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 ‘숨’ 일꾼 이은규씨의 ‘인권이야기’

어릴 적 그의 인생에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다. 서른을 훌쩍 넘어 그의 생일날 어머니에게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기까지 생채기를 안고 살았다. 20대 때에는 운동권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고, 30대에는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활동을 통해 사회정의에 앞장섰다. 정의, 민주, 인권은 그의 인생을 규정짓는 단어였다.

사진=육성준 기자

사회운동가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렸지만 허한 마음은 채울 수가 없었다. 중간에 사업에도 손댔지만 빚까지 내서 벌인 일은 거짓말처럼 공중분해됐다. 이은규(46)씨는 고백한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달려왔어요. 그런데 서른 중반 다시 제 삶을 돌아보니 허무했고, 가슴 아팠고 가여웠죠.” 그는 “2005년 이후로 그동안 해왔던 일, 가치, 세계관, 인간관계 모든 것에 균열이 왔어요. 예상치 못한 균열에 인생이 많이 흔들렸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위한 여행을 떠났고, 많은 선물을 받고 온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조건 없는 나눔을 펼친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숨’을 쉬었다.

천주교 신자인 그가 인권연대를 발족하면서 ‘숨’이라고 지은 것은 사실 성경에서 차용해 온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는 말씀을 듣고 얻은 깨달음 때문이다. 인간이 ‘흙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그는 평소에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복지관, 자활센터에서 ‘인권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씨는 분명 남들보다 예민한 촉이 있었고, 때로는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직설화법으로 인권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가령, 아이를 여섯이나 둔 그에게 사람들이 애국자라고 으레 말하면 손사래를 친다.

“전 애국자 아니에요. 애국심이 뭔데, 국가가 뭔데?”라고 반문한다. 이씨는 “전문가, 프로, 사회지도층 이러한 말들이 갖는 폭력성을 생각해봐야 해요. 실체가 없는 단어들에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강요당하고 억압받고 있어요. 그런데 느끼질 못해요”라고 꼬집는다. 또 “과연 인권운동가에게 조국이 있을까요. 조국의 실체는 뭘까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인권연대 숨은 지난달 23일 극단새벽이 위치했던 남문로의 오래된 건물 3층에서 개소식을 열었다. 이씨는 인권연대 숨의 ‘일꾼’이다. “우리단체는 대표가 없어요. 상근을 원한다면 저처럼 ‘일꾼’이 되는 거죠.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고 있어요. 주 6시간 노동을 고민 중이지만 아직은 시작단계라….”

인권연대 숨 사무실은 한때 소극장이었다. 재활용센터에서 싸게 구매했다는 탁자 몇 개를 갖다놓았다. 꽃샘추위라고 하지만 그곳에서 맞이한 3월의 봄은 너무 추웠다. “할 말이 너무 많은 시대에요. 또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는 시대죠.”

인권연대 숨의 개소식은 소박했다. 이씨는 그의 가족을 초청했고, 회원 30여명이 모여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인권연대 숨은 매월 소식지를 만들고 인권강독회, 다산독회, 그냥 산악회, 영화를 보는 모임 ‘봄’ 등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통해 연대하고 교류한다.

“인권연대 숨은 이탈을 꿈꿔요. 세상이 만들어낸 프레임 밖을 보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숨’을 쉬는 거죠.” 인권연대 숨은 그의 말처럼 “딱히 NGO 단체로 보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소모임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한”곳이다.

인권연대는 서울과 대전충남에 있다. 이들과 분명히 연대는 하고 있지만 ‘지부’개념은 아니다. 그는 지금 인권연대 숨이 무슨 일을 할지 열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완전한 평화와 폭력이 없는 세상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좀 더 평화로운, 덜 폭력적인 세상을 꿈꾸는 거죠.”

인권의 감수성은 불편함일지 모른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닌, 다들 인정하는 것들을 꼬집는 예민함이 필요하다. 그는 최근 고3 남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다. “모든 언론들이 어머니가 남편과 헤어진 이후 자식을 들들볶아 문제가 생겼다는 식으로 몰고 갔어요. 이혼한 여자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녹아있는 거죠. 죽은 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왜 말이 없는 걸까요.”

스멀스멀 올라오는 인권의 감수성. 지난해 10월부터 인권연대 숨 사무실에선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권텍스트를 읽고 의견을 나눴다. 다음카페 공동체 숨(http://cafe.daum.net/TheSumOfThings)에 들어가면 그들의 활동사항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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