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지검 강릉지청, 직지 절도의혹 고소사건 수사

청주 전문가ㆍ언론 현지 확인 '가능성 없음' 결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 존재여부를 둘러싼 법적공방이 또다시 해프닝으로 끝을 맺었다. '내가 직지를 소장했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이른바 '직지 절도 고소사건’은 지난 95년 청주지검에 이어 올해 춘천지검 강릉지청에서 똑같이 재현됐다. 충북 청원군, 강원도 동해시에 거주하는 2개 사건의 고소인들은 자신의 친인척에게 직지를 빌려주었으나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이 빌려줄 당시에는 직지였는지 몰랐지만 차후 언론보도 · 간행물을 통해 소장했던 고서적이 직지라고 확신했으나 정작 돌려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강릉지청 고소사건의 경우 직지 상 · 하권 2권을 모두 빌려주었다고 주장, 청주시관계자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직지 하권만이 유일하게 존재했으나 상권의 존재설이 최초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고소사실이 청주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강릉지청 담당검사가 지난 5일 고소인의 주장내용이 직지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청주 직지찾기 운동본부에 연락을 취했기 때문이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산하 직지찾기운동본부에서는 실행위원으로 활동 중인 은경민 위원(42 · 도서출판 직지 대표)에게 전화연결을 시켜주었다는 것.

직지 고소사건을 처음 접한 은 위원은 "강릉지청 담당검사가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나서 직지 관련 전문가가 고소인을 직접 만나 가능성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직지 상 · 하권을 갖고 있었다는 주장인데,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선뜻 전문가들을 모시고 강릉지청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고 수사일정에 맞춰 12일로 날짜를 정했다. 또한 수사 진행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언론이나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유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상 · 하권 갖고 있었다" 주장
은 위원은 자문역을 맡을만한 지역 관계자들에게 은밀하게 연락을 취했다. 우선적으로 금속활자 인간문화재인 오욱진 옹으로부터 자문승낙을 받았고 청주고인쇄박물관 김종벽 관장과 황정하 학예실장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또한 직지찾기운동본부장을 역임했던 김현문 시의원과 '직지디제라티'등 저술 활동을 벌여온 주성대학 이세열 학술팀장도 참여하기로 했다.

은 위원을 포함해 6명의 전문가들이 '직지 고소사건’ 의 자문위원단으로 구성된 셈이다. 사안의 중대성과 수사중인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안유지에 철저를 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뒤 청주시장 부속실에서 고인쇄박물관으로 황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강릉에서 직지 상 · 하권이 발견됐다는데 사실이냐, 그런 중대한 사안을 제때 보고하지 않아 시장님이 엉뚱한 쪽에서 얘길 들었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당장 경과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라’ 는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것.

더구나 일부 시청 출입기자들마저 낌새를 채고 확인취재에 나서자 고인쇄박물관의 입장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95년도 직지 고소사건이 해프닝으로 종결됐었고 수사상 보안이 필요 했기 때문에 서로들 입단속을 한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직지 발견’이라는 단정적인 얘기가 나돌기 시작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강릉 자문단에 참여키로한 한 분이 시장님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직지가 발견돼 확인차 가기로 했으니 시청 버스를 한 대 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다보니 부속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일부 기자들도 눈치를 챈 것으로 보인다." 청주고인쇄박물관 황정하 실장의 말이다.
문제는 춘천지검 강릉지청을 방문하는 날에도 벌어졌다. 지청 정문앞에서 청주지역 방송 3사의 카메라가 모두 대기하고 있었던 것.

이날 방송카메라는 담당검사실 출입에 제동이 걸렸지만 6명의 전문가 가운데 3명만 고소인 윤모 씨와 면담을 갖기로 했다. 강릉지청과 연락을 취했던 은 위원은 "담당 검사 얼굴 보기가 민망했다. 수사보안 을 지키기로 한 것인데 마치 취재진을 몰고 간 것처럼 오해받기 십상인 상황이었다. 검사실 직원들이 '며칠동안 청주에서 수차례 확인전화를 받았다.

 근데 어떻게 직지가 발견된 것처럼 얘기들을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며 꼬집었다. 결과적으로 청주시와 언론사, 자문위원 모두 망신을 당한 셈이다." 고소인 윤모 씨(60 · 여)와 면담을 한 사람은 은 위원과 오욱진 옹, 황정하 실장 등 3명이었다. 장장 4시간에 걸쳐 문답식 대화가 오고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우선 고서적 한자속에 한글이 섞여 있었다는 진술을 반복했는데 영 엉뚱한 내용이었다. 표지가 매끌매끌했다는 주장도 차이가 있었고 글자크기도 직지원본과는 차이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TV를 통해 본 직지와 직지영화사에서 홍보용으로 제작한 축소판 책자를 보고 꿰어맞추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 때문에 장시간 확인질문을 던졌다"고 황 실장은 설명했다.

실제로 고소인 윤 씨는 영화 직지를 촬영중인 영화제작사 (주)직지가 지난 2월 발간한 홍보용 직지책자를 검찰에 근거자료로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인 윤씨는 수년전 향교일을 보던 친척에게 고서적 11권을 빌려준 뒤 4권을 돌려받지 못했는데 그 중에 직지 상 · 하권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TV를 통해 돌려받지 못한 책이 직지라고 판단했고 직지영화사의 책자를 보고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

결국 4시간여에 걸친 면담은 아무런 소득없이 끝났고 이때까지 검사실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도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직지 존재여부에 대한 제2의 법적논쟁은 결국 '7일간의 꿈' 으로 믹을 내렸다. 하지만 강릉지청을 방문한 전문가, 취재진은 이같은 논쟁이 청주시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직지찾기운동의 홍보 결과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도서출판 직지 은 위원은 “청주의 영화사가 홍보용으로 제작한 직지책자가 강원도의 한 할머니 손에까지 전달 됐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관심과 논쟁이 계속되다보면 언젠가는 숨겨진 보물 직지가 세상의 빛을 볼 날이 앞당겨 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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