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농수산물 도매시장, 법인ㆍ경매사ㆍ중도매인 등 28명 입건

무, 배추 등 위장경매 통해 가격질서 흐려, 시 감독 허술 드러나

청주 농수산물도매시장의 경매비리 의혹(본보 4월 16일자)이 사실로 드러나 도매법인 대표, 경매사, 중도매인, 감독 공무원 등 28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입건됐다. 충북지방경찰청은 농산물을 경매서류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위장경매해 수수료를 챙긴 청주 농수산물도매시장(이하 청주도매시장) 법인대표, 경매사, 중도매인은 경매방해ㆍ농안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감독 공무원인 관리소장 S씨(5급)를 직무유기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도매법인 (주)청주청과 대표 J씨(62)는 중도매인이 외지 시장에서 매입한 농산물을 위탁상장하지 않고 판매원표에 5명의 중도매인이 낙찰받은 것처럼 조작하는 수법으로 지난해 1월부터 올 6월까지 중도매인 24명에게 4800여회에 걸쳐 52억 상당의 물품을 위장경매해 수수료 3억40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매사 B씨(54)는 같은 기간에 중도매인들과 담합해 정상적인 농산물 경매를 방해한 혐의다.

또한 중도매인들은 상장경매를 하지않은 농산물을 도매시장에 판매해 공정한 경매를 방해한 혐의가 적용됐다. 청주도매시장 관리사무소 서모소장은 지난 4월 도매법인에 대한 점검을 실시해 6개 중도매인들이 경매를 하지않고 판매한 사실을 적발했으나 적절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아 직무유기 혐의를 받고 있다.

이같은 경매비리 의혹은 지난 4월초 청주도매시장 산지유통인(수집상)들이 중도매인들의 포전매매(밭떼기), 약식경매 관행에 대해 청주서부경찰서에 고소장을 내면서 불거졌다. 산지유통인들의 이익단체인 (사)전국농산물 유통인충북지회는 고소장에서 일부 중도매인들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이하 농안법)을 무시하고 산지에서 직접 농산물을 매입해 상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무, 배추등 주요 품목에 대해서는 소수의 중도매인이 도매법인과 공모해 담합응찰하거나 형식적인 경매(기록상장)를 거쳐 시세보다 싼값으로 낙찰받는등 가격을 조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같은 불법·탈법행위는 도매법인의 묵인과 청주시 관리사업소의 방조속에 수년간 계속됐다며 경찰의 수사를 요청했었다.

하지만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은 ‘향후 포전매매없이 정식경매를 하겠다’고 설득하며 막후협상을 벌여 산지수집상들이 고소를 취하했고 사건은 물밑으로 잠기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청주시의 시장도매인제 도입여부를 둘러싸고 청주시의회에 대한 로비의혹이 불거져 도경찰청이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
시장도매인제는 생산자∼산지수집상∼도매법인∼중도매인∼도·소매상∼소비자로 이어지는 기존의 6단계 유통경로를 3단계로 줄일 수 있는 제도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수집상과 중도매인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장도매인을 두어 유통단계를 대폭 줄인다는 것이다. 결국 중도매인제를 도입하면 기존의 도매법인과 산지수집상의 업권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청주시는 지난해 입법예고한 ‘농수산물도매시장업무조례 개정안’의 부칙조항에 ‘오는 2002년 7월부터 시장도매인제를 시행한다’로 명시했다가 지난 2월 시의회에 상정한 조례개정안에는 ‘오는 2002년 7월 1일부터 시행할 수 있다’로 변경시켰다. ‘시행한다’는 의무적 규정이지만 ‘시행할 수 있다’는 안해도 된다는 임의적 규정이기 때문에 기존 중도매인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도매법인측의 시의회 로비의혹을 제기하고 나섰고 마침내 충북경찰청이 수사에 착수하게 됐던 것.

경찰은 지난 7월 청주청과, 충북원협등 도매법인의 회계자료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고 4개월간의 수사 끝에 구조적인 경매비리의 실체를 밝혀냈다. 특히 시장도매인제 조례개정을 둘러싸고 도매법인측과 첨예한 갈등을 겪고있는 중도매인들이 수사과정에서 불법경매의 진상을 적극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경찰청 관계자는 “1년 6개월간의 경매 관련서류가 너무 방대해 조사기간이 길어졌다.

중도매인들이 불법경매에 대한 실상을 순순히 자백했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시장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에반해 도매법인측은 자금난을 겪고있는 중도매인들이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할 수없이 묵인해 주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8년 개장한 청주도매시장은 95년 청과물 거래물량이 10만4350t을 기록한 이후 96년 9만666t, 98년 8만5102t, 2000년 8만 2188t으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지방도매시장이 하향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대규모 물류센터와 할인매장들이 농산물 거래의 한 축으로 등장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지방도매시장이 급변하는 유통환경 속에 침체에 빠졌지만 서울 가락시장의 물량집중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결국 지방도매시장의 자체 물량수집력이 떨어지면서 서울 가락시장의 경매농산물을 역으로 들여와 재경매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과일의 경우 경매제가 어느 정도 정착됐지만 무·배추등 포장출하가 어려운 채소류는 상당부분이 형식적인 경매를 통해 기록상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7월에는 대구 북부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도 청주와 똑같은 경매비리 사건이 발생해 법인대표 2명, 중도매인 8명, 경매사 1명이 구속되고 이들의 불법거래를 알고도 묵인한 대구시 공무원 2명이 직무유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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