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건 무시한 즉흥 지시에 교사들 수업계획 바꾸느라 '진땀'
공문처리 없이 0교시 체육·7교시 재량활동 등 편법 운영도

▲ 정부가 학교폭력예방대책 일환으로 학교 체육 시간을 늘린 가운데 청주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다목적실 공사로 비좁아진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을 벌이고 있다.
<늘어난 학교체육시수, 왜 문제인가?>늘어난 학교체육시수가 충북도내 중학교 체육교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은 지난 2월 학교폭력예방 일환으로 중학교 체육시간을 1∼2학년 3시간, 3학년 2시간에서 모두 4시간으로 늘리도록 지시했다. 한마디로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발산할 기회를 마련해 주라는 얘기였다. 어찌 보면 공부에 치어 살면서 체격은 좋아졌지만 체력은 약해져 문제가 된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교육 지시로 보인다.

문제는 아파트형 학교처럼 갈수록 학교운동장이 좁아지고 일부학교는 공사중이라는 데 있다. 비좁고 공사 중인 학교운동장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학교체육 시간을 늘리면서 중학교 체육교사들만 연간 교육계획을 새롭게 짜느라 분주했다. 일부 체육교사들은 몇 년 전부터 교육과학기술부가 집중이수제를 허락해 중학교 1∼2학 때 체육시간을 몰아서 하고 3학년은 체육시간을 없앴다가 이번 일로 다시금 수업계획을 짜면서 혼란까지 초래하고 있다.

도내 일부 체육교사들은 정부가 나서 교육과정과 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과정을 바꾸기 위해선 반드시 개정·시행고시를 거쳐야 함에도 교과부 장관이 즉흥적으로 내 놓은 방안이 교육정책으로 수립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비좁은 학교 운동장 때문에 아이들이 뛰어놀지 못하자 일명 '신발 던지기' '우유팩 던지기' 놀이를 하면서 민원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발·우유팩 던지기 놀이는 학교 울타리가 높은 곳에 다니는 학생들이 울타리 밖으로 신발이나 우유팩을 던져 지나는 행인들을 놀라게 하는 놀이다.

실제 청주의 S중학교는 지난 3월초부터 오는 10월 완공을 목표로 학교운동장 한 구석에 다목적실을 짓고 있다. 연 건축면적 1147.95㎡에 1층 주차장, 2층 급식실, 3층 강당으로 지상 3층 건물이다. 이로 인해 이 학교 운동장은 기존면적 6120㎡보다 758㎡가 줄어든 5362㎡로 줄어들었다. 이 학교 학생수가 26개 학급 893명인 점을 고려하면 학생 1인당 운동장 면적이 6.9㎡에서 6.0㎡로 줄어든 것이다. 1평이 3.3㎡인 점을 고려할 때에 이 학교 학생 1인당 2평도 안 되는 공간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학기중 교육과정 재편성 물의

상황이 이러하자 이 학교 학생들은 0교시 체육이나 쉬는 시간, 7교시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에는 학교운동장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학교 울타리 밖으로 신발이나 우유팩을 던지는 놀이를 하면서 민원이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 본 한 교사는 "학교 운동장이 지대가 높다보니 학교 울타리 위로 안전펜스까지 쳐 놓으면서 마치 교도소를 생각하게 한다"며 "학업스트레스가 높은 아이들에게 발산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은 좋지만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급하게 추진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S중 교장은 "급식시설 개선과 한 여름 체육활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다목적실이 필요했다"며 "좁아진 운동장 면적은 강당을 활용한 실내체육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말했다. S중 행정실장은 "학교 운동장이 좁아지는 것은 사실이다"며 "하지만 학생수당 기준면적은 유지된다. 학생 수의 2배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준면적은 3085㎡이지만 신축예정인 강당과 수영장, 체육관 면적, 운동장 면적을 합해 계산하면 4600㎡까지 확보가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사실 고등학교 이하 각급학교 설립·운영 규정상의 체육장 기준 면적을 살펴보면 총 학생정원의 2배를 3000㎡에 더해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수영장, 체육관, 강당, 무용실 등 실내체육시설이 있을 경우 바닥면적 2배 만큼 제할 수 있다. 이 말은 S중학교의 경우 학생 수 893명의 2배인 1786명에 3000㎡를 더한 4786㎡의 운동장 면적을 확보해야 하지만 다목적실 강당면적 758㎡를 제하고 나면 4010㎡로 결국 5362㎡로 줄어든 S중이 운동장 기준 면적을 어긴 것은 아니란 계산이다.

하지만 도내 체육교사들은 턱 없이 부족한 학교운동장과 체육시설,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시행되는 체육시수 늘리기 정책에 대해 여전히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청주 S초와 N초, K초는 학교 운동장이 비좁아 벌써부터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눠 운동회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청주 N초등학교는 가을운동회를 2부제로 하고 있으며 S초는 학년별 체육대회를 열만큼 전교생이 함께하는 운동회를 열지 못한지가 꽤 오래 됐다.

운동회도 2부제로 하는 형편에...
도내 한 초등학교 교사는 "담임이 수업을 하기 때문에 체육시수 증가에 대한 부담은 없다"며 "다만 신설학교의 운동장이 비좁은 것은 사실이다. 에너지 발산도 좋지만 현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즉흥적인 교육정책은 문제다. 초등학교에서도 공문처리 없이 담임들에게 0교시 체육과 3시에 수업이 끝나면(7교시) 체육활동 등을 1시간씩 더 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다른 교과목을 몰아서 하다 보니 아이들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고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한 고등학교 체육교사는 "내년부터 고등학교까지 확대한다고 해서 걱정이다"며 "여건부족도 문제지만 검증된 프로그램 없이 체력소모만 불러오는 체육활동은 오히려 건강을 헤칠 수 있다. 마치 교도소에서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농구와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는 것과 똑같다. 체육도 전문성을 갖춰 연령에 맞는 검증된 프로그램에 따라 운동을 시킬 필요가 있다. 솔직히 1시간당 3만원, 하루에 6만원까지 벌 수 있는 토요스포츠나, 체육강사 시스템에 대해 돈벌이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차라리 주말은 가족과 함께 체험활동을 하는 편이 낫다"고 지적했다.

중학교 체육교사는 "1시간에 7반이 나온 적도 있다. 체육 강사와 보건강사가 돕기도 했지만 학교 인근에 공원이나 체육시설이 없는 학교는 난감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스포츠 강사는 그나마 전문성이라도 갖췄지만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재량활동 시간에 참여하고 있는 영어교사나 국어교사는 안전지도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체육시수에도 포함되지 않는 체육활동에 대해 동아리 활동으로 기록을 해야 하는데 전문 체육용어를 몰라 체육교사들이 떠안다 보니 일거리만 늘어나는 형국이다. 퇴근 후 요즘 부쩍 발목이 붓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체육교사들은 돈 벌이로 전락하는 체육활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체육강사 1명이 1주에 2시간씩 10개 반만 수업을 해도 1시간당 3만원씩을 계산하면 60만원으로 한 달(4주)이면 240만원이다. 세금을 제하고 적어도 200만원씩을 받아간다는 계산이다. 이는 기간제 교사 월급 108만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위화감마저 조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충북도교육청 정영구 장학관은 "50m 달리기로 체력장 종목이 바뀔 정도로 학교 운동장이 비좁아 진 것은 사실이다"며 "다목적실 등 다양한 교육활동으로 교사 신·증축이 늘어나는 요인도 있다. 연간 교육 계획서를 잘 짜서 사회 체육시설을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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