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맥주, 백학소주 인수

지분71%인수…사실상 경영 ․ 소유권 장악
40년 향토업체 대기업 흡수에 지역민 ‘허탈’

지난주 조선맥주가 충북의 소주업체인 백학소주를 인수키로 한 것에 대해 지역은 물론 전 주류업계가 적잖은 충격속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실질적 기업합병(M&A)으로 볼 수 있는 조선맥주의 백학소주 인수는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관점은 조선맥주의 백학 소주 인수로 인해 백학소주가 그 동안 지역에서 누려온 지위, 즉 정체성에 결정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 데 대한 것이고 다른 관점은 이 사건이 주류업계에 시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과 연관 돼 있다.

지난주 언론에 일제히 보도된 바에 따르면 하이트맥주로 일약 맥주시장에서 1위 기업으로 부상한 조선맥주는 부산의 대선소주가 갖고있던 25% 지분을 포함해 백학소주의 총지분중 70%까지 인수키로 양사가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백학소주의 지분이 30%로 축소되게 됐다는 것으로 조선맥주가 백학소주의 소유권및 경영권을 완전장악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점에서 지역은 메이저 주류회사에 의한 백학소주의 흡수에 대해 충격과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백학소주는 지난 1957년 청주시 북문로 2가 67번지에서 합자 회사 대양상사의 이름으로 소주 제조를 시작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40년동안 애주가는 물론 지역주민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잡아 왔다.

이처럼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 온 백학소주가 흡수 인수된 데 대해 충격과 아쉬움을 나타내는 지역의 정서반응은 그런 측면에서 당연하다. 한 경제인은 “충북에 대표적인 향토기업이 지금 얼마나 되느냐”며 “그나마 몇 안되는 향토기업중 주민정서 깊숙한 곳에 애정의 대상으로 남아있던 백학소주가 외지의 대주류업체에 의해 흡수된데 대해 말 할 수 없는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럼 백학소주의 이같은 운명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했나. 백학 소주, 더 나아가 각 지역 소주업체의 운명은 이미 지난해말 바람 앞의 촛불같이 무방비상태에서 들판에 내몰린 처지가 되면서 어느정도 예견됐다고 할 수 있다.
지역소주업계에 지각변동을 예고한 사건은 지난해말 법정에서 이뤄졌다. 헌법재판소가 지역소주의 의무구입(50%이상)규정을 둔 지방주보호육성관련 법안에 대해 헌법정신과 위배된다며 위헌판결을 내린 것이다.

문제의 이 규정은 당초 지역경제의 유지 및 거대 주류업체와의 공정경쟁이 불가능한 지방소주업체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제정돼 운영돼 왔었다. 하지만 헌재에 의해 지방소주업체의 보호막이 되어주던 이 조항이 위헌판결로 벗겨지면서 지방군소 소주업체들은 대기업의 인수대상 목표물로 떠올랐고 헌재의 위헌판결 1년도 안돼 이미 강원도 경월소주(두산그룹 인수)와 전북의 보배소주(조선맥주 인수)가 백학소주에 앞서 흡수되는 운명을 맞았다.

백학소주의 박명현사장은 이에 대해 헌재판결이후 생존을 위한 자본제휴등을 모색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조선맥주와의 협상이 시작됐지만 구체적인 조건들에서 합의가 늦어져 시일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초 같은 처지의 지방업체인 부산의 대선측에 25%를 지분을 양도, 양사의 협업체제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 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부분에 대해 박사장은 “대자본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정글같은 시장환경에서 지방의 군소업체들이 버텨내기는 난망한 노릇”이라며 “어쨌든 경월이나 보배처럼 백학인 100%흡수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최소한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있는 부분”이라고 자위했다.

맥주업계에서 만년 2위를 차지하다가 하이트라는 단일브랜드의 대성공으로 두산그룹의 동양맺구와 진로 카스맥주를 누르고 정상에 오른 조선맥주. 맥주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자신감과 탄력을 얻은 조선맥주가 이번에 전북보배소주에 이어 백학소주를 인수한 것은 관련업계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류업계의 이전투구식 경쟁구도는 노태우정권때 시작됐다. 그전까지는 소주 맥주 양주 등 주종별 구분이 면허제한을 통해 엄격하게 이뤄져왔다. 그러나 노정권이 소주업체인 진로에 정치자금 수수 대가로 맥주생산면허를 내주면서 주류업계간 경쟁은 주종간 경계가 허물어지게 됐고 무차별적이고 살벌한 생존투쟁의 양상을 부채질하게 됐다. 이로인해 ‘너죽고 나살자’를 넘어 ‘누가 끝까지 남는가 해보자’식의 출혈경쟁이 계속되면서 누적적자로 두산그룹과 진로그룹이 쓰러지거나 일대타격을 입는 사태를 빚었다. 업계 추산으로는 OB의 경우 지난 해만해도 적자가 1천억원이 넘고 누적적자는 4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따라 어느정도 우열이 드러난 맥주시장에서의 출혈경쟁은 일단락되고 제2의 대회전이 소주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바로 이같은 흐름속에서 조선맥주의 잇딴 지방소주업체 인수는 이해될 수 있다는 것.
이에따라 주류업계에서는 “주류업계의 패자(覇者)는 누구냐하는 최후의 대승부가 소주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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