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택 학장, '마당발'로 장관·의원 소개
이양호 전장관,비호여부 재수사 불가피

김영삼 정부 당시 정·관계 고위인사들이 미국 방위산업체의 여성로비스트와 접촉하면서 국방부의 무기도입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의혹이 제기 됐다. 지난 2일 ‘중앙일보’의 단독보도를 통해 폭로된 이번 사건은 충북 출신 3선 의원인 정종택 학장(충청대학)과 전 국방부장관 이양호씨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나 지역의 뜨거운 관심사로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정학장은 문제의 여성 로비스트 ‘린다 김’(48·한국명 김귀옥)과 고위관료들을 연결시키는 창구였고 이 전장관은 무기 구매계약을 성사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관측 되고 있다.
‘정치권의 마당발’로 통하는 정학장과 최초 공군출신 최초의 국방장관으로 알려진 이씨의 당시 행적을 통해 이번 사건을 재조명해 본다.

선후배 ‘가연’이 ‘악연’으로
정학장과 ‘린다 김’의 첫 만남은 지난 89년 이루어졌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정무장관으로 재직하던 중 손주항 의원(당시 평민당)의 소개로 서울 하이야트 호텔에서 만났다. “말씨도 단정하고 친근감 있는 인상이었고…, 보기드문 사교성 있는 여성이었다.
자기 어머니가 나와 동성동본이고 아저씨 뻘이라면서 '아저씨’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땐 무기거래업과는 상관이 없었고 미국 컴퓨터 업체의 국내 판매와 석유 수입업 등을 하는 것으로 소개했었다.

본인이 부탁을 하길래 당시 무역협회 고문이었던 금진호씨(전 상공부장관)를 소개해 주 었고 96년초 내가 환경부장관 재직시에 이양호 국방부 장관을 소개해줬다“ 정학장의 말이다. 당시 이양호 장관은 정학장의 청주C고 3년 후배로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에 부담없이 만나게 됐다는 것. 이 전장관은 “정장관이 조카라고 소개했고 린다 김은 자기가 스탠퍼드 출신 박사이고 컨설던트라고 했다.

그때 국회 국방위 원장이었던 황명수 의원도 만나보라고 권유했기 때문에 별 부담 없이 만나게 된 것“이라고 접촉경위를 밝히고 있다. 이밖에 92년도에 정학장의 서울법대 후배이며 동자부장관을 지냈던 최동규씨(64)도 린다 김과 인연을 맺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최씨는 극동정유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으며 린다 김의 석유수입업과 관련, 정학장이 징검다리’를 놓아준 것으로 풀이된다.

YS측근, 사돈까지 소개
정학장이 소개해 준 인물 가운데는 김영삼 대통령과 막연한 사이로 알려진 김 윤도변호사(78)도 포함된다.
김 전대통령과 같은 헬스클럽 회원으로 오랜 친분을 쌓아온 김 변호사는 당시 청와대 독대가 가능한 측근 인사로 손꼽혔다. 정학장의 딸이 김 변호사 아들과 결혼, 돈독한 사돈관계였기 때문에 린다 김을 소개하게 됐다는 후문. 하지만 김 변호사는 린다 김과의 만남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정 전장관이 소개하려고 하길래 ‘뭐하는 여자냐’고 하니까, ‘무기 거래 일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만날 필요가 없다’고 거절했는데 나중에 들리는 얘기로 린다 김이 나와 잘 아는 사이로 떠들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듣기로는 6공때부터 정·관계 인사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온 여자로 통했다”고 김 변호사는 취재기자들에게 해명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린다 김과 연서(戀書)를 주고 받은 장본인은 3명으로 나타났다.
금진호·이양호·최덕규씨로 모두 전직 장관출신이며 이들은 또한 정학장을 통해 린다 김을 소개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씨와 최씨는 92년도에 린다 김을 만나 오랜기간 교류해 온 반면 이씨는 96년 4월,소개받은지 한달만에 ‘사랑하는 린다에게’로 시작하는 절절한 편지를 미국으로 보내 ‘불같은 로맨스’(?)가 놀랍다는 주변의 반응. 이에대해 이 전장괸을 아는 지역인사들은 “이 전장관은 공사 출신으로 최초의 국방장관에 임명될 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또한 고교시절은 물론 군내에서도 ‘신사’로 통 할만큼 순수하고 깔끔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았었다.
이러한 개인 성향 때문에 오히려 린다 김과 같은 ‘프로페셔날 로비스트’를 만나 쉽게 현혹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엉뚱한 불똥, 떨어진 4성장 군린다 김은 95년 미국의 E시스템사의 로비스트로 고용돼 2억1000만달러(약 2200억원)가 소요되는 백두사업(통신감 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의 계약수주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당시 프랑스, 이스라엘의 경쟁업체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결국 96년 6월 대통령 재가를 받아 낙찰업체로 선정됐다.
하지만 같은해 10월 백두사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국방부의 경전투 헬기사업과 관련, 이 전장관이 대우중공업으로부터 1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고 무기중개상 권모씨에게 무기사업 관련 기밀사항을 유출했다는 주장이 제기 됐다. 96년 10월 야당인 국민회의 측의 폭로로 정치적 사건으로 불거지게 됐다. 결국 이 전장관의 혐의사실이 대부분 드러나 현직 국방장관이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게 됐다. 충북출신의 공군 참모총장, 국방부장관으로 승승장구하던 이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97년 12월 대선직후 김영삼 정부의 전·노 전대통령 사면조치때 잔형면제로 석방됐다.

하지만 98년 10월 백두사업에 참여했다가 탈락한 업체들이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투서를 작성해 기무사가 수사에 나섰고 이 전장관도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전장관은 일체의 대외활동 없이 칩거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맥관리 正道는 무엇인가 신문보도 직후 정 학장을 만나기 위해 대학 집무실로 찾아갔다. 손님을 맞는 탁자에는 99년 연합뉴스 발행판 ‘한국 인명사전’이 가장 가까이 놓여 있었다.
옆에는 정부부처 공무원의 인명록이 눈에 띄었고 대화중에 꺼낸 자료는 16대 총선에 당선된 서울대학교 동문 인명부였다.

정학장이 소문대로 ‘마당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만 했다. 알려진 바로는 서울대 출신의 충북인사 가운데 정학장을 통해 학자금 지원 결연사업의 도움 받은 사람만도 100명이 넘는다는 것.
미리부터 ‘장래성’있는 후배를 키우고 자기 사람으로 묶어놓는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정학장 취임이후 충청대학의 국고지원금이 20%이상 늘어난 것도 평소 인맥관리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주 병덕 전 지사가 경찰 고위 간부로 승승장구하고 이원종 지사가 청와대 2급비서관에서 충북지사로 발탁된 배경 등에는 중앙 정·관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정 학장의 입김이 했다는 것. 하지만 정학장의 두터운 인맥관리가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96년 서원대의 새로운 재단주로 최완배 이사장을 영입시켰으나 결국 상처만 남긴채 해외도피극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린다 김 로비사건’도 결국 정학장의 인맥을 통한 연결고리가 절친한 고향후배인 이양호 전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에게 엄청난 멍에를 씌운 결과를 초래했다. 이번 16대 총선에서 집권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정학장이 근소한 표차로 낙선하자 일부에서는 “집권당 다선의원으로 원내 진출만 하면 지역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큰 일을 할 사람인 데 안타깝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하지만 청주중 동문인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 당에 먼저 공천요청을 했던 사실이 뒤 늦게 드러났다.
정학장의 폭넓은 인맥은 개인뿐만 아니라 지역의 재산’이 될 수도 있다. 단 개인을 위한 ‘정치의 수단’이 아닌 지역을 위한 ‘정도(正道)의 수단’으로 활용될 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권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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