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은 합숙하지 말라지만 성적 내려니 ‘필수’
공립에 지원편중, 야구명문 세광은 반지하 23년

“사람 욕심은 끝이 없으니 다 채울 수는 없지만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지원에서 다른 지역 학교보다 나은 성적을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 아닌가요”
취재과정에서 한 고등학교 운동부의 지도자는 이렇게 속내를 드러냈다. 다른 학교 부장교사는 “차라리 해체를 시켜달라고 학교와 도교육청에 건의를 하고픈 심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지도자는 공립학교에 순회코치가 집중되는 등 지원이 편중되고 있는 현실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오래되고 해묵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지역 다수 운동부가 놓인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여기에서 환경이란 무엇일까. 환경이란 생물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을 말한다. 이 같은 정의를 운동선수에게 적용하면 운동시설과 숙소 등이 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지역 내 운동선수들은 무엇을 먹고 어떻게 훈련하고 어디에서 자고 있을까.

▲ 선수들이 오전 훈련과 점심을 먹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헝그리정신
인간은 인간을 배신하지만 인간이 흘린 땀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특히 운동에서도 그렇다. 타고난 재능을 보이는 선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무던히도 땀을 흘리며 하루하루 실력을 늘려가는 운동선수들이 더 많다.

▲ 선수들이 점심시간 숙소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마리오 발로텔리, 안토니오 카사노 등 숱한 일탈과 기행에도 뛰어난 재능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주목을 받는 선수들이 있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이들에게 ‘악마의 재능’을 지녔다고 할까. 물론 전자의 선수들이 더 많고 롱런하기 마련이다. 학생신분인 고등학교 선수들 역시 ‘악마의 재능’을 가진 선수보다는 전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가운데 이들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 ‘넘버쓰리’에서 불사파의 두목 조필(송강호 분)은 부하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조한다. 그 예로 조필은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딴 ‘현정화’를 거론한다. 부하가 현정화가 아닌 ‘임춘애’라고 말해도 막무가내다. 좌우지간 ‘헝그리 정신’은 한국스포츠계가 상대편보다 우수하다고 내세우는 정신력의 상징이었다. 신체조건과 기본실력이 뒤져도 상대보다 정신력에서 앞서기 때문에 해볼만 하다는 과학적이지 못한 믿음은 스포츠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책임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다.

▲ 신흥고 농구부 숙소
지금 운동선두들에게 이러한 헝그리 정신을 강조할 수 있을까. 신흥고 농구부의 이철우 부장교사는 “그랬다가는 모두 도망갈 것”이라고 웃었다. 이 부장교사는 “요즘 학생들이 과거와 다르듯 선수들도 과거와 다르다”며 잘 먹는 것은 기본이라 말했다. 운동선수들의 경우 대개 같은 학교 다른 학생들과는 분리 돼 식사를 한다. 취재진이 방문한 신흥고(농구), 대성고(축구), 세광고(야구) 운동부도 따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난 11일 점심시간을 맞춰 방문한 신흥고의 숙소에 수업을 마친 선수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이 날은 신흥고 농구부 선수들이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 원주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다.
그동안 침체기였던 신흥고 농구부는 이 대회에서 8년만 전국대회 승리를 거두며 선전했다. 신흥고 뿐만 아니라 지방 학교 농구부는 그 동안 우수한 선수들을 서울에 위치한 고등학교에게 빼앗기며 선수수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은 부산 중앙고의 경우 등록선수 6명에 불과했으며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는 5명에 불과했다. 결승에서 선수들이 퇴장당해도 교체선수가 없어 3명으로 경기를 마쳤다. 신흥고 역시 이러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올해와 내년에 좋은 선수들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신흥고 숙소는 일반 가정집과 비슷한 구조다. 마루와 주방을 겸한 공간이 중앙에 위치해 있고 선수들의 쉬는 2개의 방과 화장실, 빨래방이 있다. 2층은 윤명수 코치가 사용하는 방이다. 식사준비는 고용된 아주머니가 도맡아한다. 이 날 식사에는 계란과 고기, 나물 등이 올라왔다. 선수들은 금방 밥그릇을 비웠다.
신흥고 농구부는 숙소를 보유하고 있지만 평소에 합숙을 하지는 않는다. 교육청 또한 운동부의 합숙생활을 지양하고 있다. 신흥고의 경우 외지에서 온 학생의 경우 주변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시합을 앞둔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합숙생활을 하고 있다. 장롱에는 이불이 한 가득이다. 이 부장교사는 “이불이 1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라 말했다. 관물함 역시 이부장교사가 지인을 통해 구해온 것이다. 이 역시 오래돼 문짝이 떨어져 있다. 그리 크지 않은 방에는 선수들의 옷을 빼곡했다. 빨래방에 다 말리지 못한 선수들의 옷이 숙소 밖에도 가득히 걸려있었다.

신흥고가 훈련하는 체육관의 시설은 숙소 옆에 인접해있다. 이부장은 훈련시설에 대해 “다른 학교에 비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체육관 한쪽 면에는 SK나이츠 프로농구단이 연고지를 청주에서 서울로 옮기 때 전해주고 간 운동기구들이 차지하고 있다. “오래됐지만 아직 쓸만하다”는 것이 이부장이 말이지만 몇몇 기구는 고장이 나 있다.

▲ 비가 내리던 14일, 청주 대성고 축구부가 학교 운동장이 아닌 용정축구공원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대성고 축구부는 곧 전용훈련장을 갖는다. 사진/육성준 기자

반지하 숙소 23년

신흥고의 경우 훈련시설과 숙소가 지근거리지만 대성고 축구부의 경우 전용훈련시설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주로 훈련하는 곳은 용정축구공원으로 1회 사용할 때마다 3만원의 이용료를 내야한다. 1년 사용료를 계산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다. 예약제이기 때문에 비가와도 훈련을 강행 할 때가 많다.

물론 용정축구공원이 보유한 3면은 모두 인조잔디구장이다. 인조잔디구장은 맨땅보다 선수들이 부상당할 확률이 더 크다. 비가 오면 부상당할 위험이 적어져 때로는 반가운 존재이기도 하다. 대성고 축구부를 이끌고 있는 남기영감독은 “곧 학교에도 훈련시설이 생겨 다행”이라며 반가움을 나타냈다. 그렇지만 쓴소리를 거두지는 않았다. 남 감독은 “청주의 체육시설들이 전국과 비교해 열악하기 그지없다. 종합운동장에 사계절 천연잔디구장을 가지고 있는 보은군만도 못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그리크지 않은 방에는 2층 침대에 빼곡히 놓여있다. 여름철이면 냄새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감독은 이날 축구부 숙소를 고민 끝에 공개하기도 했다. 몇 해 전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아직 부족한 곳이 많다. 외관 역시 대성고 축구부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숙소는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분리돼 있고 큰방과 작은방 등으로 나뉘어있었다. 큰방에는 2층침대 15개가 촘촘히 놓여있었다. 대성고축구부의 경우 외지 학생의 많아 숙소가 필수다.

축구부 주장인 고승범(3학년)학생의 경우 고향이 제주도이며 윤종윤, 김용진선수 등 주요선수들이 대부분의 외지에서 대성고로 진학한 경우다. 남감독은 “운동을 하면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식비라도 아끼기 위해 아이들에게 다른 학생들과 같이 급식을 먹게 하기도 했지만 금방 체력적인 문제를 들어내는 등 문제가 많아 따로 식사를 하고 있다. 지금은 화요일 따로 고기를 섭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광고야구부는 송진우, 장종훈 등 은퇴한 선수 이외에도 박정진, 송창식(이상 한화이글스), 고효준(SK와이번스) 등의 현역선수를 배출한 충북 야구 제일 명문이다. 훈련구장의 시설도 빼어나다.

하지만 세광고 야구부의 최대 약점은 숙소다. 학교건물 한쪽에 반지하처럼 내려간 곳에 숙소가 자리하고 있다. 20년도 넘었다. 장마 때 비가 오면 양동이 대 빗물을 받아내야 할 정도로 열악하다. 샤워기도 두 개에 불과하다. 밤훈련을 마치고 선수들이 샤워를 시작하면 마치기까지 2시간까지 걸린다. 세월이 지나 선수들도 변했지만 아직 환경은 ‘헝그리정신’을 강조하던 때에 머물고 있다.

“선수들이 생활하는 숙소, 23년째 그대로”
김용선 세광고 야구부 감독

▲ 김용선 세광고 야구부 감독
우리나라 최고 인기스포츠 프로야구의 젖줄은 역시 고교야구다. 과거만 해도 고교야구선수들이 프로와 대학진학의 양자택일에 놓일 경우 대개 대학진학 후 프로입단을 기약했지만 지금은 고교에서 바로 프로야구로 진출하고는 한다.
지난 해 세광고등학교를 졸업한 윤정현, 김병근선수 등도 곧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아직 1군 무대에서 올라오지만 않았지만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프로선수를 다수 배출한 세광고지만 선수들의 생활하는 환경은 녹록치 못하다.

모교에서 부임 3년째를 맞는 김용선감독은 “자신이 고교를 졸업 한 후 바로 아래 후배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숙소를 23년째 사용하고 있다. 모든 게 그 당시 그대로”라고 담담히 말했다. 김감독은 “우수한 중학교 졸업 예정 선수들을 스카웃해 학교로 데려와 연습장을 보여주면 좋다고 하지만 숙소를 보고는 도망간다. 이렇게 놓친 선수들은 천안북일고 등 타 학교로 진학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천안북일고의 재단인 ‘북일재단’은 한화그룹의 지원을 받는다. 시설이 프로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천일북일고는 1977년 창단 후 전국무대에서 23회 우승, 준우승 15회, 3위 입상 21회를 기록하고 있다. 대기업이 재단으로 있는 학교와 비교를 한다는 것이 사실 우습지만 지원 없이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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