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목사, 수백매 뿌려 진상 알려… 구속 3개월만에 석방

'5 · 18 광주민주화운동’ 이 계엄군의 총칼로 진압된 뒤 광주의 진실을 청주에 처음으로 알린사람이 김창 규목사다.
80년 6월초 당시 청주 기독청년회장이었던 김목사는 김준태씨가 5 · 18 광주의 비극을 시로 쓴 '아, 광주 여! 우리나라의 십가자가여…'를 등사한 유인물 수백매를 청주시내와 도서관에 직접 뿌렸던 장본인이다.

“평소 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김준태씨의 시를 읽는 순간 뜨거운 전율이 느껴졌다. 광주의 현실이 바로 이것이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실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 했다.그때 정진동목사님께 말씀드렸더니 계엄시국에 구속될 것이 뻔하다면서 걱정하셨다.유인물을 뿌린 지 3시간만에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쳐 연행했다”

김목사는 청주지역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던 도시산업선교회에서 조순영전도사의 도움으로 전남대에서 작성한 광주백서와 시를 등 사지에 옮겨 적은 뒤 밤새 등사를 했다.
결국 군 합동수사대로 넘겨진 김목사는 모진 고문을 벋았고 조전도사와 함께 유언비어 유포에 따른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됐다.

요행히 대전 군법회의에서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져 구속 3개월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군수사대에서는 내가 김대중씨로부터 활동자금을 받았다는 허위진술을 자백 받기 위해 모진 폭력을 가 했다. 그때 고막이 터지고 틀니가 부러졌다.무릎관절은 지금까지도 온전치 못하다”
김목사는 6 · 10 항쟁이후 매년 계속해 온 청주의 5 · 18 기념식이 올해 치러지지 못한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움을 나타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