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에서 '정보수집'으로 기능 전환..때론 사회단체 사업 파트너 역할도

“며칠 전 담당하고있는 한 사회단체 사무실을 들렀다. 과거 같으면 사무실 입구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떠밀었을 텐데 여느 손님처럼 친절히 대해 주더라. 10년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간혹 학생운동원 출신 인사들과 만나 식사도 하고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80년대 학원(대학)과 재야단체를 출입(?)하던 한 정보형사의 말이다.

교통경찰이 교통법규 위반자 단속과 사고처리, 수사경찰이 사건 수사를 담당한다면 정보형사는 각종 정보의 수집을 담당한다. 정보를 다루는 업무특성 때문에 이들은 교통경찰, 수사형사 등과 구분해 정보형사로 불리운다.

군사정권 시절 권력유지의 첨병
경찰청을 비롯해 각급 경찰서에는 정보를 다루는 '정보과'를 두고 있는 데 그 비중이 무시못할 정도다.
경찰 정보과장 자리는 요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인사권자가 가장 신임하는 인물을 앉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정보형사에 대한 시선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았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보수집이라는 이름으로 재야권 단체나 인사,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사찰을 실시해 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생운동권이나 재야단체의 활동 사항이나 관련 인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했으며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던 그 시절, 사전 정보 수집을 통해 진압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때문에 정보형사의 정보수집 대상인 소위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언제나 정보형사의 시야에 있게 되며 끊임없이 이들과 부딪혀 왔다.

재야로 총칭되는 시국관련 단체나 인물 외에도 기관이나 단쳬, 종교, 금융권, 기업 등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도 정보형사의 손길이 닿는다. 이 분야에서도 주요 인물들의 동향이나 사안별 실태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기관 단체나 인사들의 비리 등에 대한 정보도 적잖히 확보, 수사 정보로 제공하거나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경찰의 사찰 논란이 종종 사회 문제화 되기도 했으며 대학내에서 정보 수집을 하던 정보 형사가 학생들에 의해 감금 당하거나 폭행 당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 했다. 실제로 지난 90년 청주시내 충북대학교에서 학생들의 대자보 내용을 메모 하던 청주서부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학생들에 의해 감금 당한 일이 있었으며 타 대학에서도 정보형사의 학내 출입 여부로 심심찮게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당시 정보형사들은 단순한 정보 수집에서부터 집회 · 시위의 사진 판독 업무까지 담당, 그야말로 시국과 관련된 정권 유지의 최일선 첨병으로 활약했다.

민선 기관 · 단체장에겐 ‘폭탄’
9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체제 시행을 계기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경찰의 사찰 논란도 점차 감소해 갔다. 더욱이 재야단체나 학생운동권 세력의 상당수가 시민단체로 변모하고 이들이 사상이나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이해와 요구에 관심을 돌리면서 정보형사의 역할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동향이나 실태 파악 등의 업무는 지속되고 있으나 과거 같이 적대적 관계에 기반한 사찰 내지는 탄압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치 사상적 이슈가 감소하고 참여와 개혁에 재야권의 무게가 실리면서 ‘투쟁과 억압’으로 인식되던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사회단체에서는 정보형사와의 관계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심지어 사업계획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 경찰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협조를 받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사회단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반 정부 투쟁이나 불법시위 등 계획이 많아 정보 형사를 극도로 기피했다. 정보 형사 또한 그런 정보를 얻기 위해 집요하게 접근 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정보를 가지고 숨박꼭질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반대로 업무를 위해 협조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재야권 단체가 참여와 개혁을 주장하며 시민단체로 변모하면서 경찰과의 마찰이 감소 하고 있다면 지자체 등 기관과 단체에 있어서 정보형사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민선 단체장의 경우 여러 가지 이권에 휘말릴 수 있고 표를 의식한 나머지 비리에 노출될 확률이 많다는 점에서 정보형사는 경우에 따라서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리로 구속된 경기도 모 단체장의 경우 사건화가 되기 전부터 경찰 정보라인을 타고 비리 사실을 감지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충북지역의 변종석 청원군수나 김영세 교육감 문제 또한 경찰 정보 부서에서는 사건의 결말을 미리 예견했을 정도로 정확한 정보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 시행 이후 급증하고 있는 집단민원에 대해서도 정보형사들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고 있다. 이들은 기관이나 단체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토대로 민원의 발생원인을 파악해 원만히 해결하는데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년 넘게 정보과에 근무하고 있다는 한 경찰관은 “집단민원으로 인해 집회나 농성이 발생하면 우선 법규를 준수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은 하고 통제할 것은 통제도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은 민원의 해결이다.

정보형사는 출입하는 기관단체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민원의 원인 또한 쉽게 찾아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 집단민원의 중재자 역할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정보형사)에게 새롭게 부여된 임무중의 하나라 할 만큼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보형사가 민원을 중재하는 것은 경찰신분의 과시는 결코 아니다.

사건이 확대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경찰력의 낭비이고 행정력의 낭비로 이어진다. 절충점을 찾아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 최선 아닌가. 그 역할을 할 주체가 사실 없다. 어쩌다 보니 현장을 누비는 정보형사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경찰이 정보과를 주요 부서로 두고 일선서별로 많게는 20명 가까이 인력을 배치해 운영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정보수집을 통해 치안질서를 바로잡고 경찰력 운용을 계획할 수 있다는 점과 과거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은 점차 벗고 있다고는 하지만 경찰의 정보수집 업무는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경찰의 정보수집 업무를 규정한 법적근거는 경찰법 3조 '경찰의 임무' 조항이다. 이 조항은 경찰에 대해 치안정보 수집의 임무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논란은 바로 '치안'이라는 데에 있다.

'치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보형사 업무에 대한 '사찰'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각종 범죄와 부조리를 지속적인 정보수집을 통해 차단하고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활동으로 본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정보수집이란 이름으로 치안과 거리가 먼 일상 업무에까지 손을 대는 것은 '치안정보' 수준을 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보형사들은 출입처를 정해 아예 상주하다시피 한다. 한마디로 모든 업무에 대해 깊숙히 관여한다는 것이다. 사업계획이나 평가 등 치안과 상관없는 내용을 물어 오기도 하는데 이를 정상적인 치안정보 수집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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