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정 사회학박사

4·11총선에서 여성 당선자는 18대에 비해 6명 많은 47명으로 역대 최다수이다. 하지만 여성계는 한 마디로 ‘속빈 강정’으로 평가하고 있다. ‘역대 최다’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불구하고 그 비율은 전체의원 300명 중 15.6%(18대 13.7%)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 당선자 84.4%과 대조하면, 완전히 균형을 잃은 수치이다.

지역구 당선자는 246명 중 여성이 19명에 불과하다. 지역별로도 서울(9명), 경기(6명)에 치우쳐 있으며, 텃밭지역인 부산, 대구, 광주, 전북에 각 1명씩의 여성이 배출되었다. 정당별로 보면 민주통합당 13명, 새누리당 4명, 통합진보당 2명 순이다. 보수정당일수록 성평등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이다.

이런 결과는 남성편향적 공천과정에서부터 예견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여성공천 30%를 약속해놓고 7%만 공천했고, 민주통합당은 15%를 약속해놓고 9%만을 공천했다. 겉으로는 여성참여를 대폭 확대하여 정치개혁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제시하고 속으로는 여성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반여성적 후보들의 행태는 또 어떤가. 김용민은 입에 담지 못할 여성비하적 발언으로 선거에 치명적 영향을 주고, 본인도 유권자의 심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포항 당선자 김형태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고 당선이 되었으나 친족 성폭행 사건으로 탈당하였고, 급기야 ‘김형태 제명안’ 국회 청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청주의 정우택 당선자는 ‘관기발언’으로 일찌감치 여성계 블랙리스트 1번에 올라가 있었으며, 이번 선거에서 변태적 성상납, 불륜, 논문 표절 등 여러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어 자질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반여성적 후보가 공천, 선거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당선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후보자들의 반여성적이고 마초적인 행태는 후보자의 인격에만 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명예까지 손상시킨다.

특히, 포항시민들은 친족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김형태를 국회의원으로 선택한 대가로 ‘형태스러운 포항시민’이라는 불명예를 선사받게 되었다. 포항시민들은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들에 분노를 터뜨리지만 이들이 느낀 배신감과 수치심을 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후보를 선택하기 어려운 갑갑한 현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탓하기 전에 많은 단서에도 불구하고 부적격자를 당선시킨 시민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유권자들은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증언’이라고 해도 후보자를 검증할 잣대로 삼아야 했다.

증언은 그 자체로 힘이 있고 정치적 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용기 있는 증언은 일일이 증거가 따라 붙은 것이 아니었지만 세계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던 점을 상기하자. 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우기는 쪽은 일본 정부뿐이었다.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증거가 아니라, 제기된 문제의 사건이 피해자의 삶에 끼쳤을 충격을 이해하는 감수성, 그리고 성평등 가치의 공유가 아닐까. 유권자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성폭력, 성매매 피해자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더욱 노력했다면 자격 미달의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선택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거는 끝나고 곧 19대 국회가 개원된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국회의원들이 성평등과 인권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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