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의 <아렌트 읽기>

소종민 (공부모임 책과글·인권연대 숨 회원)

“우분투(ubuntu, 응구니족의 말)를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쓸모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지지하며 다른 사람들이 능력 있고 훌륭하다는 사실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또는 그녀는 자신이 더 큰 전체에 속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굴욕을 당하고 위축을 당할 때, 그들이 고문을 당하거나 억압을 당할 때, 또는 그들 자신보다 못한 대우를 받을 때 자신도 위축된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올바른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용서하는 것은 단지 이타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이익의 최선의 형태다. 당신을 비인간화하는 것은 나도 가차 없이 비인간화한다. 용서는 사람들에게 내구력을 부여하고, 그들을 비인간화하려는 온갖 술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아남고 여전히 인간으로서 건재하도록 해 준다.”(투투 주교의 말, <아렌트 읽기>에서 재인용)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 취임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세워진 과거사청산위원회, 즉 진실과화해위원회는 1995년 12월, 투투 주교를 위원장으로 하여 17명의 위원으로 조직되었다. 이들은 1998년 10월 3500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활동을 중지할 때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피해자의 동의 하에 민사상 책임을 면제해주었는데, 이 방식은 가해자의 심리적인 부담감을 덜어줌으로써 진상을 정확히 규명하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화해위원회는 다른 말로 옮기기 매우 어려운 ‘우분투’를 가해자의 가슴에 심는 일을 한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행위(acting)’ 결과가 자신과 타인들에게 어떤 것이 될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행위’를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아렌트 읽기>)

그러므로, 자신이 과거에 무슨 행위를 했는지, 그리고 그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분명하게 공-영역(public realm)에 널리 알리는 작업(work)은, 용서와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그리고 이 모두는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해서 시행하는 것이다.

<아렌트 읽기>의 저자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도 진실과화해위원회를 설치해 1980년 광주민주항쟁 시에 군부 정권이 자행한 수백 명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비록 진상 조사 후에 이루어진 배상금 지급 해결방식이 ‘아렌트식 용서’ 개념에는 훨씬 못 미치고, 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약속하기(making promises)’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지만 말입니다.” 역시 그렇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한 준비가 덜 이루어진 셈이다.

영-브루엘의 스승이자 위대한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975)에게 있어서, 용서(forgiveness)는 “정치의 필수 조건이자 하나의 근본적인 정치적 경험”이다. 용서는 “벌어진 일을 무시하자는 의미나 악한 행위에 잘못된 이름표를 붙이자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악한 행위가 더 이상 관계의 장벽을 남지 않게 하자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 있다. 아렌트는 “길을 잃은 사람, 즉 실수한 사람은 알면서 ‘반칙’을 저지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알면서 ‘반칙’을 저지른 자들의 간계(奸計)는 자신들이 벌인 악한 행위를 전력을 다해 ‘실수(hamartanein)’로 포장하는 데 투여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본질적인 악과 연계된 반칙 행위를 이렇게 정의한다. ‘반칙(skandala)’은 “인간 역사의 영역과 인간의 힘이 낳아 기르는 잠재력을 초월”하는 것이며, 그러한 반칙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인간의 잠재력은 “본질적으로 파괴된다.”

여전히 지구에는 정치 엘리트들과 군사 지도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반칙들’이 도처에서 난무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처벌에서 교묘히 면제되고 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잠재력, 즉 선(善)한 의지를 애써 위반하여 악행에 의지한다면, 인류의 미래란 없다. 악(惡)의 근거는 ‘생각 없음 (unthoughtness)’에 있다고 아렌트는 말했다.

반성적 사유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는 악을 초래한다. 알면서 반칙을 행하는 자들은 그러한 토대 위에서 ‘사람다움’ 자체를 파괴한다. 우리의 사유와 행위가 세계의 경멸(contempus mondi)과 파괴로 나아갈 것인지, ‘세계 사랑(amor mundi)’로 나아갈 것인지는 오로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세계는, 지구는, 사회는,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는 나와 당신의 책임 아래 놓여 있을 뿐이다.

신간소개

대통령의 결단
1만5000원/ 닉 래곤/ 미래의창

위기의 시대,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통령의 결단>. 현재 폭스 방송국과 폭스 비즈니스네트워크 채널에 고정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에 대한 모든 것>, <간추린 미국 정부론> 등 다수의 저작을 집필한 저자 닉 래곤이 미국 역대 대통령 13인이 중요한 정치현안들에 대해 내린 결정들과 그에 얽힌 일화를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일의 미래
1만7000원/ 린다 그래튼/ 생각연구소

전 세계가 일터로 바뀌고 정년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미래 사회에서 어떤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고 중요하게 여겨질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세계적 경영사상가인 린다 그래튼은 앞으로 일의 내용과 환경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여 그에 대한 대비책을 제시한다.

시장은 정의로운가
1만4000원/ 이정전/ 김영사
시장과 경제의 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해법을 담은 <시장은 정의로운가>. 이 책은 경제학자 이정전 교수가 시장의 부정의, 불공평, 불공정에 일침을 날리고 정의와 상생의 시장경제를 위한 길을 제시한다. 승자독식, 부당거래, 불공정으로 흔들리는 시장을 돌파할 방법은 과연 무엇인지 그 답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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