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 오는 속담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습니다. 새벽에 닭이 우는 것은 수컷의 몫일진대 감히 암컷이 수컷노릇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고약한 말의 어원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서경(書經)’에 있습니다. 武王曰 古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鳴 惟家之索(무왕왈 고유언왈 빈계무신 빈계지명 유가지삭). 뜻인즉슨 “무왕이 가라사대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말에 암탉은 아침이 없다고 하였거늘 만약에 암탉이 아침이 온 것을 알고서 운다면 그 집안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춘추시대의 글이니까 2천 여 년 전의 일이겠는데 남녀 차별이 엄격하던 때임에도 그런 경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사회에도 남성을 능가하는 대가 센 여인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됩니다. 사실이 어떠하든 ‘암탉론’은 여성을 천시하고 비하하는 모욕적인 글임이 분명합니다.

1996년 봄 방한해 청주에 강연 차 왔던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 비트(John Naisbitt)는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의 21세기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두드러진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바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남녀평등사상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유교 사상이 온존하고있는 한국에서도 여성의 높은 교육열, 서구문화의 유입 등으로 여성의 사회적 입지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예견은 적중하고 있습니다.

근년에 와 우리 사회 여성들의 지위는 괄목할 만큼 성장했습니다. 남녀 평등, 양성평등은 이미 여성운동가들의 구호만이 아닌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가 되고있으며 그에 따른 각분야에서의 여성들의 활약상은 눈부시게 커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하지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성이기에 집안에서 아이나 낳고 살림이나하던 시대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젊은 여성들은 금기의 벽을 깨고 남성들의 영역에 도전하고있습니다. 사관학교에 들어가 전투기 조종사도 되고 전투함의 기관사도 될 만큼 남성들과 어깨를 같이 합니다. 어느 분야이건 여성이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심지어 사각(四角)의 링에서 혈전마저 벌일 정도이니까요.

4,15총선을 눈앞에 두고 요즘 여성들의 활약상이 대단합니다. 대통령을 탄핵한 두 야당에서는 지지도가 폭락하자 여성이 나서서 선거를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대변인들마저 여야 3당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여성들이 발탁돼 날마다 날카로운 공방전을 벌입니다. 거기다 각 당의 전국구후보도 절반이 여성에게 돌아가 있으니 정치 판의 우먼파워는 가히 폭풍수준입니다. ‘화초’역할이나 하던 지난날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동서양을 통틀어 우리 나라처럼 여성을 천시하는 나라는 드뭅니다. 핀란드 같은 나라는 대통령도 여성이요, 국회의장도 여성입니다. 아일랜드는 여성이 연이어 대통령으로 당선돼 재임중이며 뉴질랜드도 여성이 총리입니다. 아시아에서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 등 여러 나라에서 여성이 멋지게 대통령을 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각료의 절반이 여성이고 의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나라에서는 남녀평등이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나라 국회의 여성비율은 5,5%에 불과하니 여성의 사회적 입지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줍니다. 중국이 유교의 종주국이지만 오늘 날 여성을 천시하는 풍조는 없습니다. 아니, 천시는커녕 거꾸로 여존남비가 사회의 통념입니다.

이제 17대 국회는 여성들의 대거 등장으로 ‘꽃밭’이 될지도 모릅니다. 욕설이 난무하던 쓰레기 같은 정치 판이 여성들로 하여 ‘꽃밭’으로 정화된다면 그야말로 좋은 일입니다. 적어도 남성들처럼 학연, 지연으로 편가르고 차 떼기로 부패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바야흐로 봄, 이제 곧 썩은 정치 판에 향기로운 새바람이 불 것입니다. 그와 함께 암탉 우는소리가 가득하겠지요.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암탉이여, 울어라. 크게, 크게, 더 크게.”
                                                                                                       <본사고문>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