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보상법 범위ㆍ대상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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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보상법 범위ㆍ대상 넓혀야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2.02.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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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근거, 피해내용과 함께 실질적 행위도 고려해야

여성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지방의 진보적 여성운동 단체는 87년 6월항쟁 이후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충북여성민우회는 89년 5월 창립된 후발주자로 여성운동과 함께 민주화 · 통일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 짐했다.

변지숙, 정진경이 초대 공동의장을 맡았고 80년대 후반 사회민주화 움직임에 발맞춰 충민협, 충민연 등 연합공동쳬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91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정식가입하면서 공동대표에 민경희가 합류했고 남정현, 신유숙이 사무국 실무자로 일했다.

92년 12년간 자신을 성폭행해 온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 김진관의 무죄석방과 성폭력특별법 제정촉구 서명 운동을 벌였고 70대의 복지시설원장이 어린 원생들을 성추행해 물의를 빚은 청주 성화원 사건에 대해 대책위를 구성, 재판감시와 복지시설 운영 개선대책을 논의했다. 이후 김수정, 민경자, 최미애 등이 공동대표로 활동했고 문민정부 수립이후 사회민주화 이슈가 약화되자 여성권익운동에 조직역랑을 집중하게 됐다.

척박한 땅, 진보적 문화운동 씨뿌려
87년 12월 도내 각 부문에서 활동하던 문예운동조직이 '충북문화운동연합'(충문협)라는 전선조직체로 결집하게 된다. 이전에는 우리춤연구회(84년) 문학동인 분단시대(84년) 충북민협 문화분과(86년)를 통해 소모임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80년 비상계엄 하에서 청주대에서 열린 마당극 '검은산 검은물' 공연은 지역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에게 감회가 깊은 공연이었다. 강원도 동원 탄좌 소요사태를 소재로한 내용으로 출연진 면면을 보면 박종희, 김재수, 김성구, 박종관, 차명미, 정진선 등으로 무대공연과 영 거리가 먼(?) 배역 이었다.

문학동인 분단시대에는 도종환, 김창규, 김희식이 참여했고 청주대 강혜숙이 대학원 과정에 있던 오세란, 허연회 등을 중심으로 우리춤연구회를 창립시켰다. 미술계에서는 85년 전국민족미술인협의회에 지역 작가로 김기현, 이홍원이 참여했고 86년 판화가 이철수가 제천 백운면으로 이주하면서 민족미술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89년 충북민족미술인협의회를 창립과 함께 기념전시회에 김만수, 이용택, 유근덕, 임종길, 윤철상 등이 참여 충북 미술운동의 1세대가 된다. 충문협은 청주 남문로에 사무실을 두고 150석 규모의 소공연장 ’열림터’를 함께 운영했다. 이 소공연장에서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녹두패 정기공연', '황소울음'등 의미있는 작품들이 선보였다.

87년 충북문학운동협의회가 창립돼 박운식, 김시천, 김성장, 김춘호, 배병무, 김노수, 오맥균 등이 합류했고 이듬해 제1회 민족문학교실을 여는 등 문학의 대중화에 적극 나섰다. 같은 시기에 전문적인 노래모임인 녹두패가 결성돼 곽한일, 이종문, 김달수, 이종서, 이재하, 최정희 등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학 내 노래 동아리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김대훈, 김창기 등이 가세해 발전을 거듭했다. 마침내 94년 3월 충문연이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충북민예총(초대지회장 이현주)이 창립돼 진보적 예술단체의 굳은 뿌리를 내리게 됐다.

청년의 피 전선운동에 수혈해
80년대 지역 민주화운동의 전위대가 대학 운동권이었다면 그들을 이끌어낸 동인은 진보적 청년운동이었다. 80년 광주항쟁이후 군사정권에 얼어붙었던 반독재 민주화의 열망이 은밀하게 조직화되기 시작했고 청주에서는 82년 EYC(기독교 청년협의회) 창립이 중요한 디딤돌을 놓게 된다.

이주형을 비롯한 대학운동권 1세대에 절실한 활동공간을 제공했다. 내덕동 주교좌 성당에 사무실을 낸 카톨릭대학생연합회와 우암동 빛고을교회(김창규목사)도 민주화운동 청년 활동가들의 모임장소로 활용됐다. 84년 10월 고 최종철선생의 청주 용암동 묘비제막식에 모인 지역 재야인사들은 5공정권하 도내 최초로 가두시위를 벌이게 된다.

사전에 치열한 내부논의 끝에 거사(?)를 결정하고 100명에 이르는 제막식 참석자가 전 충북은행 본점에 모여 성안길 국민은행까지 기습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민정당도지부 사무실과 충청일보 사옥에 돌멩이를 투척하기로 했으나 감시와 탄압이 심한 상황에서 가두시위는 '100m달기기를 방불했다"고 전해진다.

EYC는 충민협의 탄생으로 상 당수의 활동가를 민협에 수혈했다. 87년 6월항쟁 이듬해에는 박구호, 이광희 등의 주도로 '청주지역민주청년연합(청주민청)'이 창립돼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을 대중화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민주청년' 기관지를 발간하고 시민통일강좌를 열기도 했다. 청년운동은 특정부문이 아닌 포괄적 활동영역으로 각성된 젊은 일꾼들이 우리 사회의 진보적 민주화를 위해 힘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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