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택 학장 인터뷰…이양호씨에 안타까움 토로

‘린다 김 로비사건’의 첫 보도가 나간 지난 2일 오전 10시 기자는 사전연락도 없이 충청대학 학장실을 찾아갔다. 언론과의 전화차단이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정학장은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확인 전화를 받으며 자신의 심경을 담은 해명서를 직접 작성하느라 여 념이 없었다. ‘린다 김에게 펀지를 쓴 적은 없는가?' 빗대어 첫 질문을 던졌다. “무슨 소리, 아저씨와 조카 사이였는데 편지 쓸 일이 뭐 있는가.

괜히 언론에서 여성 로비스트라니까,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게 아닌가 싶다. 주인공이 남자였다편 이렇게 동네북처럼 두드리겠는가?" 한편은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기거래 로비스트인 줄 알면서도 고위관료들에게 소개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첨엔 무기거래 분야는 얘기도 없었고 컴퓨터 관련 무역일을 한다고 했다. 미국 명문대 출신에 똑똑하고 사교성이 있으니까, 부담없이 만났던 것인데…, 이렇게 철저한 장삿속을 가진 여자인줄 몰랐다. 솔직히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지만 어떠한 대가도 받은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이양호 전 장관은 고향고교 후배 이기때문에 사건보도 이후 정학장의 심적부담감이 클 것으로 생각됐다. “나에 대한 온갖 보도는 할 수 없지만, 이장관에 대한 부분은 자제해 주기를 바란다. 이미 96년도에 옥고까지 치르며 고생했는데, 지금내 심정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정말 아까운 후배인데 나로 인해 또다시 구설수에 오르게 됐으니… " 정학장은 취재도중 거듭거듭이 전장관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수년간 교류를 나눈 린다 김과의 관계가 왜 단절됐는지 궁금했다. "96년도에 이장관 구속사건 이후 ‘위험한 여자'라고 판단돼 사실상 만남을 피했다. 물론 무기거래 로비스트로 나선 것을 알고는 ‘국방부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국익에 보탬이 되도록 하라'고 당부까지 했다. 그런데 투서사건이 벌어지고 기무사 조사가 벌어졌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난 때는 충청대학장 취임직후인 97년말 이었다. 그때는 공직을 떠난 상태였고, 린다 김이 몇차례 만날 것을 요청해 서울에서 그 사람 딸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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