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역 초소 '취객사망사건' 범인은 근무 의경
유가족, "검ㆍ경 수사부진 책임규명하라" 주장

지난 11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청주 우암산 한 사찰에는 칠순의 할머니가 막내 아들의 연등을 잡고 하염없이 서 있었다. 5남매의 막둥이로 태어나 35년간 자신의 곁에 두고 키워온 귀한 아들 2년전 생떼같은 그 아들이 불의의 사건으로 세상을 뜨자 정한임씨(70세 · 여)는 할 말을 잃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심장파열로 숨진 아들의 시신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내 아들을 그렇게 만든 범인은 쉽사리 가려지지 않았다. 한밤중에 경찰 초소 코 앞에서 시체로 발견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 정씨는 아들의 한을 풀기 위해 경찰서와 검찰청을 내 집 드나들 듯 찾아다녔다.
결국 사건발생 1년 7개월 만에 검찰은 당초 용의자를 범인으로 지목, 전격구속했다. 마침 11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범인이 구속됐고 정씨는 비로소 학내아들의 ‘극락왕생’을 간구할 수 있었다.

정씨의 아들 방민석씨(당시 35세)를 살해한 범인은 당시 초소에 근무했던 의경 이대연씨(23세)였다.
사건직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이씨가 범행 1년 7개월만에 뒤늦게 검거된 경위는 무엇인가.
사건발생과 수사과정을 다시금 되짚어 본다.

택시승차가 '마지막길’
숨진 방씨는 청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친 청주토박이였다. 대학졸업후 실내장식 · 인테리어 개인사업을 벌였으나 경험 부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재정적인 타격을 입은 방씨는 재기를 위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방씨는 야식집을 운영했고 사건 당일 일찍 가게를 정리하고 이웃 점포 주인들과 소주잔을 나누게 됐다. 술에 취한 방씨는 자정이 지날 무렵 택시를 타고 옥산방면으로 향하던 중 운전기사와 시비가 벌어졌다.

정상운전을 할 수 없었던 택시운전사는 청주역 앞 경찰초소로 차를 돌려 방씨를 근무중이던 의경들에게 인계했다. 당시 초소에는 강서파출소 이모경사(당시 56세)와 의경 4명이 근무중이었다. 당시 근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초소안에서 방씨가 이경사의 멱살을 잡는 등 30여분간 소란을 피웠고 결국 의경들의 제지로 밖으로 내보냈다는 것.

하지만 새벽 1시 50분께 순찰을 돌려고 밖으로 나서던 이대연 수경이 초소앞 40m 지점에서 쓰러져 있는 방씨의 모습을 발견, 다른 근무자들에게 알리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방씨를 차에 옮겨 청주시내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부검결과 심장파열로 인한 사망으로 판명됐고 뒷머리, 이마등에 경미한 타박상이 발견됐다.

유가족들은 청주역앞 초소 상황으로볼 때 근무자들의 폭행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경찰 수사진도 방씨와 의경들간에 초소내에서 몸싸움이 있었던 점을 감안, 근무자들에게 혐의점을 두고 조사를 진행했다. 특히 이대연 수경의 행적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범인, 첫눈에 알아봤다"
"애초 숨진 방씨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이수경이고, 병원 후송때도 오토바이를 타고 뒤따라 왔다는 것이다. 병원도착 후에도 바깥에서 빙빙도는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는 동료들의 진술이 있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도 이수경이 뚜렷한 양성반응이 나타났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수사에 애로점이 많았다" 도 경찰청 관계자의 말이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새벽녘에 병원과 경찰서를 찾아갔던 방씨의 어머니 정씨도 당시 이수경을 범인으로 지목 했다는 것.
“내가 경찰서 조사하는데를 가보니까, 초소에 있었던 의경들이 거기 있더라구요.
그런데 이대연이라는 애는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손가락만 만지면서 안절부절하길래, 내 맘 속으로 '바로 저 놈이구나’ 싶더라구요. 그런데 1년반이 지나도록 잡아넣지 못했으니,이 에미 가슴이 어떻겠어요."
경찰은 과학적인 채증작업에 나서 숨진 방씨의 웃옷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가슴에 묻은 구두약 자국을 분석의뢰했다.

하지만 의경들에게 지급되는 구두약과의 일치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마에 난 두줄 상처도 수갑에 맞은 것으로 추정됐지만 경미한 수준이라서 사인을 규명하기는 곤란했다. 하지만 도경찰청 강력계는 지난해 이대연씨에 대한 혐의점을 두고 구속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거짓말 탐지시 반응과 사건 당일 정황 등으로 미루어 이씨에계 혐의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사 수개월만에 구속기소 의견을 냈지만 재지휘 지시가 떨어졌다. 초소장, 병원관계자, 택시기사 등 그동안 받은 관련자 진술조서만도 엄청난 양이었다” 경찰측의 주장이다. 검찰, ‘수사지연’ 의혹 제기 하지만 담당 검사는 범행을 확증할 만한 증거로는 미약하다’며 재수사 지휘를 내렸고 결국 1년여 동안 공전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미제사건 처럼 쌓여있던 방씨의 의문사는 마침내 지난2월 사건배당이 조욱희 검사로 바뀌면서 새로운 물길을 타기 시작했다.

“수사자료를 검토한 결과 이씨에 대한 혐의점이 농후했다. 하지만 뒤늦게 눈에 보이는 증거물을 찾기는 불가능하고 이씨의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건 당시 함께 근무하다 제대한 동료들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 경찰조사 때와는 달리 이씨에 대해 자신들이 품고 있던 의문점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그래서 이씨를 만나 그때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권유했다" 조검사의 설명이다. 이에따라 옛 동료들은 이씨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들이 다시금 검찰 소환 조사를 받는 등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한편 방씨 사건의 경위에 대해 유도질문을 던지게 됐다. 부지불식간에 이씨의 입에서 “어쩌다 한번 때렸는데, 그렇게 죽을 줄 누가 알았느냐’며 하소연이 흘러나왔다.

이씨의 고백은 그대로 녹음됐고 검찰은 녹음 테잎을 결정적인 증거로 잡고 대학 생활 중이던 이씨를 긴급체포했다. 이 씨는 녹음내용에 대해 '동료들이 힘들다고 하길래 내가 뒤집어쓰고 말자는 생각으로 한 소리'라며 범행사실을 계속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녹음진술에 자백의 반복성과 일관성이 있어 증거채택에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숨진 방씨의 누님 유진씨(44ㆍ가명)는 "충격 때문에 온 가족이 생활이 엉망이 됐다. 어머니는 홧병이 생겨서 경찰서나 검사실 찾아가는 일이 아니면 절에 가서 온종일 민석이 위해 기도하는게 일과였다. 나는 청주에 살기가 싫어져서 대전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두달전에 되돌아왔다. 늦게나마 범인이 밝혀진 것은 다행이지만 애태우던 지난 2년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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