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G. 제발트의 세 권의 책 <이민자들><토성의 고리><아우스터리츠>

소종민(공부모임 책과글·인권연대 숨 회원)


3년 전, 안동에 사는 친한 시인 한 분이 “<이민자들>, 읽어봤나?” 하고 물어서 “아뇨, 못 봤는데요.” 하자, “제발트라는 독일 소설가가 썼는데……, 유럽 사람들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대. 기회 나면 읽어봐”라고 했다. 그 해, 학교 동기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울산에 다녀온 일이 생각난다.

가방에는 제발트의 <이민자들>이 있었다. 내려가는 차 안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어디쯤 왔는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다가, 친구 어머님은 어떠셨을까, 사는 동안 어떠셨을까, 나는 연이어 묻고 있었다.

<이민자들>에 실린 네 편의 소설에는 이모, 외삼촌, 할아버지, 어릴 적 친구, 학교 선생님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에 관한 기억들이 가득 했다. 차 안에서 아마도 나는 소설과 현실을 섞고 있었을 것이다.

제발트의 소설은 좀 특이했다. 곳곳에 옛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더구나 그 사진들이 놓인 자리 주변에는 사진 속 인물과 건축물, 자연풍경에 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활자들이 놓여 있었다. 이야기들은 자연스러웠다. 사실인지 허구인지 물을 수 없게 그 사연들 하나하나 곡진하기 그지없었다. 담담하면서도 아팠다.

아니, 아프기보다는 가슴 한 끝부터 저려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리라. 처연했다.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읽을 때 느낌이었다. 11월에서 1월 사이, 해질 무렵의 흐린 하늘같은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 나왔다. 제발트는 묻는다.

“꿈에서 본 것이 이상하게도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아마 파묻힌 기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꿈속에서 다른 무언가를, 흐릿하고 뿌연 어떤 것을 통과하면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이 훨씬 더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물방울이 호수가 되고, 미풍이 폭풍으로, 한줌의 먼지가 황야로, 유황 입자 하나가 분출되는 화산으로 변한다.

우리가 시인과 배우, 기계 기술자, 무대배경 화가, 관객 등의 역할을 한꺼번에 떠맡는 이런 연극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꿈의 도열을 거쳐가는 데는 우리가 잠들 때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사유능력이 필요한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토성의 고리>)

기억이란 무엇일까. 기억은 꿈을 거쳐 화려한 색을 입고, 현실에서 아름답게 남는 것일까. 하지만 나의 과거는 늘 화려하고 아름다웠던가. 당신의 과거는 그러했던가. 우리 역사는 그러했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또 그 윗분들 모두 평범하고 소박한 민중의 일원으로 일본제국주의와 싸우고, 전쟁과 분단과 기근을 겪어냈다. 그렇다. 그 모두를 애써 견디고 또 이겼으므로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그러나 잊힌 이름들, 이름 모를 이들의 주검이 우리 발 아래 묻혀 있고 또는 산화되어 공중을 떠돌고 있다. 애써 가꾸어오다가 하루아침에 부수고 부서진 건축물들, 사라진 고향, 사라진 형제와 이웃, 친구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모두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깊은 기억 속에, ‘파묻힌 기억’ 속에 있다. 어제는 꿈이었던가. 어젯밤 꿈에서 언뜻 지나쳐간 얼굴과 마을, 나무와 강물과 계곡과 골목길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어낸 환상인가, 허깨비인가.

제발트의 소설은 상상하게 한다. 내 자신의 역사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의 역사를 되돌아보기를 요구한다. 제발트가 말하는 기억은 계몽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쌓아올린 유럽 문명이 파괴와 살육에 기초해 있음을 낱낱이 드러내는 수단이다. 제발트는 흥분도 냉소도 하지 않는다. 비가(悲歌)의 낮은 읊조림으로 폐허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화의 기록치고 야만의 기록이 아닌 것은 없다’고 한 발터 벤야민의 말을 생각하게 한다. <이민자들>(1992)에는 폐기물과 오물과 썩은 웅덩이와 독기로 가득 찬 대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1913년의 예루살렘이 묘사되고, 용도 폐기된 건물, 텅빈 거리와 황무지, 죽음의 정적이 감도는 운하만이 남은 거대한 공장들의 폐허인 멘체스터가 드러난다.

특히 유럽 전역을 떠도는 노동 이민자들의 숙소가 2차 대전의 수용소와 다르지 않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토성의 고리>(1995)에는 이보다 더한 파괴의 역사가 그려진다. 특히 청어의 수난사는 인간 탐욕에 의한 자연파괴의 상징적 사실이다. 제발트의 유럽은 인간 실격의 공간이다.

네 살 때, 나치의 학살을 피해 영국으로 옮겨졌던 한 노인의 회고담인 <아우스터리츠>(2001)에는 이런 말들이 있다. “뭔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뭔가 아주 중요한 것, 단순한 이름이나 혹은 사람들이 생각해 낼 수 없는 명칭 같은 것이 내 마음을 돌려 놓았다고…… 생각해요.” “시간에 의해 규정된 일정을 지키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분리시키는 거대한 공간들을 서둘러 지나갔어요.”

 아우스터리츠의 이 말은 작가 제발트 자신의 고백으로 들린다. 오늘 우리가 여행하는, 아름다운 유럽의 땅과 하늘 그리고 인간은 우리 스스로 지어낸 관념의 산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유토피아의 어원에 따르면 그곳은 ‘없는 곳’이다. 유럽은 실제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유럽 또한 우리의 역사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파괴되었고 지금도 파괴되고 있는, 탐욕의 쓰레기장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치열한 현실주의 정신과 섬세한 고전주의 감성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상과 실체를 통렬하고 담담하게 진술한, 폐허의 미학자 W. G. 제발트는 200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고인이 되었다.

신 간 소 개

나는꼼수다1.세계유일가카헌정시사소설집
1만3000원/ 김어준,정봉주,주진우,김용민 /시사IN북

불의한 mb 시대의 어떤 곳에서도 들을 수 없는 진실을 ‘나꼼수’에서 속 시원히 들을 수 있다. 거짓이 횡행하고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점잔만 빼고 있을 수 있겠는가. 욕이라도 실컷 해줘야지. 웬만한 세상이면 점잖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라를 팔아먹고 국민을 괴롭히는 짓만 하는 ‘국민 원수 MB’에게 ‘나꼼수’의 욕지거리는 오히려 양반이다. 국민의 가슴 속에 분노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욕설에 환호하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세계경제대전망2012
2만원/이코노미스트 / 한국경제신문

2011년 그리스에서 촉발된 유로화 위기와 신흥시장의 부상을 정확히 예측한 세계 최고 권위지 [이코노미스트]가 쓴 경제 전망서이다. 이번 호는 디지털 비스니스 분야의 패권 쟁탈전과 세계 지도자들의 교체에 따른 세계정세변화를 예측한다. 또한 중국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고려한 중국만을 다룬 파트와 문화 파트가 처음으로 포함되었다.

모르는여인들
1만2000원/신경숙 /문학동네

<종소리> 이후 팔 년 만에 펴낸 신경숙의 여섯번째 단편집.
세계로부터 단절된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풍경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일곱 편의 순례기로, 익명의 인간관계 사이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특유의 예민한 시선과 마음을 집중시키는 문체로, 소외된 존재들이 마지막으로 조우하는 삶의 신비와 절망의 극점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빛들을 포착해내어 이 시대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바닥 모를 생의 불가해성을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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