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나무 삶아 한지 만드는 전과정 볼 수 있어····복합문화공간 준비 중

▲ 마불갤러리에는 볼 게 많다. 직접 닥나무를 심어 한지를 생산하는 이종국 작가는 한지등, 그릇, 부채, 엽서, 장식품, 액세서리 등과 작품을 만든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의중학교 앞 골목 주택가에 범상치 않은 건물이 하나 있다. 그동안 파격적인 건물을 많이 지은 건축가 조항선 씨 작품이다. 누드 콘크리트 건축물에 담쟁이가 타고 올라가 언뜻봐도 문화냄새가 난다. ‘마불갤러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예술적이다. 거기에 재미있기까지 하다. 이 곳은 ‘마불’이라 불리는 한지작가 이종국 씨와 ‘메루’라 불리는 명상가 이경옥 씨가 함께 사는 공간이다.

이종국 씨는 문의면 소전리 벌랏마을에서 우리고유의 종이인 한지를 되살려낸 사람. 거기서 한지 원료인 닥나무를 키운다. 그 곳에 시골집이 있으나 요즘에는 갤러리 2층에서 생활하고 작업도 한다. 갤러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 1층에는 작가의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찬 전시실과 차 마시며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널찍한 책상에 작품들이 늘어서 있어 이것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름등, 그릇, 부채, 나비 등과 각종 액세서리까지. 모두 한지로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개 눈이 휘둥그레진다.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 문의중학교 앞 골목에 있는 마불갤러리

부인 이경옥 씨는 여기에 아트북과 아트상품, 수제커피 등을 파는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모 업체에서 이 씨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문화상품을 개발하자는 제안을 해 현재 아트북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커피는 부인 이 씨가 솜씨를 발휘해 선보이려고 준비중. 그는 얼마전 인도에서 사왔다는 커피를 갈아 향기로운 차를 대접했다. 커피 한 잔에 몸과 마음이 따뜻해졌다.

한지등
2층에는 닥나무를 삶고 두드리고 한지를 만들 수 있는 작업실이 있고, 가족들이 생활하는 방이 있다. 작가를 따라 2층에 올라갔다. 닥나무를 삶는 공간, 각종 연장이 널려 있는 작업실, 앉아서 작품을 만드는 방이 있었다. 보일러를 때는 방은 따뜻했다. 건물 전체를 덥히는 데는 많은 난방비가 든다고 했다. 독특한 구조의 건물은 나무를 그대로 살려 2층에서 내려다 보면 한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두 부부는 1층 실외공간에 일반인들이 한지를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에는 문광부가 주최한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종

2층에서 내려다본 모습. 나무를 그대로 살려 여름에는 녹음을 자랑한다.
이뜨고, 그림그리고, 씨뿌리기’ 수업을 여기서 해냈다. 부인 이 씨는 “이 갤러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한지만들기 체험외에 인도명상 프로그램을 개설해 주변사람들과 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동·서양, 전통·현대, 정신과 물질이 어우러진 공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어차피 현재는 융합의 시대 아닌가. 이종국 씨의 한지와 부인 이 씨의 명상세계가 만나면 이 갤러리에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생길지 잔뜩 기대가 된다.

이종국, 한지작가로 국내외 명성
부인 이경옥, 명상하면서 책 다수 번역

▲ 이경옥(왼쪽) 이종국 씨 부부

한지작가 이종국 씨가 독특한 작품으로 외국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지난해만 독일 세계민속박물관,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리토스시에서 기획초대전을 했고 올해도 미국·독일·태국 전시가 잡혀 있다. 태국 전시는 마불갤러리를 다녀갔던 태국왕립대 교수가 추진중. 독일 세계민속박물관에는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미술을 전공한 이 씨는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하다 자유롭기 위해 강원도로 들어갔다. 거기서 움막을 짓고 살다 지난 94년 문의면 소전리 벌랏마을로 이주했다. 그는 이 곳이 한지를 만들던 마을이라는 얘기를 듣고 한지 살리기에 나선다. 덕분에 벌랏마을은 한지체험마을로 지정됐고, 현재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닥나무를 키워 한지를 생산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마을사람들은 그게 되겠느냐고 냉소적으로 바라봤다. 수행하는 심정으로 한지를 만들고 작품을 만들었다.”

한지로 만든 새해 연하장
이 작가는 무엇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한지 만드는 과정에는 유희성이 풍부하고 오감이 살아있다. 서양은 캔버스처럼 보이는 것을 중시한다. 그런데 동양은 스미는 문화다. 먹이 한지에 스미는 것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한지를 서양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이것을 만들어보면 근원적인 물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한지는 어느 공간에나 어울리고, 뭐든지 만들 수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과정을 교육시켜 한지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한지 얘기를 끝없이 쏟아놓았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더라도 이 과정을 가능한 시연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외국인들이 감탄사를 연발한다고. 청주에서는 지난해 국제공예비엔날레 때 선보였다.

한지로 만든 단지
부인 이경옥 씨는 인도에서 명상과 요가를 공부하고 서울에서 명상센터를 운영했다. 우연히 벌랏마을에 들렀다가 이 씨와 인연이 돼서 결혼을 하고 눌러앉았다. 지난 2009년에는 남편과 ‘선우야, 바람보러 가자’라는 책을 펴냈다. 선우는 아들 이름. 지금은 이종국 씨 매니저가 돼 해외전시 준비와 통역 등 잡다한 일을 다 해낸다. 그동안 ‘42장경’ ‘그대 가슴 속에 꽃을 피워라’ ‘법의 연꽃’ 등 다수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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