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익씨, 휴전직후 HID 속초부대 훈련 2차례 침투성공

충청리뷰는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취재하면서 비운의 북파 공작원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팔순의 허익씨(85ㆍ청주시 탑동ㆍ사진)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기 이ㅜ해 한국전쟁 휴전직후 북파공작원을 자원한 경우였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그는 해방공간에서 대한청년단과 같은 우익단체에서 활동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두만강에서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자의반 타의반' 월남하게 됐다."

그때 국군 김현재대령이 조부 생전에 도움을 많이 받은 분이었는데, 후퇴하면서 우리 집에 짚차를 보내 데리러왔어, 차를 타고 대대본부에 가보니 다짜고짜 배을 탈 수 있으니 월남하라는거여. 처자식을 데려가야 한다 그랬더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면 된다고 재촉하는 바람에 그냥 생이별하게 된거여"

결혼 3년만에 부인과 두살바기 아들과 헤어진 허씨는 가족을 데려와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쟁통에 살아남았다. 휴전직후 당시 북한지역에 침투해 공작활동을 벌였던 특수부대 HID(육군방첩부대)에 자원입대했다. 그때 나이는 32세, 혹독한 훈련을 견디기에는 버거운 몸이었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사실은 자격이 안됐어.

근데 부대장교 중에 고향사람이 있어서 통사정을 했더니 나이를 속이라구 해서 다섯살을 줄여서 들어가게 됐지. 속초 어여진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거기가 HID본부라 그랬어. 가끔 미군장교들이 고문이라면서 부대에 오기도 했지. 사람도 안댕기는 산속 깊숙한 곳인데, 증말 엄청 고생혔어"

허씨는 3번의 후방침투를 시도했으나 1번은 해안경비병에 발각돼 실패하고 2번은 고향 청진시(현 김책시)의 집까지 찾아갔다. 3박4일의 짧은 일정속에 고향집을 찾았으나 사람이 없어 마루밑에 몸을 숨긴채 밤을 보냈다. 두번째 찾아갔을 때는 엉뚱한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결국 사선을 넘은 가족상봉은 물거품이 됐고 남쪽으로 귀환한 허씨는 전역후 재혼해 슬하에 4남매의 자식을 두고 있다.

하지만 두고온 처자에 대한 죄의식이 평생을 짖눌렀고 백방의 노력 끝에 중국에 살고있는 여동생을 통해 북의 부인과 연락이 닿게 된다. 마침내 지난 99년 11월 허씨는 50년만에 제3국 중국땅에서 초로의 아내를 만나게 됐다.

대한적십자사에 신청한 처자상봉이 묘연한 가운데 작년에는 얼굴도 잊혀졌던 아들과의 상봉도 이뤄졌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처자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돈이나 좀 보태줬으면 좋겠는데.." 허씨는 북파공작원으로 야간침투하다 다친 오른손 약지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민족분단의 운명속에 원치 않은 북파공작원 신분이 됐던 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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