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변군수는 도내 자민련 녹색바람을 타고 예상을 뒤엎는 역전극을 연출했다. 당시 현직 군수 출신인 한나라당 오권영후보를 무러뜨린 변군수는 개표방송도 보지않은채 잠자리에 들었다가 당선확정 소식을 접했다는 후문. 취임초 군수실 벽을 없애고 면장실까지 폐지하는등 공직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왔다. 골재사업가 출신인 변군수는 나름의 추진력과 카리스마로 민선군정을 조기에 장악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변군수는 자신의 고향인 초청지역에 스파텔 민자유치사업을 벌이면서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초 전임 오권영군수가 자치단체 수익사업으로 추진해 충북도의 지역개발기금 30억원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변군수가 바톤을 이어받은것. 변군수는 군직영의 문제점을 들어 민자유치사업으로 전환했고 자금력이 없는 나건산업을 시행자로 선정했다. 시행자 선정과정의 의혹에 대해 충청리뷰가 첫 보도(95년 월간?월호)했고 공사과정에서 변군수의 아들이 불법 면허대여로 철근콘크리트공사를 ?억원에 하도급 받은 사실등이 드러나기도 했다.

청주농고, 청주대를 졸업한 변군수는 66년 공화당 청원군청년봉사회장을 시작으로 정당활동을 시작해72년 지구당 부위원장(당시 민기식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80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한변군수는 90년대 청원군 일대 골재사업에 뛰어들면서 재력을 쌓았고 충북축구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평소 선이 굵은 저돌성과 추진력을 인정받은 반면 단체장으로써 정실인사, 직계가족의 공사개입 의혹, 출신지(초정) 편중투자등 비판을 받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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