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건(대성여상 교사)

‘5,9,15,20,38,?? 그 다음 숫자가 얼마였더라?’
잠에서 깨자마자 누운 채로 흐릿한 눈을 열심히 손으로 비비면서 꿈에서 본 숫자를 되짚어 본다. 분명 꿈에서는 6개의 숫자가 다 보였건만 아침에 눈을 뜨고 그 숫자를 상기할려고 하니 마지막 숫자가 영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건 틀림없이 1등 번호야. 전에 1등한 사람도 이렇게 숫자가 보였다는데, 그런데 마지막숫자가?’ 숫자와 씨름하는 사이에 어느덧 비몽사몽에서 현실로 눈이 돌아온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온 순간 ‘꿈에 숫자가 보일정도면 이건 틀림없는 로또 중후군이라고 하던데…’. 사실 나는 로또를 서너달에 한번 정도 그리고 2000원 짜리 한장만 산다. 딱히 사는 날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날 따라 기분이 좀 이상하리 만큼 좋다던지 아니면 꿈에 貴人(?)을 만났을 때 사는 정도다.

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런 꿈을 꾸는 것도 아마도 내가 꿈꾸기 전날 로또에 대해서 무의식적이던 의식적이던 그에 대한 욕망이 컸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학창시절 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시험보기 전날과 성적이 나오기 전날 어김없이 꿈에 그 시험이 나타나고, 컴퓨터를 만지게 된 뒤로 그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서 그것을 해결하려다가 결국은 그 해법을 찾지 못한 날은 영락없이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꿈을 꾸곤 하였는데 어느 새 나의 맘 한 구석엔 슬그머니 로또가 자리를 잡고 드디어 이젠 꿈에 숫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로또를 사는 것은 당첨됐을 때 일확천금이 두 손에 쥐어지는 것 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다. 로또를 구입하고 그 로또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지갑에 고이 간직하고 발표하는 시각 직전까지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기대감에 부풀어 무료한 일상에 간만에 긴장감을 찾는다. 또  가장 당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우 이웃을 돕는 의인으로 자처하고 싶어하니 이는 로또에 대한 허황된 꿈과 꾸는 것이 아니다. 자주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 속에 자리잡은 망상들을 확일 할 뿐이다. 헛된 꿈에 젖어 많은 돈을 로또 사는데 탕진하는 것도 아니니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꿈에 본 숫자들을 현실로 옮긴후 그 숫자 역시 전과 다름없는 몽상이라는 것을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그 몽상과 현실을 오가는 꿈에서 깨어 날 시간이 된거 같다. 그 보기 어렵다는 귀인들을 만나보고 그래서 1등이 된 것 같은 기분까지 누려 봤으니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전국에 로또 열풍이 불었을 때 서민들은 누구나 당첨되는 상상을 하며 다른 미래를 설계했을 것이다. 현재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더욱이 경기 침체가 장기화돼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각했다. 그러나 아직도 로또의 꿈에 젖어 있다면 그 허황된 꿈 속에서 깨어나 현실을 헤쳐나가는 소박한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나도 차디찬 물로 세수를 한 후 오늘도 내 일에 충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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