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국장

지난 설날, 서울 신세계백화점 앞에 차례상이 차려졌다. 명절에도 못 쉬는 백화점, 대형마트 직원들이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설날과 추석 당일, 1년에 딱 두 번 쉬었던 대형마트들이 지난 설날에는 모두 정상영업을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불경기인데다가 업체 간 매출 경쟁이 극심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10년간, 전통시장 매출액이 반토막나는 상황은 있었을지언정, 대형마트나 SSM의 매출액이 떨어진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해 12월 30일, 유통산업발전법(일명 유통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장·군수·구청장은 대규모점포등(대형마트, SSM)의 영업시간을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의 범위에서 제한하고, 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의 범위에서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필요한 사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도록 했다.

이 틈을 타, 지난 2월 1일 롯데마트 청주점·충주점이 영업시간을 두 시간 연장하려다 하룻만에 취소한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 이와 관련해 보도자료를 냈던 충북경실련에 롯데 본사 홍보팀이 전화를 걸어왔다. “영업시간 연장 보도는 사실과 다릅니다. 일부 점포에서 ‘검토중’인 사안입니다.”

어라? 그러면 아침에 문의했을 때 직원이 “2월 1일부터 영업시간이 연장됐습니다.”라고 한 말은 거짓말인가? 홈페이지에도 검토 중인 내용을 띄웠단 말인가? 그제서야 말을 바꾼다. “오늘 지침을 내려서 연장 영업 하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 “아, 그럼 아침에 1시간 일찍 문을 연 건 사실이네요.” “ …. 죄송하구요, 민감한 시점이므로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영업시간을 연장하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 말이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가 과연 영업시간 제한이라 볼 수 있나? 24시간 영업을 하는 홈플러스 청주점을 제외하고는, 충북내 대형마트들은 대부분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10~12시 사이에 닫는다.

대기업 SSM도 오전 8시에 문을 여는 곳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정 유통법에 따르면, 월 1~2회 휴무를 메우기 위해 합법적으로 연장영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하고, 근로자의 건강권 및 대규모점포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해서’라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실제로는 더 열악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이같은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고, 영업이익을 생각할 때 차라리 과태료(3천만원 이하)를 무는 편이 더 낫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지금껏 아무런 제한 없이 영업해온 대기업 유통회사들로서는 그 정도의 리액션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유통법엔 더 많은 규제가 담겨야 한다. 대규모 점포 등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을 보다 확대해야 하고, 현재 제외된 ‘농수산물의 매출액 비중 51% 이상인 대규모 점포 등’(농협 하나로클럽, 하나로마트)도 포함시켜야 한다.

지역 여건에 따라 영업품목도 제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야말로 중소유통업과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등록제가 아니라 허가제를 도입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이렇게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못하고 있다. 대기업이 골목상권마저 집어삼키도록 내버려두고는, 몇 개 되지도 않는 재벌 빵집을 거론하며 변죽만 울리고 있다. 이제 한미FTA마저 밀려온다. 지푸라기처럼 남아 있는 유통법, 상생법마저 무효화되도록 놔둘 것인가?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