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평미만 영세농가만 폭설피해 보상에 대규모 축산농가 ‘항의’
법적인 문제 여기저기서 노출되자 ‘죽게 생겼다’ 불만 팽배

 “나라가 농민을 포기하니 하늘도 농민을 포기하나 봅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살길이 막막한 농민들은 100년만의 폭설로 살아갈 희망마저 빼앗겼습니다. 이번 폭설로 수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농민들의 피해가 가장 극심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큰 피해를 입었든, 작은 피해를 입었든 폭설로 피해를 입은 것은 분명할진대, 정부는 보상 상한선을 정해놓음으로써 축산농가에 현실적인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은 10년전 그대로”

폭설피해 농가들의 아픔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도시민들은 벌써 ‘100년만의 폭설’을 잊고 봄의 정취를 즐기고 있지만, 농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며 연일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달 25∼26일 충북지역 축산농가들은 청원군청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폭설피해 외면하는 단체장은 각성하라’라는 구호를 트럭위에 붙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문제는 천막농성까지 이어지며 ‘태풍의 눈’이 될 조짐을 보였으나 오효진 청원군수와 이원종 충북도지사로부터 “피해 보상에 최대한 노력하겠다. 중앙정부에서 지원을 못 받으면 도비와 군비로라도 보상하겠다”는 답변을 듣고 26일 해산했다.

그러나 법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들이 거세게 항의한 부분도 바로 이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축사 피해 지원대상을 1800㎡(545평) 미만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대규모 축산농가들은 전혀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돼있다.

이에 대해 김재덕 전국농민회청원군지부장은 “정부 정책은 전업농이나 규모화로 가고 있는데 법은 10년전 그대로다. 어떻게 이런 법이 아직도 통하는가. 축산농가들은 젖소가 죽고 축사가 무너져 여간 피해가 심각한 게 아니다. 그런데 양계농가에 대해서는 이번에 융통성을 발휘해 지원대상을 2700㎡ 미만으로 조정했다. 아무리 양계농가가 조류독감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축산농가의 실정도 어려우니 우리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형평성의 원칙 문제를 제기했다. 당장 법개정이 어려우면 양계농가처럼 기준을 조정해 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관계기관 “법 때문에 안돼”

신관우 충북낙농업협동조합장도 “주변에 대규모 낙농가가 많은데 전혀 보상을 못받았다. 평수 제한은 오래전에 정해둔 기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보상에서 제외된 농가에게 융자만 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미 빚이 많아 더 융자를 받을 수도 없다. 현재는 자재값이 2배 이상 오르고 철근이 부족해 복구에 손도 못대고 있다”며 ‘죽게 생겼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신 조합장은 “행자부와 농림부, 청와대 등을 찾아가 이러한 사실을 호소했지만, 법 때문에 안된다는 답변만 듣고 왔다”고 허탈해했다.

청원군의회에서도 지난달 25일 ‘폭설피해농가 현실보상촉구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어 시·군의장단회의에서도 신속한 보상을 요구했다.

군의회는 성명서에서 “특별위로금을 피해 정도에 따라 최저 300만원에서 최고 500만원까지 지급하고 있으나 이는 피해규모가 50% 이상인 농가에 국한되어 있고 50% 미만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해서는 한 푼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영세농가만 보조지원하는 것은 여기서 제외된 일반 축산농가들의 도산위기와 함께 농촌경제의 파산이 우려되므로 지원대상을 확대하여 줄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농가를 추가로 포함해줄 것과 폭설피해농가에 이미 지원된 융자금 상환기간 연장, 금리 전액감면 등을 요구했다.

영세농가만 보상혜택을 받도록 한 기준 외에도 축산분야의 복구비 지원 절차가 원예나 특수작물 분야보다 복잡하고 비능률적이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허가축산의 경우 복잡한 행정절차에 따라 지급하도록 돼있어 군에서도 아직까지 복구비를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허가로 축사를 지은 청원 부용면의 충광농원이 대표적인 케이스.

이런데도 복구율은 80∼90%?

또 축산용 창고와 내부설비, 자동화시설 등도 복구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과수농가의 경우 과수나무는 지원되지만 과수원에 설치된 방조망이나 비가림시설, 관수시설 역시 제외돼 농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특히 폭설피해가 폭우나 태풍피해처럼 자연재해보험 수혜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점은 미래를 내다보지 않은 법 체계라는 여론이다.

그동안 폭설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보험 항목에도 넣지 않았다는 식의 변명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청원군 관계자는 이러한 제도상의 문제점을 정리해 세 차례에 걸쳐 충북도에 제출하고 이를 행정자치부와 농림부에 건의해 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대규모 농가는 자금력이 있다고 보고 영세농만 보호해준다는 지침에 농민들이 이의를 제기하는데 모두 다 보상해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농민들의 실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에서는 폭설피해가 난 뒤 2주 정도 지났을 때 도내 복구율을 80∼90%라고 발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충북도 관계자는 폭설피해 후 초기에 나온 응급복구율을 언론에서 복구율이라고 소개한 점이 있다고 변명했으나, 어쨌든 피해농가는 높은 복구율 때문에 손해를 본 측면도 많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방형 청원군의회 의장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탄핵정국 이후 경찰과 군인의 도움을 받지 못해 피해농가는 피해시설 철거만 했다. 복구는 일부 도로변에서나 이뤄졌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쓰레기도 그냥 쌓여있다. 그런데도 복구율을 그렇게 높게 잡아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복구율이 높다고 발표돼 일반인들은 모두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어 지원의 손길도 뚝 끊겼다.”

이어 조의장은 최근 군의회에서 전업농을 대상으로 평균 부채를 조사한 결과 가구당 1억5200만원으로 밝혀졌다며, 한 농가당 1억원은 있어야 복구를 할텐데 이것도 결국은 빚 규모를 늘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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