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어디냐 따지면 호모에렉투스가 웃을 일
연탄 시오야키로 시작…간장물·대패고기까지

연중기획-청주삼겹살(1)

사진/육성준 기자.

청주삼겹살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미리 밝히지만 삼겹살엔 원조가 없다. 삼겹살은 재료일 뿐이고 돼지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불을 갖게 된 그때부터다. 그래도 ‘청주삼겹살’은 있다. 청주삼겹살의 전단계인 ‘시오야키’로부터 ‘대패고기, 간장소스, 파절이’ 등 세 개의 키워드로 대변할 수 있는 근현대의 청주삼겹살, 그리고 오늘날의 생고기까지 청주삼겹살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시작한다.

청주가 삼겹살의 도시가 될 판이다. 청주 구도심 상권을 대표하는 서문시장에 ‘삼겹살거리’를 조성하는 등 청주시가 의도적으로 삼겹살 띄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 청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무엇인가를 놓고 그동안 치열한 논란이 있었다. 2006년 12월 결국 청주시가 청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공식 확정한 음식은 ‘청주한정식(淸州韓定食)’이었다.

1년여의 공식연구를 거친 청주한정식의 상차림은 다음과 같다. 1단계 입맛을 돋우기 위한 음식으로 죽과 메밀전병이, 2단계 본격적인 요리로 더덕구이, 각종(버섯·깻잎·고구마) 튀김, 소갈비찜, 삼겹살요리, 녹두빈대떡을 포함한 삼색전, 버섯요리 등이 상에 오른다. 3단계 밑반찬으로는 물김치, 도토리묵요리, 깻잎장아찌, 풋고추멸치조림, 생채나물, 산나물, 배추김치, 올갱이(다슬기)요리 등이, 4단계 후식으로 식혜와 과일 등이 제공된다.

차라리 청주정식이라고 이름을 짓지 못하고 청주와 정식 사이에 굳이 ‘한(韓)’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을 보면 자신이 없기는 없었나보다. 한정식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나 있는 정찬을 일컬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20가지 요리와 반찬이 단체로 청주의 대표음식이 됐을까? 독보적인 청주음식은 없는 걸까? 당시 후보로 거론됐던 올갱이와 삼겹살요리는 청주한정식을 구성하는 요소에 그치고 말았으니….

삼겹살은 재료, 요리가 아니다

사실 삼겹살은 요리의 재료일 뿐이다. 삼겹살 자체가 요리는 아니다. 삼겹살 조림이 됐든 삼겹살 구이가 됐든 조리방식이 추가돼야 비로소 요리다. 나아가 단순한 삼겹살 구이가 청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특히 ‘청주가 원조(元祖)’라는 주장은 청주사람들끼리만 통하는 얘기일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요리의 시작은 인간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봐도 무방하다. 삼겹살 구이를 포함한 모든 돼지고기 구이는 탕수육과 다르다. 탕수육은 돼지 또는 소고기를 잘라 녹말을 묻혀 튀긴 뒤 식초, 간장, 설탕, 야채, 전분 등을 끓여서 만든 소스를 부어먹는 요리다.

이에 반해 돼지고기 구이는 굽는 연료가 무엇인가, 소금을 뿌려 굽는가 아니면 구운 뒤에 소금에 찍어먹는가 등의 사소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삼겹살 구이 혹은 돼지고기 구이의 원조가 청주라고 우긴다면 50만년 전의 베이징인, 즉 호모에렉투스가 웃을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이라는 부위를 특화시켜 음식의 재료로 부각시킨 지역도 불행히 청주가 아닌 것 같다. 예로부터 장사수완이 좋던 개성상인들이 흔히 비계 또는 살코기로만 구분하는 돼지고기 가운데 비계와 살코기가 연달아 겹쳐있는 갈비 아래 뱃살을 특화시켰고, 육질개량까지 했다는 것이다.

축산문화연구가 전성수씨는 월간지 미트저널에 연재한 글에서 “개성상인들은 돼지의 살코기에 그냥 비곗덩어리가 붙어있게 돼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비계 끝에 다시 살이 생기고 또 그 끝에 비계가 붙게 하는 식으로 비계와 살이 번갈아가며 결이 지도록 육질을 개량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경기지역 맛집 중에 개성이라는 상호가 들어간 숯불구이나 불고기집이 유난히 많이 검색된다. 이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청주는 삼겹살과 관련해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다.

▲ 마땅한 대표 음식이 없는 청주는 한정식을 내세웠다. 반면 전국적으로 보편적 음식인 비빔밥은 전주가 원조인것처럼 각인됐다. 전주비빔밥은 육회와 콩나물 등 재료에서 차이를 보인다.왼쪽은 전라북도가 발간한 ‘전북의 재발견’ 오른쪽은 청주시가 내세우고 있는 ‘맛3선’.
전주의 잘난 척에 ‘할 말이 없다’

오히려 다행이다. 감히 어느 고을이 삼겹살에 대한 원조를 주장할 것인가. 청주가 삼겹살의 원조임을 입증할 책임도 면책됐다고 생각하자. 대신에 청주삼겹살과 다른 지역의 삼겹살 요리에 차이점을 찾아내 이를 ‘스토리텔링’하면 그만이다.

‘전주비빔밥’이 그 좋은 예다. 비빔밥의 원조는 전주가 아니다. 비빔밥은 우리나라 전역의 보편적인 음식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도 “비빔밥은 밥에 여러 가지 나물을 넣어 비벼 먹는 음식으로 전국 어디서나 즐겨먹는 음식이다. 각 지역 특산물이 재료로 사용되면서 지역별로 특색 있게 발전됐다”고 나온다.

그럼에도 백과사전은 “전주비빔밥이 유명하다”면서 전주비빔밥의 차별성을 소개하는데 상당한 부분을 할애한다. 전주비빔밥은 인근 임실에서 생산하는 쥐눈이콩으로 재배한 콩나물과 소고기 육회가 맛의 비결이라는 것. 이밖에 쇠머리를 고아서 낸 육수로 밥을 짓고, 달걀노른자는 날 것으로 사용하고 콩나물국과 함께 먹는다.

이쯤 되면 그냥 비빔밥과 전주비빔밥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파해야하는 것은 전주비빔밥의 맛과 유명세가 이미 비빔밥을 집어삼켰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비빔밥을 전주의 요리로 알고, 전주식 비빔밥을 먹어야 제대로 된 비빔밥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2008년 11월 전라북도가 발행한 <전북의 재발견> 중 ‘맛’편에는 ‘전주음식에는 게미가 있다’는 글이 있다. ‘게미’는 이른바 ‘손맛’의 전라도식 표현이다. 책은 “전주비빔밥, 전주콩나물국밥, 전주백반, 전주한정식, 전주돌솥밥, 전주오모가리탕, 전주막걸리 등은 그 이름만으로도 전주의 상징이 되어 있으며 이름 앞에 ‘전주’라는 글자가 들어가야 제 맛을 낸다”고 자랑한다. 이렇게 잘난 척을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


▲ 삼겹살의 원조는 없다. 그러나 청주삼겹살은 냉동고기, 간장소스, 파절이 등이 다른지역 삼겹살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원조논쟁 말고 청주삼겹살은?

삼겹살에 있어서 원조논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은 정리가 됐다손 치더라도 청주삼겹살 혹은 청주지역의 돼지고기 구이에 대한 근대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은 청주삼겹살 스토리텔링의 시작이 될 것이다.
2012년 들어 청주 서문시장에 삼겹살거리 조성을 본격화하고 있는 청주시도 2월13일부터 ‘청주삼겹살스토리텔링’ 공모에 들어갔다.

청주시가 시작단계에서 수집한 제보 가운데 하나는 “정육점에서만 고기를 살 수 있었던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 초에 고 박래봉씨가 옛 사직동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 열었던 ‘황해식당’이 청주삼겹살의 원조”라는 김종인(66)씨의 증언이다.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남문로 현 청주약국 인근에서 성업했던 ‘딸네집’ ‘만수네집’이 그 효시라는 제보도 있다. 이후 옛 서문동 고속버스터미널 부근, 현재의 지하상가 입구에 있던 고속주점으로 말미암아 청주삼겹살이 널리 퍼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가운데 딸네집이 청주삼겹살의 시초라는 주장은 충북 최초의 사진기자인 김운기 전 충청일보 국장의 증언을 바탕으로 필자가 2010년 시전문계간지 <딩아돌하> 여름호에 기고한 ‘오래된 풍경-청주성안길 40년을 걷다’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정확히 말하면 딸네집의 메뉴는 삼겹살이 아니라 돼지고기 소금구이, 즉 ‘시오야키’였다. <딩아돌하>의 기고문 가운데 딸네집이 등장하는 부분은 “청주약국에서 오성당 쪽으로는 식당이 즐비했다. 국밥을 파는 명랑식당이 유명했고, 연탄불에 돼지고기를 굽는 이른바 시오야키(しおやき·鹽燒)는 딸네집이 전국에서도 원조였다.”는 것이다.

김 전 국장에게 딸네집에 대해 더 물어보았다. 김 전 국장은 “청주약국에서 신약국, 오성당 방향으로 네 번째쯤에 딸네집이 있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말에 문을 열어 1970년을 전후해 문을 닫았던 것 같다. 피난민들이 청주에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청주 시오야키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김 전 국장은 또 “두껍게 썬 돼지고기에 굵은 소금을 뿌려 연탄불에 굽는 방식이었다. 당시엔 돼지를 한 두 마리씩 키우는 집이 많았다. 우리도 모충동에서 살면서 돼지를 키웠는데 딸네집 진씨와 거래했다. 진씨는 키가 크고 배가 나왔으며 건장했다”고 덧붙였다.

일본말인 시오야키는 사실 소금구이로 순화해야한다. 도시락보다는 벤토, 바지 대신 쓰봉, 단무지보다 다쿠앙이 더 자연스럽던 시절에 쓰던 말이다. 이 글은 기록의 차원에서 시오야키를 그대로 사용했다.

대패고기, 간장소스, 파절이

시오야키 즉 소금구이가 아니라 지금과 같은 삼겹살 구이가 보편화된 시점은 1980년 전후로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지금은 생삼겹이 대접을 받지만 당시에는 냉동삼겹살이 대세였다. 고기를 냉장 유통할 만큼 육류 소비도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냉동삼겹살은 썰기도 편해서 최대한 얇게 썰수록 양도 많아 보이기 마련이었다. 얇은 삼겹살의 장점은 하나 더 있다. 손님은 빨리 익어서 좋고 주인은 먹는 속도가 빠르니 좋았다. 그래서 얇게 썬 냉동삼겹살을 대패로 깎아낸 ‘대팻밥’ 같다고 대패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주삼겹살의 첫 번째 키워드는 그래서 ‘대패고기’다.

두 번째 키워드는 간장소스다. 소스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고기를 구운 뒤에 찍어먹는 장류(醬類)를 일컫는 것이지만 청주삼겹살의 간장소스는 고기가 불판 위에 오르기 전에 몸(?)을 적시는 간장물이다. 청주 성안길에서 32년째 냉동삼겹살집 대운불고기를 운영하고 있는 박재희(64)씨는 “간과 맛을 내기 위해서 간장소스에 미리 담그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간장을 물로 희석한 게 아니다. 소스를 만드는 비법이 있다”고만 말할 뿐 재료를 밝히지는 않았다.

청주삼겹살의 세 번째 키워드는 새콤달콤하면서도 혀끝에서 아린 ‘파절이’다. 충북이 아닌 타 지역에서 삼겹살을 먹어본 사람은 파절이의 부재를 절감하게 된다. 타 지역에서는 파절이 대신 부추, 채 썬 양배추 등이 나오거나 파절이가 나오더라도 식초에 숨이 죽지 않은 무침 수준이다.

청주 파절이에 대해서는 인터넷 청주시지(淸州市誌) 격인 <디지털청주문화대전>에도 언급이 되고 있다. 해당 사이트 ‘식생활’ 편에는 “청주는 오래전부터 삼겹살을 연탄불에 구워 먹었는데, 특히 새콤달콤하게 만든 파절이는 청주에서부터 삼겹살과 함께 먹어왔던 음식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쯤 되니 고기보다 파절이가 더 유명한 집이 있을 정도다. 마니아들은 불판 위에 대패고기와 추가 주문한 파절이를 한데 올리고 두루치기를 요리하듯 고기를 굽는다.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봉용불고기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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