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의 편집인

우리사회에 ‘짱’ 증후군이 불고 있다. 몸짱 다이어트짱 얼짱 맘짱 쌈짱 차짱... 이같은 ‘짱’ 열풍에는 이 시대의 주체할 수 없는 값싼 감성주의가 있다. 사물이나 사회현상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보다는 겉모습이나 상짚기호에 일차적 흥미를 기울이는 감각숭배 사회가 아니라면 ‘짱’ 열풍을 해석할 길이 곤란한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감성잉여 현상은 얼마전 한 여자 범죄자의 ‘예쁜’(?) 얼굴이 인터넷에 떠오르자마자 그를 ‘얼짱’ 스타로 부각시키는 ‘가치 아노미’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긴 ‘얼짱’을 위해서라면 성형을 밥먹듯 하는 사회고 보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그런데 우리를 진정 아연케 하는 것은 이처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감성주의, 감각적 상징에 몰입하는 현상이 정치권에서도 목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한솥밥을 먹던 열린 우리당과 민주당은 서로 헤어진 뒤 민주당의 오랜 상징색깔인 노란색 선점을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 게임은 노란색 점퍼를 먼저 ‘해 입은’ 열린 우리당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끝내 노란색에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민주당은 노랑 목도리를 만들어 냈다. 불법 정치자금의 똥물을 뒤집어 쓴 정당들이 국민에게 속죄한다는 명분을 내걸어 앞다퉈 창고와 천막행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창고 당사’ 상표를 우리당이 재빨리 선점하자, 부패원조 한나라당은 ‘천막 당사’란 기발한 유사상표를 흉내냈다. 두 정당은 평범함을 넘어 허름함을 상징하는 창고와 천막으로 수십 수백억 불법 자금의 추한 모습을 한뼘 철판과 천조각으로 덮으려는 기막힌 상징조작에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창고와 천막 앞엔 으리으리한 ‘차짱’(가장 좋은 차)들이 매일 즐비하게 주차돼 있다!

물론 상징활용이 나쁜 건만 아니다. 잘못된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보여주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론은 이런 것들이 결국은 4·15 총선에 올인하는 정치권의 퍼포먼스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정치권의 ‘보여주기’가 아닌 개혁과 역사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며, 이런 실천을 누가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주권자의 이성적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이념과 정책에서 제대로 분화돼 있지 않은 우리의 정당구조, 즉 미숙한 정치지형은 깊은 고민을 던져준다. 그런만큼 아직 아이덴티티가 확연하지 않은 열린 우리당에 대한 일방적 휩쓸림 현상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자신의 눈에 박혀있는 대들보 기둥은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든 장작만 뽑겠다며 무지막지하게 ‘탄핵’ 무기를 사용한 야당의 원죄에 가려버렸지만, 의사당 안에서 울고불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가 얼마 뒤 슬그머니 꼬리 내린 열린 우리당의 모습 역시 낯뜨거운 것이 틀림없다. 열린 우리당의 감성자극은 이를 생중계한 텔레비전 덕에 최고의 정치적 전리품을 안겨준 계기가 됐지만, 주권자인 국민이 이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회의의 과정을 거쳐 이성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고실업에 물가상승, 천문학적 가계 빚은 나몰라라 권력게임만 벌이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고달픈 삶 속의 서민들만 ‘잔인한 4월’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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