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과 <신동엽 전집>

소종민 (공부모임 책과글·인권연대 숨 회원)

4월은 역시 잔인한 달이다. 이젠 잊고 싶은 이름들이 마치 악령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어야 할만큼 힘겨운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살림은 나날이 힘들고, 이른바 이름값 하는 사람들은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썩은 내를 천지사방에 맘껏 진동시키고 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오늘 또한 내일과 달라야 하거늘 여전히 낡은 것들은 새 봄의 기운을 가로채 회춘을 이루고, 새로운 것들은 그 기운을 도둑맞아 싹을 틔워보지도 못한 채 사정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럴진대, 지금 눈앞의 이 찬란한 봄의 꽃은 무슨 의미인가.

4월은 갈아엎는 달이다.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연안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며, 46년전 4월에 시인 신동엽(1930~1969)은 노래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갈아엎지 못했다. 갈아엎기는커녕 밭을 갈아엎을 사람이 땅과 집을 잃고 하루 먹을거리를 찾아 길을 떠돌고 있다. 갈아엎을 땅도 이젠 없다. 몽땅 콘크리트를 들이부어서 싹이 움틀 땅 한자락이 없다.

보습과 쟁기와 가래와 쇠스랑도 쓸모 없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고 시인은 노래했지만 껍데기는 더욱 두꺼워져 무엇으로도 벗겨내기 어렵게 되었다. 그 알맹이에 배어 있을 “향그러운 흙가슴”은 어디에 있나. 4월의 시 앞에, 4월의 시인 앞에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나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 흙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종로5가>) 있던 것도 이젠 지난 일이 되었다. 길 떠나지 않아도 방구석에 스스로 갇혀 먼지로 범벅이 된 채 모니터에 넋을 빼앗기며 외로이 푸석푸석 시들고 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잠들어도 꿈 하나 꾸지 못하고 있다. “꽃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이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황금이삭 타작하는 순이네 마을 돌이네 마을마다/ 높이높이 중립의 분수는/ 나부끼데.”(<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꿈을 잃어, 콘크리트처럼 굳어버린 머리를 얹고다니는 죽은 혼들이 조급하게 이곳저곳 어디론가 흘러들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를 걷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온통 껍데기뿐이고 알맹이는 오래전 이미 말라 비틀어진, 텅 빈 영혼들. 그 누가 밭을 갈아엎으리오.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 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 뿐이다”(<육법전서와 혁명>).

그렇게 혁명의 본 면모를 일러준 시인 김수영(1921~1968)의 전언도 잊혀져 오늘 우리는 온통 반혁명의 군중이 되어 있다. 선거가, 정치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통탄하는 우리들은 왜 자신의 낡은 방법은 의심하지 않는가. 자신의 낡은 심장은 왜 도려내지 않는가. 자신의 몸, 자신의 마음은 바꾸려 들지 않는가.

그러고서 새로운 것을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 아닌가. 무릇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기도-4·19 순국학도위령제에 부치는 노래>)하려 하지 않고서, 낡은 마음은 그대로 둔 채 겉모습만 치장하지 않는가. 52년 전의 4월 혁명은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 우리가 자신의 낡음을 바꾸지 않는 사이, 5·16과 12·12라는 반혁명이 끼어들었고, 그렇게 혁명은 멀어져 갔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그 방을 생각하며>) 시인은 새로운 4월이 1년만에 낡은 5월로 되돌아가는 광경을 목격하며 심히 참담했으리라. 그렇지만 이 또한 시인에게는 거름과 같은 것이어서 이 패배의 충격을 재산으로 삼는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같은 시) 자유에 섞여 있는 피의 냄새를 맡은 이는 혁명의 씨앗을 몸과 마음에 들인다.

“자유를 위하여/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푸른 하늘을>).

결국 김수영 시인이 말하는 ‘혁명의 고독’이란 신동엽 시인이 말한 ‘향기로운 흙가슴’과 같은 것이리라. 1960년 4월의 푸른 하늘과 붉은 대지는 고스란히 혁명의 시간에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늘 가득 바람처럼 더 높이 더 높이 흩날리는 자유의 냄새를 맡고, 산천 가득 메운 진달래, 그 흙가슴에서 넓고 깊은 생명의 숨결을 느꼈으리라.

시인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낡은 것을 갈아엎고 새로움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진통의 시간에 살아 있다. 죽지않고 여전히 두 시인은 살아 2012년 4월 오늘, 다시 혁명을 재촉한다. 일어나 싸우라고, 낡은 몸, 낡은 마음, 껍데기를 벗고 자유를 향하여 비상하라고 자꾸 재촉한다. 알몸보다 부끄러운 것은 두껍고 낡은 껍데기다.

신·간·소·개

맏이
김정현/ 학고재/ 1만2000원

김정현이 선보이는 ‘가족 소설’ 연작의 결정판 <맏이>.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켰던 <아버지> 이후 <고향 사진관>, <아버지의 눈물>, <가족> 등 우리 시대 가족의 의미를 묻는 소설을 꾸준히 써온 작가가 이번에는 그동안의 주제가 집약된 작품을 선보인다. 맏이라는 책임감으로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4남매의 맏이인 주인공 성도.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그에게는 공장을 유지하는 일과 다른 남매들보다 형편이 처지는 막내 명도가 고민이다.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자음과모음/ 1만1000원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선영의 작품 <시간을 파는 상점>.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당선작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소방대원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빠의 뜻을 이어받은 주인공 온조. 인터넷 카페에 ‘크로노스’라는 닉네임으로 ‘시간을 파는 상점’을 오픈해 손님들의 어려운 일을 대신 해주면서 자신의 시간을 판다.

왜 부자들은 모두 신문배달을 했을까
제프리 J.폭스/흐름출판/1만2000원

춥고 어두운 골목에서 배운 진짜 비즈니스 <왜 부자들은 모두 신문배달을 했을까>. 록타이트사의 마케팅 담당 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마케팅 컨설팅 업체인 폭스사를 설립해 최고의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저자 제프리 폭스가 성공한 리더들에게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워렌 버핏, 잭 웰치, 월트 디즈니, 샘 월튼 등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거의 모두 어릴 때 혹은 처음 일을 시작하거나 재기를 노릴 때 신문배달을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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