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 상춘객 반기고…묵은 절엔 뒷간도 구경거리

<3월 청주충북환경연합 생태탐방>
환경생태강사 정진

차가운 봄비가 새벽 내내 내렸던 지난 17일, 2012년 첫 생태탐방지인 전남 순천 조계산에 위치한 천년의 고찰 선암사와 송광사를 다녀왔다. 청주를 떠나 남도로 향하는 동안 비를 뿌리며 잔뜩 찌뿌듯하던 하늘이 점점 맑아지더니 일행이 탄 버스가 승주IC로 진출, 선암사로 향하면서부터는 신기하게도 반짝이는 봄볕을 따스하게 비춰주었다.

첫 탐방지 선암사는 백제시대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1300년의 세월을 지켜온 천년 고찰중의 하나이며, 우리나라 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이 되는 고찰이다. 선암사로 오르는 산길은 참나무며 삼나무, 편백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어우러져 깊을 숲을 이룬 아름답고 고즈넉한 길이다.

양교태고종총본산이라는 선암사를 알리는 기둥을 지나 선대 고승들의 부도탑을 지나면 신선이 되어 오른다는 아름답고 신비한 승선교를 만난다. 승선교는 무지개를 닮은 다리인 홍예교로서 계곡의 자연석 위에 세워진 과학이 숨어있는 다리이다.



승선교 중앙의 아치 밑에는 용머리모양의 돌기둥이 거꾸로 매달려있는데 용이 줄을 물고, 줄에 걸린 엽전을 지키고 있다. 여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담겨있다. 예로부터 절에서는 전각건립 등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을 치르는 동안 그 시줏돈을 허술히 쓰지 않았고 혹 남은 돈이 있으면 그만큼의 엽전을 줄에 매달아두거나 하여 남은 돈을 대중에 알렸다고 한다. 승선교 아래 용머리에 걸린 엽전도 그때 다리를 놓고 남은 돈을 걸어두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선암사 안에는 목조로 된 전각 등을 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책으로 水, 海 등 물을 뜻하는 글자들을 각 전각의 문 위쪽에 새겨 넣었으며 지금도 그 글씨가 남아있다. 또 불을 막기 위해 두멍에 물을 받거나 연못을 많이 만들었다 하는데 선암사 경내의 큰 달걀모양의 연못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선암사 삼인당이라는 이 연못은 못 가운데 소나무를 심은 둥근모양의 섬을 만들어두고 있다. 이 섬의 용도는 달걀형의 못 안에 들어온 물이 섬에 부딪혀 와류를 일으키며 연못 구석구석을 썩지 않게 순환하는 기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선조들의 과학적인 지식과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는 귀한 문화유산인 것 같다.

주변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지어져 자연스럽고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선암사 가람배치에 반해 전각 사이사이를 걷다보면 600여 년 전 심어졌다는 선암매(매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날은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하얗게 꽃봉오리를 매달고 미소 짓는 선암매에서는 향긋한 매화향도 나는 것 같았다.

근심이 없는 곳이라는 뜻의 무우전 앞 골목 양쪽 돌담에는 청매, 백매, 홍매가 희고 불그레한 꽃봉오리를 조롱조롱 달고 봄맞이 나온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경내를 돌다보면 마치 두 그루의 소나무가 얽혀있는 듯한 커다란 누운 소나무, 와송을 만날 수 있는데 두 그루인 것 같으나 사실은 한 나무라 한다. 와송의 정면방향으로 가면 유명한 선암사 해우소인 뒷간도 구경할 수 있다.

무기개다리에 엽전이 매달렸네

아쉬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선암사를 뒤로하고 조계산을 올라 작은 굴목재를 넘어 송광사로 발길을 돌렸다. 선암사에서 큰 굴목재를 넘어서 송광사에 이르는 이 길은 남도삼백리 11코스 중 9코스인 약 8km에 이르는 천년불심길이라 이름 붙은 길이다.

높은 재까지 오르는 동안 바위로 만든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여러 번 만나며 걷다보면 고행길이 따로 없는 것 같이 힘들기도 하지만 삼나무 삼림욕장을 지날 때 쯤 향긋한 삼나무 향에 피로가 씻기는 것 같아 참 좋았다. 겨우겨우 도착한 중각 휴식처인 보리밥집에서 맛있는 도시락과 보리밥, 채소전, 막걸리를 먹으며 아픈 다리도 뻗고 쉬면서 고픈 배를 달래고 나니 보리밥집 아래 냇가와 실개천에서 짝짓기에 열중하느라 “꾸륵꾸륵 꿱꿱” “첨벙첨벙” 산개구리 떼 짝짓는 간절한 외침이며 한껏 애달픈 몸짓에 눈길이 간다.

산개구리들이 얼마나 짝짓기에 열중했는지 짓궂은 어린 탐방객들이 가까이가도 도망을 가지 않고 제 하던 일만 계속하느라 보리밥집 주변은 개구리소리와 사람들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꿈틀꿈틀 생동하는 봄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짐을 꾸려 보리밥집을 출발해 큰굴목재를 넘고 계곡을 따라 바위 밭 같은 산길을 피톤치드를 뿜어주는 편백나무, 삼나무 향을 위안삼아 아픈 다리를 뒤뚱거리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시원하고 깨끗한 계곡물이 콸콸 흐르는 송광사에 이르렀다. 약 8km정도의 거리이다.

송광사는 삼보(불보,법보,승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사찰이며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된 천년고찰이다. 삼보는 부처님, 가르침(책), 승가인데,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는 통도사, 부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 그리고 승가를 계승하는 승보사찰이 송광사이다.

계곡물위의 홍예교를 건너 절의 경내로 들어갈 수 있게 배치되었으며, 홍예교 아래에는 역시나 용머리와 거기에 매달린 엽전을 볼 수 있어 정감이 있었다. 송광사의 가람배치는 남성미가 느껴지고 절도 있고 과감한 것 같았다. 송광사의 해우소는 사각형의 연못 안에 배치되어 있어 신기한 느낌을 주었다.

오랜만의 길고 고된 산행이었기에 함께 한 어린아이들과 그 어머니들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모두들 아름다운 두 천년고찰에 반하고 봄의 전령 매화꽃에 매혹되어 돌아온 것 같다. 아직 쌀쌀한 날씨로 인해 매화꽃 만개를 보지는 못했지만, 한 두 송이씩 가냘프게 피어 은은한 향을 뿜어내며 봄기운을 전해주는 고마운 매화꽃 덕분에 마음만은 모두들 봄이 되어 돌아올 수 있었던 즐거운 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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