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 자치행정 부장

17대 총선도 끝났다. 정치의 계절을 실감이라도 하듯 최근의 대화는 모두 선거로 시작해 선거로 끝을 맺었다. 대통령탄핵을 정점으로 불붙은 총선열기는 자잘한 일들을 제쳐놓을 정도로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감성정치, 이벤트정치, 삭발정치, 눈물정치 등 다양한 용어들도 등장해 달라진 정치풍토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여성들이 정치를 가깝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고무적인 사실이다. 과거 여성들은 정치를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고 근처조차 얼씬거리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정치적’이라는 소리는 곧 자신을 비난하는 말로 알아들었을 만큼 철저히 생활에서 정치를 분리시켰다. 96년 15대 선거에서 여성의원이 전국구를 포함 9명, 16대에서 11명 등 전체 10%도 안되는 여성의원 비율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17대 총선을 겪으면서 여성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졌다. 박근혜·추미애·전여옥·박영선씨 등의 활동을 바라보며 여성들도 나설 수 있고, 나도 그 대열에 낄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네 사람의 개인적인 평가는 여기서 접자. 다만 이들이 날마다 TV와 신문 지면을 장식하면서 여성들이 정치를 바로 보고, 더 이상 피하지 않을 대상으로 여긴 것 만으로도 큰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여자가 무슨 정치를 하느냐’며 한발짝도 허용하지 않던 남성 유권자들이 박근혜·추미애에게 열광하는 것을 본 것 만으로도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선거 때만 되면 여성계는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항상 준비된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공허하게 끝나곤 했다. 그래서 올해는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에서 전국의 각계각층에서 뛰고 있는 여성후보 102명을 선정 발표하며, 당에서 여성후보가 없어 공천을 못준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쐐기를 박기도 했다. 그러나 충북의 여성계는 아직도 극심한 인물난을 겪고 있다. 이번에도 2명의 여성이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을뿐 지역구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여성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진출해야 한다. 외곽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외치기 보다는 중심으로 들어가 산적한 여성문제를 해결하고, 여성관련 예산을 늘려 피부에 와닿는 생활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몇 년 전 여성계가 3·8 여성대회를 맞아 표방한 구호 중 ‘주변에서 중심으로’라는 것이 있었다. 이 구호 만큼 정확한 것이 어디 또 있을까. 그렇다. 여성들이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회, 지방의회, 자치단체로 진출해 법을 만들고 조례를 제정하는 일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이번 선거기간 동안 여성의원이 늘어나면 정치인들의 부패지수가 줄어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여성의원의 증가는 국가 청렴도도 높이고, 여성 지위향상에도 한 몫 단단히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그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돌아오는 지방선거에서는 여성 후보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아니, 그 이전에 여성계에서는 말로만 그치는 여성정치세력화 논의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론을 수렴해 후보를 만들고, 지원하고, 당선운동을 벌이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여성의원이 늘어날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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