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춘씨 "부친 우익활동 불구 보도연맹몰려 총살"

선천성 소아마비로 4급 장애자인 이규춘씨(52 · 청주 가경동)는 최근 영동 노근리 학살사건 보도를 접하면서 육신보다 더 한 마음의 장애(?)로 고통스럽기만 하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애꿎게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숨을 거둔 아버지 이완석씨(당시 32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절대 ‘좌익활동을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같은 동네에 좌익 우두머리를 혼내주는 바람에 그 사람이 감정을 품고 죄없는 아버지 이름을 끌어대서 화를 당한 거예요. 전쟁통에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재가하시고 성치않은 몸으로 세상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어요. 우리 집이 절단나고 그 모진 고생을 한 것이 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흠 때문에 생긴일 아니겠어요" 이씨는 억센 목소리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
취재진은 지난 11일 이씨의 안내를 받아 자신의 고향인 보은군 탄부면 대양리를 찾아갔다.

이씨는 전쟁후 어머니가 재혼하자 친척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라야만 했다. 이씨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초등학교는 거의 매일 지각이었고 친척 집에서 ‘일도 못하는 주제에 밥만 많이 먹는다’ 고 구박받은 일이 평생을 통해 가장 가슴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결혼후 이씨부부는 아들 3형제를 키우며 한시도 쉴틈없이 일을 했다. 이제 가경동에 슈퍼마켓이 딸린 건물을 마련할 만큼 여유도 생겼고 고향에서도 장애인인 이씨가 객지에서 자수성가한 것에 대해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마을 노인정을 찾아가 전쟁 당시의 얘기를 들었다. 노인들의 기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좌익 주동자였던 양모씨가 탄부지서로 끌려가면서 이씨의 아버지를 고자질했다는 설과 면소재지인 화장리에서 서북청년단장으로 활동하며 지서일을 도와주던 홍모 씨가 감정을 품고 경찰에 거짓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체격이 건장했던 이씨의 아버지는 우연찮게도 동네 좌 · 우익의 중심인물이었던 두 사람과 한두번 충돌하는 등 갈등관계에 있었고 이로인해 무고한 희생양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씨 아버지가 대한청년단에서 활동하는 등 좌익단체와는 전혀 무관했고 마을에서 다 아는 우익이었기 때문에 결국 홍모씨의 농간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씨의 아버지는 탄부지서로 끌려 간뒤 뒷산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고 세살바기 이씨를 등에 업은 어 머니는 한밤에 간신히 남편의 시신을 수습했다. 특히 이씨의 아버지는 일제말에 강제징병돼 종전과 함께 비운의 우키시마호를 타고 귀국한 것으 로 나타났다. 당시 현해탄을 건너던 우키시마호는 원인모를 화재로 침몰 했고 상당수의 귀국동포들이 수장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씨 아버지는 나무판자에 의지한채 망망대해에서 목숨을 건졌으나 결국 고국땅에서 동포의 총에 숨지는 운명을 맞게된 것이다.

고향으로 가면서 자신의 고생담을 줄줄이 풀어놓던 이씨는 돌아오는 차 안에선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재혼을 하고 이씨 못지않은 고생을 겪은 어머니의 눈물을 접한 탓일까,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겹쳐서 일까, 이씨와 그의 어머니가 겪은 애증의 세월들은 결국 광기의 전쟁이 낳은 어처구니 없는 희생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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