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문화재 수집가 / 오성환 씨

안중근의사 흉상·친필 현판 등 저당
보훈처의 석연찮은 흠집잡기 ‘야속’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화재 수집에 나선 동기는 무엇인가.
“20여년전에 청주에서 제재소를 했었는데 우연히 ‘日本 大海戰史’ 라는 책을 보다가 청 · 일 전쟁 당시 은화를 가득 실은 상선이 경기도 웅진군 울도 앞바다에 침몰했다는 얘기를 잃고 현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당시 淸軍의 유골 수백구가 묻혀있는 사실을 알고 88년 우리 정부의 허가를 받아 중국의 조자양과 등소평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후 유골송환 작업을 추진하면서 90년 처음으로 중국에 들어갔고 안중근의사를 비롯한 애국열사들의 발자취를 찾아나서게 됐다”
그동안 안중근의사 친필 현판이나 김구 선생이 소장했던 안의사 흉상등 상당히 희귀한 유물들을 찾아냈는데, 이후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정말 안타깝고 부끄러운 심정이지만 사실대로 밝히겠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 해체 구조물을 들여오느라고 상당한 돈을 빌려썼다. 그동안 가족들이 나 때문에 무진 고생을 많이 했고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어서 차마 팔진 못하고 1억여원에 저당을 잡힌 셈이다.

당초 중국정부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임정청사 자재에 대해 어렵게 한국반출을 허용한 것인데 인천세관에서 3년이 넘게 묶여있다보니 내가 다시 중국에서 활동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버렸다”
-반입해온 임정청사 자재에 대해 더 이상의 고증으로 확보한 자료는 없는가. 앞으로 복원계획의 전망은 어떠한가.

“4호 청사인 보창로 329호는 89년도에 정부부처 합동조사반이 현장 확인했고 당시 조사결과를 근거로 독립기념관에서는 89년 9월호 소식지 표지에 4호 청사 사진을 게재하고 ‘상해임시정부 청사 (1919~1923)로 현재는 백화점으로 변해있다’ 고 설명까지 붙인 사실이 있다.

그런데 내가 개인 자격으로 느닺없이 임정청사 자재를 들여오니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한 보훈처에서 뒤늦게 흠집잡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에서 끝내 외면한다면 뜻있는 독지가를 찾아서 민간차원의 복원사업를 추진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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