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활동가, 박근혜 위원장에게 편지

권은숙 여성장애인연대(여장연) 사무국장은 지난 3월 30일, 4.11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참석한 당시 청주 상당 후보 지지 유세현장에서 “여성친화 녹색도시 청주에 성상납 의혹 후보는 필요 없다”라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여장연 몇몇 회원들과 함께 피켓 시위를 벌였다.

▲ 권은숙 여성장애인연대 사무국장.

성상납과 논문표절 등 도덕적으로 여러 문제가 의혹으로 제기 되고 있는 후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는 단순 명확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후보가 국회의원이 돼서 법을 만드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정의롭지 않은 법의 지배를 받고 싶지 않았다. 생각은 이내 행동으로 옮겨졌다.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20여분의 짧은 시간 동안 빨간 조끼를 입은 연로한 새누리당 지지자들로부터 “집에 가서 밥이나 해 쳐 먹어라” “여자가 어디서 콱!” “니가 봤냐? 청주에서 하는 거?” 등의 막말을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깨를 손으로 치고, 몸으로 밀치고, 심지어 자전거로 옆구리를 들이 받는 폭력도 당했다.

하지만 권 국장은 참정권을 쟁취하기위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언니들 덕으로 어려움 없이 얻은 투표권을 생각했다. 이 소중한 투표권을 포기하고 자격 없는 후보의 활보를 보고만 있는 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언니들에게 낯이 안서는 일이라 생각했다.

남성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욕을 하고 눈을 부라리며 위협하고 침을 튀길 때, 겉으론 쫄지 않은 척 노력했으나 무서웠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며 피켓시위로 정 후보의 낙선운동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후 뜻밖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 왔다. 선관위도 문제 삼지 않았던 피켓시위에 대해 청주 상당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선거법과 집시법 위반이라며 조서 받으라는 통보가 온 것. 지루한 조사 이후 경찰은 결국 불기소 의견을 검찰에 올렸지만 검찰에선 아직 대답이 없다.

‘500인 소송단’ 꾸려 정 당선자와 싸운다

권 국장은 20여년 넘게 시민운동을 하며 정치인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없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권 국장은 “유권자로서 자격이 안 되는 후보자를 피켓시위로 표현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미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것으로 인해 벌금이 나온다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권 국장은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박봉의 활동비로 살아가는 마당에 벌금을 만들기 위해 후원호프를 하는 등 고단한 과정이 싫다고도 했다.

하지만 박 비대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낸 지 1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 답은 없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청주의 한 여고생이 보낸 편지에 대한 화답으로 조만간 박 비대위원장이 온다고 한다. 권 국장은 그 소문에 그저 쓴웃음을 짓고 만다.

향후 권 국장은 이번 4.11 총선에서 정우택 당선자로부터 피해를 본 시민들을 모아 ‘500인 소송단’을 꾸릴 계획이다. 또 충북총선유권자넷, 여성연대 등과 함께 정 당선자의 낙마를 위해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게 편지 보내기까지 과정

3월 22일 "정우택 후보에게 제기된 성상납등의 4대 의혹에 대한 조속하고도 엄중한 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을 촉구한다" 여성연대 기자회견.

3월 30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참석한 정우택 후보 유세장에서 "여성친화 녹색도시 청주에 성상납 의혹 후보는 필요없다" 피켓 시위. 

4월 9일 "정우택 후보 성매수, 금품향응 의혹 사실로 드러났다.새누리당은 공천 취소, 정우택 후보는 자신 사퇴하라." 충북총선유권자넷 기자회견

4월 24일 지난 3월30일 직접행동으로 피켓시위 한 것에 대해 청주 상당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선거법과 집시법 위반이라며 조서 받음

4월 29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앞으로 편지 씀

편지 올린곳

http://www.facebook.com/saenuridang 새누리당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saenuridang#!/ghpark.kr 친근혜 공식 페이스북

http://www.minjoo.kr 민주통합당 홈피

다음은 편지내용 전문.

박근혜 위원장께.

봄이 짙어갑니다. 따스함이 독했던 추위를 잊게 하고, 더 푸른 녹음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주에서 여성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입니다.

오늘은 흐리고 고요한 일요일 오후입니다. 팅 빈 사무실에서 커피를 한잔 준비하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이틀 동안 지리산 둘레길 20km를 걷고 왔어요. 양심에 반하지 않고 계속 살 수 있을 것인가 살아온 날을 돌아보는 시간 이었습니다.

지난 4월 19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데 걸림돌이 되거나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결코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용기를 내어 글을 시작합니다.

이미 김형태, 문대성 두 분의 당선자를 ‘국민의 마음에 맞는 새 국회’를 꾸리는데 부적합 하다 판단해 탈당 선언 한 것을 알고 있으며, 방송을 통해 한 사과의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좋은 이야기가 아닌 것이 유감입니다만, 저로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충북의 정우택 당선자는 2007년 충북지사 때 이명박 대통령후보에게 ‘긴긴 밤 잘 보내셨습니까? 예전 관찰사였다면 관기(官妓)라도 하나 넣어드렸을 텐데’라는 발언을 했었습니다. 당시 이 후보는 ‘어제 온 게 정지사가 보낸 게 아니었냐’고 화답했다 합니다. 2004년부터 시행된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엄연히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충북도지사의 관기발언은 충북의 여성들을 모멸스럽게 하기에 충분했었습니다. 그 후 정우택 당선자의 ‘관기발언’으로 명명 되었고, 전국의 여성단체들로부터 빈축을 샀습니다.

2012년 3월 15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 블로그 'Crime to Guilty'에 ‘새누리당 정우택 후보(청주 상당) 변태적 성매매 의혹’이란 글에서 제보자는 “정 후보가 친박계 핵심을 자처하며 충북지역의 공천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며 평소 정 후보가 보여준 비도덕적 행위는 결코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가서는 안되는 범죄행위로 판단해 제보하기에 이르렀다”고 심경을 밝히며, 관련 의혹을 구체적으로 지적했습니다.

저는 3월 16일 오후 5시30분 ‘아시아뉴스통신’을 통해 ‘청주상당 모 유력후보 성매매의혹 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보도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허민규 전 보좌관은 정우택 당선자의 충북도지사 선거캠프 SNS팀장을 맡아 당선을 돕던 인물이었는데, 4월 8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우택 새누리당 청주상당 후보와 함께 했던 지난 2008년, 2009년 두 차례 제주도에서 열린 충북청년경제포럼 워크숍에서 골프 라운딩을 하고 1차 식사와 술, 2차 여성접대부와 동석한 술집 코스로 진행된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2차 술자리가 끝나갈 때면 정 후보는 충북청년경제포럼 간부 몇 사람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함께 동석했던 여성들이 따라서 나갔다"며 "동석했던 대부분의 회원들은 정 후보가 여성접대부와 함께 동행 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정 후보가 도지사 시절 충북청년경제포럼 회원들로부터 안마의자와 핸드폰, 생일축하금을 받은 의혹이 있었는데, 지역 언론의 취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더구나 일식집에서 쓴 업무추진비가 4,294만원으로 드러났습니다. 식당 주인과의 불륜설도 공공연한 사실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치는 ‘바르게 다스린다’ 혹은 ‘바르게 자리잡도롭 돕는다’ 는 것입니다. 바르게 다스리거나 바르게 자리 잡는 것을 도와야 하는 정치인은 도덕적으로 민감해야 하며, 다른 어떤 공직자 보다 자기 성찰에 치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개 활동가인 저도 활동현장에서 약한 이들을 대상화하거나 의도하지 않았으나 분리, 배제, 거부 하지 않았는지 매일 돌아봅니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도민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이가, 국회에서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정우택 당선자는 26일 CJB청주방송<청주 상당 후보자초청토론회>에 참석해 “도지사도 주말에 골프를 칠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도민이 궁금한 것은 골프치고 술 마신 것이 아니며, 성상납을 받았는지 금품을 수수했는지 여부였습니다. 쟁점인 향응과 성상납 의혹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오만한 태도로 진실을 비껴갔습니다. 그가 국민을 섬길 수 있을까 의문스럽습니다.

박 위원장께서는 지난 4월 25일 “선거가 끝나자마자 어려운 민생을 해결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데 일부 당선자들의 과거 잘못들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리는 일이 있었다”하시며 “저희 당에서 철저히 검증하지 못했던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하셨습니다.

“19대 국회는 많은 면에서 실망을 안겼던 18대 국회와는 완전히 다른 새 국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민심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의 마음에 맞는 새 국회를 함께 만들어가자”고도 말씀하셨지요. 믿겠습니다.

위원장께서 3월 30일 청주에 방문하셨을 때 저는 정후보의 부도덕함을 알리기 위해 노란 피켓을 만들어 성안길로 갔었습니다. 박 위원장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빨간 조끼를 입은 어르신들께 ‘집에 가서 밥이나 해 쳐먹어라’는 욕설을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어깨를 밀치며, 자전거로 옆구리를 들이 받기도 하셨지요.

그 일로 저는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 조서를 받았습니다. ‘국가가 자신의 권력과 권위의 원천으로 개인을 더욱 고귀하고 독립된 힘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대접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자유롭고 계몽된 국가는 없는 것이다’ 한 데이빗 소로우의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 유일한 재산인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제한 당했습니다.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 만큼이나 큰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활동가란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양상을 비판하고 공정한 공동체의 토대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역할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박 위원장께서는 2월 29일 청주대학교 학생 간담회 후 "새누리당은 공천에서 도덕성과 지역발전을 위한 참된 일꾼인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하셨습니다.

또한 당의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의지, 당명과 정강정책 개정 등을 언급하면서 "국민에게 잘못을 끊어내고 희망을 주는 정치를 계속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지요. 동의합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신과 증오심을 야기해 결과적으로 모두를 억압하는 권력은 옳지 않습니다. 정우택 후보가 충북의 참된 일꾼이 될 수 있을지 다시 검증해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추운 겨울지나 봄이 오듯 그리고 짙푸른 녹음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시절이 오리라 의심하지 않고, 봄을 즐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 긴 편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년 4월 29일 충북 청주 권은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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