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돌려받지 못한 책 있지만 직지여부 확인곤란' 결론

지난 95년 청원군 북이면에 살던 최병학 씨(45ㆍ사진)가 선대로부터 간직해온 고서적 가운데 직지가 끼어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최 씨는 93년말 문제의 직지를 고종사촌인 이모씨에게 빌려주었는데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경찰에 사기ㆍ절도혐의로 고소장을 냈다. 본보 취재결과(월간 충청리뷰 96년 6월호) 이씨는 대전에 거주하는 동서 안모씨로부터 시골의 고서적을 수집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최씨 집에서 빌린 책도 모두 건네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씨의 친동생 2명도 집안에 있던 책이 '고인쇄빅물관의 직지 영인본과 똑같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또한 책의 맨 뒷장 간기(刊記)에 나오는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淸州牧外 興德寺 鑄字印施)' 대목이 똑같다고 진술했다.

더구나 대전 안씨가 되돌려준 고서적은 엉뚱하게도 최씨 집이 아닌 이웃 마을 집안의 책인 것으로 밝혀졌다. 안 씨는 고미술품 애호가로 식견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의심을 품게했다. 하지만 당시 청주고인쇄박물관 황정하 실장은 최씨 진술의 의문점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최씨는 고소하기 전에 직지 영인본을 몇차례 확인한 상태였는데, 빌려준 고서적이 영인본과 모든 점에서 똑같다고 주장했다. 표지의 직지라는 제목은 책 소유자가 직접 쓴 것인데 이것도 똑같다면 필경 같은 사람이 2권을 소유했다는 얘긴데, 통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다.

또 책 소유자가 주요 대목의 상단부에 자의적으로 붓뚜껍처럼 동그란 도장을 찍었는데 이것도 똑같다는 주장이었다. 아마도 최씨가 영인본을 보는 순간 똑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결과 안씨가 최씨로부터 빌린 책을 그대로 돌려주지 않은 혐의점은 인정됐지만 직지여부에 대해서는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최씨는 99 년 여름 청남대에서 휴가를 보내던 김대중대통령을 만나겠다며 정문진입을 시도하다가 제지당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직지의 국내 발굴작업에 작은 동기를 제공했으며 서지학계에도 새로운 자극을 준 사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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