을 따라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룡포의 모습은 달력에 나오는 사진 그 자체다. 해맑은 금·은빛 모래톱과 강물, 그림 같은 마을 풍경, 잘 기경된 논과 밭,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었다. 내성천의 물길은 산과 산 사이를 수없이 휘돌아가는 모습으로 경이로운 지형 경관을 가지고 있다.

설렘으로 내성천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내가 늘 바라보고 자랐던 강과 들, 모래톱들이 한눈에 보였다. 탄성 말고 다른 말은 잊게 했다. 물길이 350도를 돌았다는 그 말이 실감이 났다. 10도만 더 돌았더라면 섬이 될 뻔 했는데 그래서 더 운치가 있고 아름다웠다. 하늘이 빚은 작품에 틀림없었다.

모래톱, 수생생물의 보금자리

내성천의 모래톱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영주분지 화강암의 풍화층에서 공급된 모래알로 구성돼 있다. 모래톱은 유량변동의 충격을 완화해 주는 조절자의 역할과 수질정화 능력(하천의 콩팥)을 가지고 있다

7~10m정도의 깊이까지가 모래고 그 두께가 20m 정도 되는 모래톱도 있다고 한다. 은어가 서식할 정도로 1급수의 상태를 유지한다. 또 갈수기 때 물을 저장하는 역할도 한다. 모래톱은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수려한 자태와 생명의 강을 더 풍요롭게 한다. 또 수생생물과 물고기들의 보금자리며 산란처다. 내륙의 육지 생태계와 상호 보완하며 곤충류와 조류의 종이 다양해지며 풍요롭게 한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댐 건설(올해 말 완공)로 내성천이 더 이상 아름다운 강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 금빛 모래의 마지막 봄빛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린다. 내성천은 남아 있지만 지금의 모습이 아닌 삭막하고 황량한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 둘 때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데 말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익과 편리라는 명분으로 사람의 생각과 잣대로 자연은 잘리고 재단되어진다. 결국은 자연을 망치고 만다. 하늘이 준 선물을 잘 보존하고 지켜야할 책임이 있는데 도리어 함부로 훼손하고 있다 강이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다.

내성천에서 우리들은 함께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다. 내년에도 모래성을 만들면서 이곳에 놀 수 있을까? 마음을 다 해서 쌓고 또 쌓았다. 모래성이 쌓여갈 때 우리들의 염원도 함께 쌓아갔다. 이 모습 그대로 내성천이 남아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금빛 찬란한 내성천의 모래톱이 고즈넉함으로 우리들을 맞아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600년 된 소나무는 ‘보너스’

물을 만난 고기처럼 아이들은 강물과 한 몸이 되어서 논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강가에 번져간다. 소박한 행복, 자연의 품에 안긴 아이들의 평안함이 따뜻한 봄 햇살 같다. 그 모습을 사진기에 담아 본다. 사진 찍게 가까이 좀 오라고 해도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미 아이들은 강과 사랑에 빠졌다. 배경 속에 깨처럼 아이들 노는 모습이 찍혔다. 그래도 좋다. 행복해 보여서 흐뭇하다.

짧지만 긴 여운을 가지고 경북 예천의 내성천을 다녀왔다. 석송령과 황목근도 보너스로 보았다. 재산을 가진 나무들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주는 멋진 나무들이다. 600년이라는 긴 수령만큼이나 그 기품과 자태 또한 대단했다.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인 우암 이열도 공이 세운 정자다. 노거수인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염우 사무처장의 소나무 이야기도 들었다. 그 이야기에 모두 심취해서 들었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나무가 가족처럼 느껴졌다.

소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서 소나무와 더불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는 말처럼 소나무가 벗이 되어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의 옛 문화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오늘 예천을 다녀가면서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자연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벗이라는 것이다. 싱그럽고 빛나는 봄날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귀한 하루였다. 우리와 우리 후손을 위해 자연을 잘 지키고 보존하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실천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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