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유동하는 공포>·<모두스 비벤디>

소종민 (공부모임 책과글·인권연대 숨 회원)


폴란드 태생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 )은 올해로 87세가 된 노학자이다. 하지만 그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그의 저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 근거에 바탕한 예리한 현대사회 분석으로 가득 차 있다.

바우만의 말년 프로젝트가 될 ‘유동(liquid) 시리즈’는 본격적인 학술서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이번에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은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발간되었고, 제목도 일관성이 없다.

왜냐하면 이 책들의 원제는, <유동하는 근대성(liquid modernity>(2000)·<유동하는 공포(liquid fear)>(2006)·<유동하는 시대(liquid times)>(2007)이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유동 시리즈에는 <유동하는 사랑(liquid love)>(2003)·<유동하는 삶(liquid life)>(2005)·<유동하는 근대세계의 문화(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2011) 등이 있다.

바우만이 말하는 유동(流動, liquid)은 마르크스의 말에서 착안한 것이다. “모든 견고한 것들이 녹아 사라진다.” 마르크스가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의 한 귀절이다. 견고한 중세질서가 녹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근대의 견고함이 녹아 사라지고 있다는 뜻에서, 바우만은 ‘유동’을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녹아 내리고 있을까? 그것은 책의 제목과 목차에 제시된다. 근대적 삶과 죽음, 사랑과 예술, 정치와 경제, 사회제도와 생활양식 등 모든 것이 뒤바뀌고 있다.

좀더 세부로 들어가면, <액체 근대>에서는, 해방/자유, 개인성, 시/공간, 노동, 공동체라는 다섯 가지 인간 조건이 변화되는 현상을 진단한다. <유동하는 공포>에서는, 모든 것이 흘러내려 예전의 기준으로는 예측 불가능하며, 확고한 판단을 유지할 수 없는 생활 환경을 다룬다.

이러한 불확실한 생활 환경에서 야기된 전면적인 공포와 불안이 책의 주제이다. <모두스 비벤디>는 보다 거시적인 단위들을 다룬다. 이를테면, 국가 안보의 변화라든가 전지구적 이주노동과 난민 문제, 규제를 벗어난 전쟁의 일상화,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의 변질과 계급질서의 변동, 생활 공간의 분리가 제시된다. 이 책의 부제는,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이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유동하는 사랑>의 부제는 ‘인간적 유대의 연약함’이다. 공동체의 파괴로 인한 개인의 단자(單子)화를 다루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역시 번역되지 않은 <유동하는 삶>은 <유동하는 공포>와 짝을 이루는 저서이다.

이 책은 기존의 관습과 상례(常例)의 급변에 의해 발생하는 윤리적 책임의 부재 현상을 다룬다. 자기 보존(conatus)의 욕구를 이기주의적 욕망으로 가득 채운 개인들이 출현하는 배경에는 불안과 공포의 심리가 깔려 있기 마련이다. 최근작인 <유동하는 근대세계의 문화>는 바우만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소비주의’가 일상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생활양식, 즉 ‘문화’로 고착되었음을 진단한 책이다. 바우만에 의하면, “우리에게 남은 자유는 이제 소비할 자유 이외에는 없다.”(바우만, <자유>)

바우만은 1960년대 말 폴란드에서 성행한 반유대주의 광풍을 피해 1971년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래 30년간 영국 리즈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고, 1991년 은퇴한 이후로도 초인적인 저술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32세에 <레닌의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 문제>라는 첫 번째 책을 낸 바우만은 2012년 올해로 55년간 무려 64권의 저서를 펴냈다. 바우만의 저술 활동은 이른바 ‘이론적 실천’의 전형이다.

그의 작업은 철저한 실증주의와 뜨거운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다. 바우만은 결코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둘러싼 조건을 냉철하게 진단하지 않고서 손쉽게 제시되는 대안은 다시 역으로 우리 자신을 옥죄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바우만은 체험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자신의 작업에 갖는 의의에 대하여 <모두스 비벤디>의 말미에, 어느 이탈리아 소설가의 말을 빌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끊임없는 경각심이 필요하고 불안이 따르는 위험한 길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 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

신간소개

결국은 리더십이다
이용진/ 녹색시민/ 1만5000원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당신, 리더를 떠나는 것이다 <결국은 리더십이다>. LG그룹에서 인사와 연수 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한국경영인력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 이용진이 다년간 경영 현장에서 강연을 해온 경험을 토대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 간과하여 지나치기 쉬운 가장 기본적인 지침들을 제시하였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아비지트 배너지 , 에스테르 뒤플로/ 생각연구소/ 1만7000원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는 세계적 개발경제학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와 미국의 ‘예비 노벨상’인 존 클라크 메달을 수상한 경제학자 에스테르 뒤플로가 인간 본연의 ‘경제적 합리성’에 초점을 맞춰 가난을 뿌리 뽑을 방법을 다룬 책이다. 빈곤층이 구매하는 상품, 자녀 교육 방식, 자녀수 등을 알아내 그들이 사는 법을 탐구하고 시장과 제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다.

세계와 협상한 은행가
윌리엄 R. 로즈/ 삼성경제연구소/ 1만8000원
<세계와 협상한 은행가>는 시티그룹과 시티은행 부회장을 지낸 저자 윌리엄 R. 로즈가 반세기에 걸친 금융 인생을 회고하며 그간 겪은 다양한 일화를 들려준다. 이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인생의 지혜로 승화시켜 8개의 리더십 레슨 항목으로 풀어냈다. 리더십 레슨 항목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금융위기의 현장에서 쓴 저자의 치열한 협상과 담대한 결단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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