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전후 지역금융 격변사

지난 1999년 2월2일은 당시 1년넘게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던 충북은행에게 강제합병 명령이란 '최후통첩'이 내려진 날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날 충북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 4월말까지 타 은행과의 합병절차를 마치도록 명령했다. 지난 71년 4월 24일 자본금 2억5000만원으로 설립된 이후 28년간 충북지역의 유일한 지방은행으로'젖줄' 역할을 해 왔던 충북은행이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충북의 금융시스템 역시 정점에 서 있던 충북은행의 사실상 퇴출로 인해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는 불행한 순간이었다.

충북지역의 금융계 역사는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햇동안에 거의 집중적으로 괴멸적궤적을 그리고 있다. 새해 벽두 청솔종합금융(1월29일)을 시작으로 중앙리스(6월22일), 대청상호신용금고(7월20일), 태양생명(8월11일)이 모두 1998년 영업정지에 이어 퇴출당하는 운명을 맞은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표상에는1999년으로 돼 있지만 충북은행 역시 사실은 1998년에 이미 정부와 금융시장로부터 '회생불능'이란 뇌사판정 진단서를 받은 상태였다.

1998년말 충북은행의 경영상태는 부채가 자산을 초과(601억원)하고 자기자본이 마이너스 698억원에 달한 상태였다. 더구나 그해 당기손실 규모는 무려 2426억원이나 됐다. 수신고가 1조7952억원이나 됐지만 부실대출이 누적된데다 수신액의 절반가량밖에 되지않는 대출실적(8501억원)을 보이면서 '돈장사' 를 해야하는 은행으로서의 기능이 마비돼 있다시피 했던 때문이다.

물론 지역의 금융사고는 그 이전부터 고질병처럼 되풀이 해 왔다. 대주주에 대한 위규 및 불법대출 등으로 흥업금고(94년5월. 충북은행이 대주주가돼 신충은금고로 개명됐다가 다시 한차례 소유지분의 변화를 거쳤지만 최근 청산절차에 돌입)와 충북(95년7월. 신충북금고) 동양상호신용금고(95년 7월. 청주금고로 변신했다가 서울금고와의 업계최초 자율적 합병을 통해 하나로 금고로 변신) 등이 제3자에 인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 95년 3월에는 덕산그룹 부도의 영향으로 충북투금에 예금인출사태가 야기, 영업정지 명령을 받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수십년간 "금융기관, 특히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확고 부동한 믿음으로 살아있던 우리사회의 경험에서 볼 때 이토록 짧은 기간에 한지역에서 은행을 비롯해 굵직굵직한 향토금융기관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간 것은 미증유의 경험으로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격동 격변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지역금융시스템의 붕괴는 사상최악의 부도행진이라는 후폭풍을 몰고왔다.
더구나 충북은행이 합병명령을 받기전 1년여라는 긴 시간동안 거의 은행으로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갈수록 골병이 들었다. 당시 충북은행과 대출 등의 거래를 통해 관계를 맺고있던 기업체는 3500여개에 이르렀다.

그랬으니 그동안 회사의 신용도와 규모에 따라 금고, 종금사(또는 리스사 등), 은행의 단계별로 자금조달을 해 왔던 기업들이 느닷없이 겪게된 자금난이 얼마나 심각했을 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자금조달체계의 붕괴는 곧바로 기업에게 뼈저린 '순망치한'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일일이 거명조차 할 수 없지만 한림 및 진흥건설, (주)청주진로백화점, 삼립식품, 성일화학, 한국R&M, 속리산고속, 뉴맥스, 삼정.세원.보성건설 등이 잇따라 부도를 낸 것도 IMF이후 지역에 초래된 금융공황이 낳은 부산물이었다.

당시 기업들의 연쇄부도 현상이 얼마나 심각했던가는 수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한햇동안 도내에서 부도로 쓰러진 기업체수는 자그마치 477개로 1997년 283개의 2배이상. 공휴일을 빼면 하루에 평균 2개꼴로 기업이 쓰러졌다는 계산. 특히 경기부양효과가 큰 업종인 건설업체 경우 1년새 101개사(담좌거래 정지업체수 기준)나 쓰러져 전체 부도업체의 5분의1을 넘게 차지했다.
그리고 금융이 실물경제를 핍박하는 현상은 그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 임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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