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전 청주YWCA 여성종합상담소장·캐나다 거주

먼 곳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 없이 관전자의 처지가 되어 버린 유권자로서 이번 선거 참 재미없었다. 선거 때만 되면 단골 후보들이 또 나오고 또 나온다. 현직의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기가 다시 돼야 된다고 생각하고 낙선했던 후보들은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또 나온다.

야당들은 통합을 통한 MB 심판을 그토록 외치고 새누리당조차 쇄신공천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 선거의 모양새는 역시 ‘그 밥에 그 나물’ 격이었다.

내 친구는 수원 출신인데 1시간 넘는 거리를 버스 세 번이나 갈아타며 영사관에 가서 재외국인투표 신고를 했다.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투표하러 가는데 자기 지역 통합 후보가 김진표라며 울상을 짓는다. 나도 토론토 영사관 투표소에서 후보 이름이 적힌 용지를 보면서 ‘참 낮익은 이름들 이시군요’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옆 동네 세 명의 세 번째 리턴매치보단 낫다고 해야 하나?

캐나다의 수준과 한국정치 사회·복지·교육 수준을 비교하면서 날카로운 비판을 날리던 많은 재외동포들은 정작 투표는 안 한다. 영어없이 생존 없다고 생각하는 어학연수생, 국내 취업전쟁을 피해 외국 와서 막일하는 고학력 단기 노동자들,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투표는 무슨 투표냐는 해외 영주권자 97.5%가 다시는 한국사회와 말도 섞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다.

관권선거 개입의 여지가 있다느니, 해외 동포들의 진보 성향이 어떻다느니 하던 재외국인 투표권 논란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과연 우리는 진심과 열정이 담긴 투표를 언제쯤 해볼 수 있을까. 투표권을 쟁취하고자 목숨을 걸었던 여성들의 의지나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투쟁하듯 투표했던 민주주의 역사는 재현 불가능한 것인가. 선거란 그냥 김빠진 맥주처럼 후룩 들이키며 저절로 인상이 써지는 행위일까.

선거가 다 싱겁기만 한 건 아니다. 도지사 출신 정우택 후보를 보자. 5년 전 그가 도지사가 됐을 때 그의 여성정책이 反여성적이고 성차별적이라고 외치며 몇 달을 싸웠으나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게 무슨 얘기꺼리가 되느냐며 들은 척도 안했다. 심지어 여성단체의 도지사 발목잡기라고 치부되었다. 당선자에겐 칼날도 이빨도 안들어 간다.

하지만 그가 후보인 상태에서 도지사 재임기간에 벌인 부도덕하고 反여성적 작태가 터져 나왔다. 일상적인 감시활동이나 정책제안 활동을 통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폭로되지 않던 일들이, 그것도 내부에서 티격태격하던 최측근의 입을 통해서이다. 참 유치하고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런 걸 그나마 선거의 역할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도 든다.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어딘가에 줄서있는 신문들의 행태도 웃겼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교묘한 술수 뒤에 숨어 신문들이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싫어하는 후보에 대한 비방의 자가발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불리한 정보 물타기 작업이었다.

캐나다의 신문들은 선거 때가 되면 자사가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 대표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신문 1면에 싣고 그의 정책을 해설한다. 그만큼 책임있는 검증과 심도있는 공방이 오간다. 그럼에도 정당이나 후보 뒤에 줄선 모습이 아니라 언론의 진정한 자존심 - 못된 자만심이 아니라 - 을 지키는 듯 보였다. 자사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선명하게 후보와 정당정책을 선전하는 한국언론 지역언론은 언제쯤 볼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한탄하고 있으려니 매사에 진지한 어느 지인이 말한다. 백년이 넘는 캐나다 복지, 민주주의와 진보정치의 역사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짧은 민주정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그런 거라고, 인내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역사의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고.

그래. 다시 한 번 희망을 갖고 또 시작하자. 오늘을 잊지 말아야지. 환호도 실망도··· 매순간이 민주주의의 과정이고 새로운 국면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또 대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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