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쿠 슈스이의 <나는 사회주의자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공선>, 이소가야 스에지의 <우리 청춘의 조선>

소종민 (공부모임 책과글·인권연대 숨 회원)


“어떻게 조선을 구할 것인가. 정치가는 말하기를 우리들은 조선 독립을 위하여 예전에 청일전쟁을 감행했고, 또 러일전쟁을 개시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정치상으로 조선 구제를 실행한다고 거만하게 외치고 있다. … 이것을 한번 조선 국민의 입장에서 관찰해보라. … 오늘날의 조선은 틀림없이 ‘승리는 곧 정의’라는 야만적 국제 도덕의 희생에 다름없다.”(<경애하는 조선>, <주간 평민신문> 32, 1904년 6월 19일)

일본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나타난 심각한 빈부 격차와 노동 문제에 눈을 뜨면서 사회주의로 자신의 이념을 확립한 이래, 일본을 넘어 조선과 중국 지식인들에게 혁명 이념을 전파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자로 추앙받는 고토쿠 슈스이(辛德秋水, 1871~1911)의 말이다.

의열단의 창립 선언문 <조선혁명선언>을 쓴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28년 일제에 체포됐을 때 고토쿠 슈스이의 <장광설>을 읽고 아나키즘에 공명하게 됐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1911년 고토쿠 슈스이는 천황 암살을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대역사건’의 혐의로 11명의 동료와 함께 사형당했다.

“다들 아침에는 해뜨기 전의 어둠 속에서 작업장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곡괭이 날에 푸르스름한 달빛이 반사될 때까지 혹사당했다. 그들은 근처에 세워져 있는 감옥에서 일하고 있는 죄수들 쪽을 되려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다. 특히 조선인은 십장들에게 뿐만 아니라 똑같은 동료인 일본인 인부들에게까지도 ‘짓밟히는’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게 공선>, <戰旗> 1929년 5~6월호)

<게 공선>의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1903~1933)는 1903년 가난한 몰락농가에서 태어나 북해도의 오타루에서 자랐다. 끼니를 잇지 못한 살림 가운데서도 예술적 소양이 풍부했던 그는 1927년 오타루의 노동운동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주의 이념에 심취되었다. <1928년 3월 15일>, <게 공선>, <부재지주>등의 소설로 가장 주목받는 노동자 작가였던 그는, 1933년 사회주의 당 활동과 관련되어 경찰에 체포된 뒤 가혹한 고문 끝에 죽었다.

“… 북해도에서는 철도 침목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드러누운 노동자의 ‘사해(死骸)’였다. 축항 매립에는 각기병에 걸린 인부들이 산 채로 ‘히토바시라[人桂 : 난공사 때 제물로 바쳐진 사람]’처럼 매장되었다. 그들은 북해도의 ‘낙지’로 불린다. … 그 일은 교묘하게 ‘국가적 부원(富源)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치장되어 합리화되었다. ‘국가’를 위해 노동자는 ‘뱃속이 비고’, ‘맞아죽어’ 갔다.”(<게 공선>) 그의 이야기는 오늘, 다시 읽히고 있다.

21세의 나이로 군에 징집되어 함경북도 나남(羅南)에 2년간 근무하다가 흥남질소비료공장에 취직한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 1907~1997). 그는 태평양노동조합 사건에 연루되어 1932년 4월부터 1941년 11월까지, 9년 7개월을 조선의감옥에서 지냈다.

그는 모두 19년간 식민지 조선에 머물렀다. 1947년 고향인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평생 조선의 벗들과 산천을 그리다 1997년,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의 회고록 <우리 청춘의 조선>(1984)은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조선의 벗들과 나누었던 눈물어린 우정으로 가득하다.

“친애하는 동지여, 건강하십니까. 이번 운동에 나오면 내 셔츠와 동지의 것을 교환하고자 합니다. 운동할 때 내 셔츠를 동지의 운동장 담에 걸어 두겠습니다. 동지의 것도 같은 곳에 걸어 둬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동지의 것을 입겠습니다. 동지도 알고 있듯이 우리들은 그다지 멀지 않은 장래에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럼 동지여, 부디 안녕히. 이동선.”

“친애하는 동지여, 후의에 충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제발 내 일은 걱정하지 말아 주십시오. 동지의 친절만으로 내 가슴은 벅찹니다. 본래 나야말로 동지에게 뭔가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나에게는 무엇 하나 가진 게 없습니다. 이소가야.” 말라리아로 병동에서 생활하던 이소가야는 1936년 7월 20일, 이동선 등 조선의 독립을 꿈꾸었던 22명의 사형수가 무참히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소가야는 회고록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픈 마음으로 그들을 보내었다’고 적었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실천한 이들을 ‘사회주의 혁명가’라 이름 붙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신음하던 조선의 벗이자 형제였다. 이들이 나눠준, 피처럼 뜨거운 형제애를 오늘의 우리는 애써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류애적 나눔은 자본이나 권력, 이념보다도 더 순수하고 강력한 인간의 정념이기 때문이다.

신 간 소 개

사랑 그 설명할 수 없는
가격/ 1만4000원/ 율리아파이라노,산드라콘라트/ 쌤앤파커스
도대체 알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 사랑이 떠나는 순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랑 앞에서 또 다른 나를 보다.
혹시 남자 친구와 통화하면 목소리부터 달라지는가? 모두에게 관대한 내 남편은 왜 나에게만 박하게 굴까? 한 카리스마 하는 기업의 간부가 집에서 공처가라고? 온유한 성품의 여자가 오히려 애정 관계에서 고삐를 제 손에 움켜줘야 좋아한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1만2500원/ 매트리스/ 휴먼앤북스
1791년 12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사망했다. 모차르트의 급작한 죽음에 의심을 가진 누나 나넬 모차르트가 동생의 죽음에 얽힌 음모와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음악의 도시 빈으로 오면서 본격적인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죽음과 유작 <마술피리>에 얽힌 음모와 비밀을 파헤치는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이다.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1만3800원/ 빌브라이슨/ 알에이치코리아
예리한 관찰력과 재기발랄한 문체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빌 브라이슨의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을 담은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가 출간됐다. 저자는 솔직하고 위트 있는 입담으로 여행기뿐만 아니라 역사와 과학 교양서 등 여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들며 저력을 인정받은 작가로 빌 브라이슨 마니아층을 형성하여 나오는 책마다 화제를 낳고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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