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돈은 아는데 번돈은 모른다"
상태바
"쓴돈은 아는데 번돈은 모른다"
  • 권혁상 기자
  • 승인 1998.08.08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직 중부고속순찰대원 증언 "1인당 한달에 20만원 거뒀다"

충북지방경찰청은 지난 21일 중부고속도로 순찰대 금품 의혹 사건과 관련, 소속 경찰관 26명을 전격교체한 데 이어 순찰대로부터 상납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간부직원 6명의 사표를 받는 등 중징계했다.
특히 지난 3월까지 지방경찰청 교통과장을 지냈던 전복용 제천서장(총경급)과 전 서장의 후임으로 6월말까지 근무한 황인웅총경을 사표처리해 충북 경찰사상 최대의 징계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밖에 순찰대 제10지구대 대장·부대장을 맡았던 경감 2명·경위 2명에 대해서도 사표를 제출받았다.
경찰청은 고속도로순찰대(이하 고순대) 금품수수비리의혹에 대해 집중감사를 벌인 결과 순찰대원들이 수시로 5만~10만원씩을 거둬 명절이나 교육시 고속도로순찰대장, 충북 지방경찰청 교통과장 등에게 떡값 명목으로 10만~30만원씩 상납해 온 사실를 밝혀냈다.

또한 나머지 돈은 여직원 급여 보조비와 전화요금 부족분, 경조사비, 회식비등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순찰대원들이 거둬들인 돈의 성격에 대해서는 명확한 사실규명을 하지 못했다.

지방경찰청 사상 최대 징계
문제의 돈이 단속근무 중 운전자들로부터 받아낸 의혹은 짙지만 정확한 증거나 자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감사의 한계에 부딪친 셈이다.
이번 사건에 때맞춰 최근까지 중부고속도로 순찰대에 근무했던 한 경찰관이 ‘충청리뷰’기자를 만나 자신의 근무경험담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제보자의 입장을 감안해 이름은 편의상 A씨로 하고 사진은 쓰지 않기로 했다.
A씨는 먼저 경찰청의 고순대 감사결과에 대해 대체로 정확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상납관행이 이미 오래전부터 답습돼 왔기 때문에 수사 기준시점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A씨는 자신이 근무할 당시에는 순찰차 1대당 월 40만원씩 돈을 거뒀다고 증언했다.
10만원은 대장·부대장 상납용으로 나머지 30만원은 경찰청 감사에서 드러난 대로 여직원 급여보조와 기타 사무실 경비로 쓰고 내근직원에 대한 배려로 작용했다는 것.
순찰차는 2인 1조로 근무조가 편성되기 때문에 대원 1인당 한달에 20만원을 각출하는 셈이다.
현재 고순대 제10지구대 소속 순찰차는 모두 16대로 A씨의 말대로라면 한달에 640만원씩 비자금이 모아진다고 할 수 있다.

순찰대원은 하루 일하고 하루쉬는 24시간 맞교대제로 근무한다.
매일 아침 9시에 고속도로상에서 근무교대가 이루어진다.
중부고순대의 경우 서울 하남에서 청원 남이분기점에 이르는 117km가 근무 구간이다.
따라서 1일 8대의 순찰차가 15km에서 18km까지 정해진 담당구역을 맡게 된다.
고속도로상에서 하루 종일 근무하다보면 심신이 피곤하지만 서류업무가 별로 없어 잡다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하루씩 건너서 쉴 수 있는 것도 적지않은 매력이다.

알뜰하게 모아 상납한다?
순찰대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본청의 암행감찰반이다.
어느날 갑자기 일반 승용차로 고속도로상에 나타나 방금 전 단속을 당한 자동차를 뒤쫓아가 사실조사를 벌인다.

지난해 12월에는 이러한 암행 감찰에 적발돼 같은 조였던 2명의 대원이 해직처분 당하기도 했다.
당시 한명은 전방에서 과속 차량에 대해 정지신호를 주었고 100여m 후방에서 다른 직원이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감찰반이 단속차량을 뒤쫓아가 스티커 발부여부를 확인하자 돈을 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전방에서 정지신호를 보냈던 대원은 “나는 금품수수 사실을 전혀 몰랐다” 며 해임의 부당성를 내세워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본청의 감찰반을 피하기위해 순찰대원들 사이에는 오전에는 상행선에서 오후에는 하행선에서 근무하는 풍조가 생기기도 했다.
유능한 순찰대장은 본청의 감찰정보를 일찍 입수해 직원들의 근무상태를 미리 챙겨주기도 한다.
간부직원들의 사전정보력에 따라 대원들의 근무여건이 뒤바뀌는 셈이다.

심지어 특수신문의 기자 신분을 내세운 모씨는 중부고순대에 악명을 떨치던 인물이었다.
툭하면 카메라를 들이대고 순찰대원들의 근무현장에 나타나 간섭을 한다.
대원들은 모씨의 차량이 지나가면 서로 무전연락을 통해 경계경보(?)를 내렸고 몇만원씩 돈을 건네준 대원도 있었다.

결국 참다 못한 한 대원이 모씨를 지구대 사무실로 끌고가 공갈범으로 의법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다음부터 발길을 끊었다고.

운송회사 등 상납고리는 끊겨
순찰대원들이 감찰반이나 언론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일단 적발되거나 사진촬영되면 꼼짝없이 옷을 벗기 때문이다.

고순대 초창기에는 고속도로 운행량이 많은 운송업체에서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지정병원·자동차 정비업소 등에서도 'give and take'가 이루어졌지만 해당 업소가 많이 늘어난데다 정기상납의 경우 보안상 문제점 때문에 오래전에 없어졌다는 것.
다만 사고현장에 견인차가 다수 출동할 경우 차량 수습을 해주면 3만원가량 밥값으로 찔러주기도 한다.
또한 운전자가 타이어펑크, 배터리 방전등으로 도움 요청할 때 거들어주면 고마운 인사로 돈을 건네주기도 한다.

A씨는 뿌리깊은 상납구조에 대해 “고순대 뿐만이 아니고 일반서 교통단속 직원들도 공통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상급자들의 무언의 요구와 조직 관행 때문에 별 수없이 운전자들의 돈을 받아야 한다.
또 내근직원과 회식을 하면 계산은 당연히 우리 몫이다.
물론 모든 이유를 상납구조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말그대로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지 않겠는가?"

A씨는 이번 중징계 파동을 계기로 고순대 뿐만아니라 교통경찰의 해묵은 관행들이 정리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