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

2001년 9월 11일 오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이상한 화면을 보았다. 대형 여객기가 뉴욕의 국제무역센터 주위를 한바퀴 돌다가 건물을 들이받는 모습이었다. 마치 비행기가 건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곧이어 연기가 피어올랐다. 3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른바 9·11 테러였다.

그 전에도 우리는 이것과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밤하늘을 가르며 총탄이 일렬로 날아갔다. 불꽃놀이를 하듯 사방에서 포탄이 터졌다. 1991년 걸프전이었다. 스펙터클한 전쟁 영화 그 자체였다. 충격적인 이미지와 소리로 가득한 TV는 우리를 사로잡고 어떤 알 수 없는 쾌감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2011년 3월 11일, 우리의 눈과 귀는 다시 TV 화면에 사로잡힌다. 거대한 파도가 도시 하나를 집어삼키는 장면이었다. 스펙터클한 영화가 다시 상영된 것이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이 알 수 없는 쾌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 사회의 파괴와 한 나라의 재난을 TV 화면으로 안락한 소파에 앉아서 본다는 데 있다. 우리만 아니면 된다는 극단적인 이기심이 바탕에 깔린 쾌감인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우리는 이미지와 소리들에 일방적으로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포탄이 떨어져 가족을 모두 잃는 아픔이라든가 쓰나미로 마을 사람 전부를 잃는 고통이라든가 하는 일은 바다 건너 저 먼곳의 일일 뿐이다. 타인의 고통에 쾌감을 느끼는 가학증(sadism)에, 사태에 무감한 우리 자신을 다시 가학적으로 대하며 쾌감을 느끼는 피학증(masochism)까지 더해져 쾌감의 강도는 한층 높아진다. 노동으로 지친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의 대가로 인간성의 파멸이라는 최대의 두려움을 서비스하고 있다.

우리를 압도하는 스펙터클은 도처에 있다. 감정이입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는 기다릴 필요 없이 TV만 켜면 웅장하고 화려한 스펙터클을 만난다. TV만이 아니다. 도로에서 만나는 고급 승용차와 100평에 육박하는 고급 아파트가 우리를 사로잡고, 여러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폰이나 수백만을 돌파한 영화나 소설책들도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 자체도 스펙터클 아니고 무엇인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한국경제의 상황도 스펙터클하다.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고, 다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경제정책 역시 스펙터클하다. 선거 방송은 예외일까. 역전, 재역전하며 중계되는 득표 상황은 스펙터클하다. 우리는 스펙터클의 틀 안에서 부정하고 긍정한다. 스펙터클에 기대어 손쉬운 쾌락을 찾고, 그 쾌락은 끝이 없다. 욕망의 결핍과 충족이 자동으로 제공되는 시스템, 그것이 스펙터클 사회다.

스펙터클(spectacle)의 어원은 라틴어로 ‘보다’를 뜻하는 specere의 수동형 명사 스펙타쿨럼(spectaculum)다. 그러므로 스펙터클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스펙터클의 비밀이 있다. 스펙터클은 이미지와 소리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든다.

스펙터클에 의해 우리 인간은 수동적 존재가 된다. 헛것(simulacre)이 화려하고 웅장한 실재로 탈바꿈해 인간 위에 선다. 결국 스펙터클은 이미지와 소리로 매개된 인간 소외를 뜻한다. 스펙터클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산물이자 욕망을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 창안한 화폐가 우리의 욕구 전체를 관장하는 지배자의 지위에 올라선 것과 같다. 이 시대의 화폐야말로 스펙터클의 전형이다.

1968년 5월, 지배질서에 저항한 파리의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 기 드보르(Guy Debord, 1931~1994)는 스펙터클의 지배에서 벗어날 방안을 모색했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은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스펙터클의 사회>·4)라고 말한다.

우리 자신의 실재적인 삶을 되찾는 길은 이 강요된 스펙터클의 쾌감에서 우리 스스로가 빠져나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관계를 능동적으로 다시 정립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기 드보르는 모든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을 제안한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편안한 것을 불편하게, 아름다운 것을 추하게, 선한 것을 악하게, 다시 거꾸로 낯선 것을 친숙하게, 불편한 것을 편안하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보는 일 말이다.

신간소개

크라우드 소싱
제프 하우/ 리더스북/ 1만5000원
<크라우드소싱>은 IT잡지 <와이어드>의 객원편집자이자, <인사이드닷컴>의 수석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제프 하우가 집단지성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참고해야 할 요소를 다룬 책이다. 저자가 2006년 6월 <와이어드> 기사를 통해 주창한 단어‘크라우드소싱’은 전문가 대신 비전문가인 고객과 대중에게 문제의 해결책을 아웃소싱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야하다
더글라스T.켄릭/ 21세기북스/ 1만5000원
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인간 본성의 비밀 <인간은 야하다>. 남자는 왜 어리고 예쁜 여자만 찾는 것일까? 남자들은 왜 비싸고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을 잘 구매할까? 이 책은 섹스에 열을 내고, 살인 욕구를 갖고 사는 인간의 심리 밑바닥에 진화와 번식을 향하는 본성이 숨어 있음을 풍부한 에피소드를 통해 말해준다. 섹스, 살인, 편견, 내 안의 다양한 자아, 기억의 왜곡 등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현상을 진화론과 연결시켜 해석한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박범신/ 은행나무/ 1만4000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의 저자,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의 에세이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고요한 호수를 마주 보는 고향 논산의 조정리 집으로 내려간 저자가 틈틈이 SNS ‘페이스북’에 썼던 2011년 11월부터 2012년 3월까지 겨울의 기록을 모아 엮은 책이다. 미지의 먼 곳에 대한 그리움에 목말라 어깨를 잔뜩 숙이고 기찻길 위를 걷던 열일곱 그 소년에서 반세기가 지나 반백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저자가 그곳에서 얻은 문학에 대한 순정을 오롯이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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